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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로 멈춰라

▲ 그네가 움직일 수 있는 원리를 수학적으로 설명한 1998년의 논문. ⓒThe College Mathematics Journal

등장인물

   웬디

   예슬

장소

   논문 심사장과 어린이 놀이터

시간

   특정되지 않음

조명이 켜진다. 예슬이 논문 발표 현장에 서서 피피티를 넘기며 발표하고 있다. 안경을 쓰고 한 손에는 펜을 쥐고 긴장한 모습이다.

 

예슬 : 아이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네 타는 법을 압니다. 6세 정도 되면 진자의 움직임 중 적절한 순간에 체중을 이동하여 스스로 추진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죠. 뒤로 가장 높은 지점에 도달하면 뒤로 몸을 기대고 다리를 쭉 뻗고, 앞으로 가장 높은 지점에서는 다리를 접고 앞으로 몸을 기울이는 식입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터득한 움직임을 통해 그네의 진폭을 점점 증가시킵니다. 

그녀가 발표하는 논문의 제목이 벽에 비쳐진다. 

<‘고정주파수모델(fixed frequency model)’을 활용한 그네타기의 한계와 가능성 연구>.

예슬 : (독백) 누구보다 그네로 높이 높이 오를 줄 알던 어린이 예슬은 여섯 살 때 물리학적 구조를 이해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물리학자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을 놀이터로 기억해요. 물리학이라는 학문 개념을 처음 알게 된 날, 그네를 타던 순간을 떠올렸거든요.

예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대 오른쪽 상부에서 그네가 쏟아지듯 내려온다.

빈 그네가 아니라 어린이가 앉아 있다. 웬디다.

웬디는 바닥에 발을 구르며 그네를 조금 늦추다가 뒤로 뒤로 발을 옮겨 끝까지 간 후 추진력을 이용하려는 듯 발을 밀어 앞으로 나아간다. 그네타기를 시작한다. 크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줄이 한쪽이 긴 그네처럼도 보이고 줄이 팽팽하게 당겨지지 않는 것처럼도 보인다.

웬디: (예술을 바라보며) 정말, 이기적인 논문이네

예슬: (귀를 의심하는 표정으로 웬디를 바라본다.)

웬디: 연구를 하는 건 공부를 많이 한다는 뜻일텐데요. 왜 저에 대해서는 공부하지 않으십니까? 저는 추진력을 획득해 그네를 앞으로 앞으로 나가게 하는 조건들을 방해하는 법에 능숙한 어린이인니다. 제가 이렇게 된데는 한쪽이 조금 더 긴 저의 다리도 한 몫을 했을테고, 그네를 타려고 하면 왠지 날아가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드는 마음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예슬: 그런 부분을 모두 물리학에서 다룰 수는 없어요.

웬디: 연구를 하는 건 공부를 많이 한다는 뜻일텐데요. 물리학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요? 이 세계는 그런 식으로 분철되어 있지 않은데, 내 다리 길이도, 내 마음도 포함하지 않은 연구 결과로 뭔가를 설명해냈다고 말한다는 건 ... 거짓말이죠.

예슬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영영 그네 타는 법을 모르는 어린이도 있어요. 저는 그 중 하나이고 여섯 살이 넘어 열 살이 되어도 진자의 움직임 중 체중을 이동해 추진하는 방법을 도통 터득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다리를 쭉 뻗는 위치, 몸을 기대는 속도, 다리를 접는 방식, 앞으로 몸을 숙이는 기울기 모두가 아주 조금씩 어긋나있었고, 그 조금씩은 그네를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어요. 

예슬: 하지만 학문이라는 건 원래 이런 거예요. 설명할 수 없게 만들어버리면 아무 것도 결국 하지 못하게 될 걸.

웬디: 그냥 좀 그네를 밀어주시겠어요?

예슬: 진작 그렇게 말하지 그랬어요?

​예슬이 웬디의 그네를 민다. 그네가 앞으로 높이 나아간다. 예슬이 더 세계 민다. 더 앞으로 나아간다. 예슬이 그네를 밀면서 올라탄다. 웬디 뒤에 선 채로 그내를 탄다. 무릎을 굴려 높이높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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