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포먼스 내가 아는 누군가 (Someone I know)
아르코 미술관 제 2 전시실
2017년 10월 27일, 28일
(…) 제너럴 쿤스트의 <내가 아는 누군가>는 선택지에 따라 흐름이 달라지는 순서도를 신체화하는 듯 소리와 몸짓의 연결과 간극으로 공간을 채우는 퍼포먼스다. 헤드셋을 착용한 채 눈을 감고 입장한 참여자들은 귀에서 들려오는 어떤 목소리, 마치 플럭서스의 이벤트 스코어 같은 지시문에 따라 움직임을 자아 나간다. 같은 질문을 듣고 어떤 선택을 하는 시간, 생각으로부터 동작이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으로부터 생성되는 시차는 집단이 움직이는 군무에 동력 같은 것을 느끼게 하면서 <배움의 무대>로 호명된 전시장을 새롭게 구획해 나간다. 헤드셋 속 화자가 던지는 “익숙하지만 대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을 되뇌며 움직이는 신체들이 앉고 눕고 팔을 뻗고 벽에 붙고 한 발로 서 있거나 대열을 이루며 걷는 간단한 동작들을 함께 해나가는 모습은, 지시의 목소리는 듣지 못한 채 그 몸짓을 바라보기만 하는 관객에게도 서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풍경을 이룬다.
작가들의 ‘교육적’ 퍼포먼스 프로젝트에서 참여자들이 그 과정에 진정으로 교육학적인 의미에서 일부가 되기 보다는 또 다른 유형의 스펙터클을 창조하는 데 재료로 쓰이고 마는 경우가 종종 목격되지만, <내가 아는 누군가>에서는 산포와 수렴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군집의 무리 형태가 되었다가 분절되고 개별적인 개인들로 흩어지기도 하면서 구획 없는 전시 공간에 침투하는 참여자들의 모습은, 그저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관객들이 그것을 스펙터클로 대상화하려는 시도를 무력화시킨다.
참여자들만 들을 수 있는 헤드셋 속 목소리, 구경하는 관객들을 위해 전시장에 울려 퍼지는 감상적인 음악소리 간에 불연속은, 헤드셋을 가운데 두고 그 목소리와 음악소리를 중첩해 들어야 하는 참여자들의 몸짓은, 소리가 단순히 귀로 듣는 무엇이 아니라 그걸 듣는 행위를 통해 생산되는 어떤 것이라는 차원을 고려하게 한다. (...)
(…) 제너럴 쿤스트의 <내가 아는 누군가>는 선택지에 따라 흐름이 달라지는 순서도를 신체화하는 듯 소리와 몸짓의 연결과 간극으로 공간을 채우는 퍼포먼스다. 헤드셋을 착용한 채 눈을 감고 입장한 참여자들은 귀에서 들려오는 어떤 목소리, 마치 플럭서스의 이벤트 스코어 같은 지시문에 따라 움직임을 자아 나간다. 같은 질문을 듣고 어떤 선택을 하는 시간, 생각으로부터 동작이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으로부터 생성되는 시차는 집단이 움직이는 군무에 동력 같은 것을 느끼게 하면서 <배움의 무대>로 호명된 전시장을 새롭게 구획해 나간다. 헤드셋 속 화자가 던지는 “익숙하지만 대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을 되뇌며 움직이는 신체들이 앉고 눕고 팔을 뻗고 벽에 붙고 한 발로 서 있거나 대열을 이루며 걷는 간단한 동작들을 함께 해나가는 모습은, 지시의 목소리는 듣지 못한 채 그 몸짓을 바라보기만 하는 관객에게도 서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풍경을 이룬다.
작가들의 ‘교육적’ 퍼포먼스 프로젝트에서 참여자들이 그 과정에 진정으로 교육학적인 의미에서 일부가 되기 보다는 또 다른 유형의 스펙터클을 창조하는 데 재료로 쓰이고 마는 경우가 종종 목격되지만, <내가 아는 누군가>에서는 산포와 수렴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군집의 무리 형태가 되었다가 분절되고 개별적인 개인들로 흩어지기도 하면서 구획 없는 전시 공간에 침투하는 참여자들의 모습은, 그저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관객들이 그것을 스펙터클로 대상화하려는 시도를 무력화시킨다.
참여자들만 들을 수 있는 헤드셋 속 목소리, 구경하는 관객들을 위해 전시장에 울려 퍼지는 감상적인 음악소리 간에 불연속은, 헤드셋을 가운데 두고 그 목소리와 음악소리를 중첩해 들어야 하는 참여자들의 몸짓은, 소리가 단순히 귀로 듣는 무엇이 아니라 그걸 듣는 행위를 통해 생산되는 어떤 것이라는 차원을 고려하게 한다. (...)
김성은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전 삼성미술관 리움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