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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에게 은희는

기획의도

요즘 여자들은 과거와 다르게 산다. 다양한 여성운동의 수혜를 입고 이제 가부장적 사회 속 여성의 위치와 태도를 지워나간다. 새로운 미래를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정말 여자가 사는 세상이 바뀐 것처럼 보이는데 모두가 똑같은 현재를 사는 것은 아니다.

어떤 집안 일과 돌봄은 다시 다른 여성들에게로 되돌아갔다. 노년 여성 혹은 이주 여성들의 현재는 우리가 과거라고 돌아선 등 뒤에 멈춰있다. 마치 2020년의 수정 여관처럼 동시대를 사는 그녀와 나는 다른 지금을 산다.


쉐라톤 호텔을 등지고 출발해 수정여관까지 걷는 길은 같은 시대를 살고 있지만 결코 같지 않은 시공간의 교차다. 이 공연에서 관객은 걷고 멈추고 앉고 눕는 동안 한 여자의 안내를 받아 여러 여자들을 만난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 비슷한 운명을 타고난 여자들의 세계를 지탱하는, 또 다른 여자들이다.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지는 여관이라는 몸은 결국 미래에 매달린 현재를 떠받치고 있는 또 다른 현재이다. 

여기서 만난 여자들에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무얼까?  우리는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가? 미래를 위해 빚을 낸 후 갚지 않고 과거에 묻어버리려는 것은 아닐까? 갚지 않은 빚은 미래에 무엇이 될까?


우리가 세운 대안적 리얼리티 속 ‘동아시아가사노동협회’는 정체불명임에도 무겁기만한 빚을 갚기 위한 복수를 꿈꾼다. 그러나 그것은 매번 방법을 고민하다 목표를 잃는 복수다. 복수의 대상이 누구인지 질문하지만 답이 없다. 중얼거리다가 끝나는 한탄은 어쩐지 잘 들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직 알 수 없는 복수를 위해 우선 혼자가 되어보기로 한다. 비록 자기만의 방은 없지만 함께 쓰는 방에서 자기만의 시간을 나누어 갖는다.

피켓에 새겨진 문장은 원래 끝이 날 줄 모르고 이어지던 한탄이고 말이고 표정이었다. 어떤 길고 긴 말들은 먹고 사는 일의전선에 납작 엎드린 사이 어디에도 기록되지 못했다. 우리 협회는 어디로 새겨질지 모르는 채로 전해들은 은희들의 말을 기록한다. 아직  피켓을 들지 못했지만 구호를 준비한다. 

작가의 글

극장에서 공연을 볼 때마다 관객이 된다는 건 혼자가 되는 거구나.. 빠짐없이 깨달았다. 불이 꺼지고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고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았다.

 

그렇게 혼자가 되어 근사한 것들을 눈앞에서 보았는데 어쩐지 조금 불편했다. 무대를 가득 채웠던 근사한 세트가 어느 틈에 쓰레기가 되는 것도 불편했다. 사무직 근로자의 시간을 표준으로 잡아 7시나 8시쯤 되는 공연 시간이 불편했다. 극장이 아닌 곳에서의 공연마저 비슷하게 불편하다는 게 불편했다. 혼자도 함께도 아닌 애매한 순간들에 당황했다. 


문래동에서 듣고 읽은 사장님들의 자부심 속에 어머니들의 노동이 삭제되었다는 느낌이 불편했다. 가려진 여자들의 가사와 돌봄 노동을 다루겠다더니 결국 아이를 맡기고 집안 일를 살피기 위해 또 다른 여자들을 소환해야 하는 나 자신이, 참 여러모로 많이 불편했다.


불편한 것들을 거스르는 마음으로 공연을 만들었다. 무대를 바깥으로 옮긴 것이 아니라 관객의 의자를 숨긴다고 생각하며 만들었다. 이 또한 자꾸만 실패해 당신을 다시금 불편하게 만들었겠지만 조금은 다정한 불편함이면 좋겠다. 

 

이혜령
 

음악감독의 글

이 시대에 타인의 섬세함은 가끔 누군가를 불편하고 피곤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실 섬세함이 아니라 예민함이라고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꽤 예민한 편에 속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감각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노력했었다.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날선 시선 때문이었을까 - 가끔은 숨이 턱턱 막히면서도 그 고민까지는 내가 하지 않아도 이 세상 살아가는데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비겁하게 두 눈을 꾹 감고 지나치고 싶었다.

그런 나와 달리 혜령 작가는 불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그 불편이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계속 이야기해야 할 불편이었다. 그녀의 섬세한 글과 구성은 그 불편함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게 해주었고 지긋이, 꾹 하고 뜨겁게 눌러앉아 무엇인지 모를 묵직한 덩어리로 안겼다.그렇게 덩어리진 은희들을, 온전한 마음으로 음악으로 기억하고자 했다. 

​박혜린

수정여관 0909 2박혜린(레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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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소개

함께 극장에 가는 걸 좋아했던 자매가 베를린에서 가을과 겨울을 보내고 서울로 돌아와서 만들었다.

 

언니 이혜령이 글을 쓰면 동생 이혜미가 기획을 한다. 언니가 장면을 만들면 동생이 첫번째 관객이 된다. 언니는 공연을 계속 만들고 동생은 계속 볼 것이다. 

감염병 시대의 공포와 공연하기

관객은 은희들의 돌봄을 받을 예정이었다. 은희는 관객의 손을 잡고 걸을 계획이었다. 우리는 좁은 여관 방에서 서로 다른 얼굴을 한 은희들과 함께 마늘을 까거나 야채를 다듬으며 사주팔자에 대해 수다를 떠는 시간을 보낼 생각에 들떠 있었다. 관객은 준비된 차를 끓여 은희에게 대접하고 그 대신 하얗게 반짝이는 깐마늘을 집에 가져가 요리에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웃는 얼굴이 하나같이 이쁘고 걸음은 빠르고 힘이 센 은희들을 아마 모두가 사랑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감염병 시대에 그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뉴스에서는 자꾸만 요란스럽게 여러 행사 사례를 소개했다. 앵커는 "주최 측은 방역 수칙을 잘 지키고 있다고 했지만 하필 이 시기에 이런 행사를 꼭 해야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라는 말로 멘트를 마무리했다. 방역수칙을 잘 지키는 게 중요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한 시대이다. 감염병이 무섭고 그것을 무서워하는 공포감이 무서운 시기다.

코로나 시대를 사는 우리는 두 팔 간격의 거리를 유지하고 마스크를 쓰고도 좁은 장소에는 함께 앉아 있을 수 없다. 코로나 때문에 그저 말없이 앉아 듣거나 보기만을 권해야 한다. 그러나 말없이 거리를 두고 앉아 듣거나 보기만 하는 일에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클릭해서 사진을 확대해보세요.

구성 연출 이혜령

기획 드라마터그 이혜미

음악감독 박혜린

안무 김이슬

녹음 연주 박혜린 김동재


영상총괄 프로젝트 아름

기록영상 에이든 스튜디오

VR영상 크로노토프

디자인 Jay

사진 김동재


무대감독 유미희

진행 김문정 함유미 이정단 김종임 황란

은희들 김선옥 최미숙 이정단 윤석화 김명옥 배점순 박영희

젊은 은희 허소연

협회 방송 목소리 소리아씨 

제작 제너럴쿤스트

후원 서울문화재단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

도움 수정여관 하나소개소 모아파출 활보협회


*오디오 대사 "우리가 배워야하는 건 어머니의 은혜가 아니라 어머니의 고통인 것 같아요."는 <다가오는 말들>(은유) 에서 인용했습니다.

*2막 장면10 대사 일부는 <14호실로 가다>(도리스 레싱) 속 대화를 참조했습니다. 

*맨 처음 흘러나오는 노래는 <타향의 봄>입니다.

(최종 수정: 2020-09-14)
 

​어려운 시기에 공연을 보러 힘차게 와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소재라는 말이 딱히 적확하게 여겨지진 않지만, ‘여성’, ‘돌봄노동’의 화두만을 보았을 때에라면, <은희에게 은희는>이 그 소재의 측면에서 새롭게 여겨지는 것은 아니다. 관객이 낯선 장소를 이동하며 서사를 경험하는 방식도, 역시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희에게 은희는>은 특별했고 또 새로웠다. 전체적인 톤 혹은 뉘앙스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역시 일상성과 연극성의 적절한 경계에서 치우침 없이 균형감 있게 펼쳐졌다는 점이 무척 흥미로웠다. <은희에게 은희는>은 너무나도 현실적인 누군가의 일기인 동시에, 근래 경험한 최고의 느와르 작품이기도 했다.

/ 거리예술창작센터 평가위원 총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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