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켓 라인 2019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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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동의 자랑은 이제 예술인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철공소이다. 이 곳에서는 예술도 그 소리와 땀을 딛고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그 소리와 땀의 주역들에게 주목한다. 지금까지 문래동을 채우고 있는 날카로운 소리는 한때 “사흘만 주면 비행기도” 만들었다는 자부심의 역사를 이어받았다. 이 철공 단지에 대한 자랑에 웃는 사람도, 예전과 달라진 문래동에 불만이 있는 사람도 모두 아버지들이다.
한 사장님은 “문래동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렸는지 아느냐”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말하는 사장님은 자신감이 넘쳤다. 얼굴도 옷도 빛났다. 나는 이 사람들을 '먹여 살린' 건 무엇일까 생각해보기로 했다. 이 작업은 문래창작촌이라 호명되는 지역이 철공소 중심의 남성 노동 현장으로서 주로 반영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문래 만의 일은 아니다. 일의 내용과 상관없이 가족 부양의 과업을 업고 일하는 주체로서 인정받는 남성에 비해 여성의 노동은 쉽게 소외된다.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으나 남성 노동의 이전과 이면과 이후에 존재하는ㅡ아침 밥상을 차리고 치우고 기름때 묻은 옷을 빨고 널고 개키고 가족을 돌보고 집을 치우고 다시 저녁 밥상을 차리고 치우고 다시 새벽에 일어나 아침 밥상 차리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는ㅡ여성 노동은 쉽게 삭제되고 은폐되지만 죽기 전까지 이어지는 영속의 노동이다. 철공소의 일은 노동이지만 집안일이나 여관 청소는 허드렛일이었다. 그러나 그 두 노동 모두가 우리를 먹여 살렸다.
“누구 하나 죽어 나가는 게 보이는 일이 아니라서, 물걸레로 바닥 닦고 술병과 쓰레기를 훑어내는 일이 뉴스거리도 아니라서” 여성의 노동에 대해 말하자고 피켓을 들지 못한 시간이 있다. 어떤 한탄과 말은 눈물이 마르는 속도보다 빨리 사라졌다. 그러다가 은희들을 만났다. 나이가 들어서도 이어지는 영속의 노동과 해도 해도 보이지 않는 삭제된 노동들 사이 사이에 은희가 있었다.
피켓에 새겨진 문장은 원래 끝이 날 줄 모르고 이어지던 한탄이고 말이고 표정이었다. 어떤 길고 긴 말들은 무심한 사이, 실은 먹고 사는 일의 전선에 납작 엎드린 사이 어디에도 기록되지 못했고 곧 말라붙었다. 할 수 있는 일은 아직 어디에 새겨질지 모르는 채로, 전해들은 그녀의 말을 끝없이 되뇌이며 기억하려 애쓰는 일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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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업은 문래동만이 아니라 우리를 먹여살린 여자들의 풍경을 담은 참여형 퍼포먼스 스케치이다. 이 퍼포먼스는 2019년 10월 20일과 21일 이틀간 14회 공연되었고, 도림교 건널목에서 시작해 수정여관 203호에서 끝난다. 하나직업소개소 실장님의 소개로 여관이나 가정집을 청소하고 평생 밥을 차린 아주머니들를 만났다. 오랜만에 빗자루나 행주를 내려놓고 외출복은 입은 아주머니들은 관객들의 손을 붙들고 도림교 건널목부터 수정여관까지를 열네번 걸었다. 마지막 공연 후 고생하셨다고 인사를 건냈다. 아주머니들은 주방이나 세탁기 앞보다 길 위에 있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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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켓 라인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하지만
서울문화재단 문래예술공장 <2019 문래창작촌 지원사업 MEET> 선정 사업
기획/제작 제너럴 쿤스트
글 연출 혜령
음악 사운드 레이린
디자인 나나
제작 재량
기획 혜미 기수
참고 19호실로 가다(도리스 레싱), 윤수부, 배점순, 한옥분, 김명순, 이명은, 윤황신
도움 수정여관, 하나소개소
후원 서울문화재단 문래예술공장 GS SHOP 스튜디오 밋미어
www.generalkunst.com/picketline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