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오래 기다리는 사람
그는 원래 집에 있는 걸 좋아한다고
전염병이 아니었어도 그렇다고
다 괜찮다고 말했다.
다만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 나에게 나서서 이야기 할 자격이 있을까요?
그의 침묵이 내게는
이렇게 들렸다.
그는 자꾸만 다 좋다고 했다.
밖에는 잘 나가지 않지만 모든 게 좋아. 친구가 많지는 않지만 한국인들은 모두 친절해. 아들과 함께 연극을 보러 가본 적은 없지만 괜찮아.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도 위험하지 않아. 어떻게 난민 신청하게 되었는지는 나의 비밀이지만 뭐든 얘기할 수 있어. 사실 할 말은 없지만 괜찮아. 특별한 에피소드도 없고 아무 문제도 없어.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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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고 말하는 사람들 가운데 진짜 괜찮은 사람을 본 적이 없어.
이런 얘기를 하는 날들이었다.
구글맵을 열어 세네갈을 찾아냈지만
나는 그가 얼마나 먼 길을 오래 걸려 떠나왔을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지도 아래로 스크롤을 내리자 세네갈의 명소 정보가 보인다.
염도가 높은 분홍빛깔의 호수와
노예 무역의 역사로 기록된 섬 같은 곳들.
로드맵으로 그 곳의 길을 살핀다. 그는 그 호수에 가 봤을까, 그 섬에 가 봤을까, 세네갈의 어느 도시의 어떤 골목을 걸었을까
그런 날에는
꿈을 꿨는데
아주
끔찍한
꿈이었다.
불타는 도시를 등지고 뛰어가 차가운 바닷물로 뜨거운 몸을 식혔다. 검은 바다와 붉은 불길 사이에서 허우적대는 사람을 두고 크고 작은 배와 보트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손을 내밀기는커녕 그를 내려다보는 이도 하나 없었다.물 속에서 오래 오래 기다리다가 또 괜찮으리라 주먹을 쥐다가
엉엉 울며 깨어났다.
손을 내미는 것도 그것을 피하는 것도
다 같은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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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첫 외국인 난민은 1975년 전쟁이 끝난 후 한국에 들어온 베트남 난민이었으며 그 중 단 한명의 정착도 허락되지 않았다. 1992년 유엔 난민협약에 가입한 뒤 국내 난민법이 발효된 1994년부터 난민 신청을 받았다. 지난 해 난민인정률은 0.4%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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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성북구 한 쉼터에서 아들과 함께 거주 중인 세네갈 출신 난민 신청자인 F와의 전화 인터뷰를 기반으로 창작되었다. 한국에 온지 10년이 되었으며 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사용된 이미지는 그와 실제 연관이 없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영상으로 전한다.
피켓 인형을 누르면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