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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
해설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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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대와 극장 시스템이 날로 발전하는 가운데, 객석만은 그대로인 극장에 종말이 올 것이라고 선언한다.

표준형 인간을 상상해 만든 똑같은 객석이 아니라 다양한 상태의 관객을 위한 객석과 관람환경으로 변화를 촉구한다. 진짜 종말만은 막기 위해.

We declare that theater, with the stage and theater system developing day by day yet the auditorium remaining the same, will face an end. We demand the change into the auditorium and theater for audience members of all the diverse bodies, instead of the same seats made by imagining the standard human ㅡ to prevent a real apocalypse.


 

극장종말론 선언

기획노트

극장의 전통적인 규범ㅡ조용히 할 것, 가만히 있을 것, 정해진 시간에 올 것, 집중할 것 등ㅡ은 '어떤 관객'을 배제하는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어린이, 환자, 그들의 보호자, 발달장애청년, 휠체어 이용 장애인, 난민 신청자, 야간 노동자, ADHD 환자 등은 '일반 관객'이 될 수 있을까?

 

제아무리 삶의 연약하고 혼란한 부분을 이야기하는 훌륭한 작품일지라도, 관객은 약해서도 안 되고ㅡ집중해서 바른 자세로 관람하라!, 혼란해서도 안된다ㅡ시끄럽게 하지도 중간에 나가지도 말라!

그런 객석에서는 뭔가 좀 어긋남이 느껴졌고, 나중에는 생각했다.

 

극장은 망할 것이다. 아름다움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시끄럽고 약한 자들을 금지하기 때문에.

 

이제 나는 극장종말론자다. 극장의 종말만은 막고 싶은 극장종말론자. 종말을 막기 위해, 많은 관객을 채울 빼곡한 객석이 아니라 다양한 관객을 위한 객석을 상상한다금지의 연속인 극장 규범을 통해 차별이 작동하는 방식에 기여하는 사회 시스템을 재해석해본다.

Planning notes

The traditional norms of theaterㅡto be quiet, to sit still, to arrive on time, to concentrate, etc.ㅡ operate as a system that excludes ‘certain spectators’.

 

Could children, patients, their guardians, those with developmental disabilities, those using wheelchairs, asylum seekers, night-shift workers, ADHD patients, etc. be ‘general spectators’?

 

However great the performed work is, dealing with the vulnerable and chaotic parts of life, spectators may neither be vulnerable (watch it in concentration, in a correct posture!) nor be chaotic (do not cause noise or leave in the middle!).

 

Such an auditorium felt off, and later I came to think the following. Theaters will perish. They say it’s for beauty and ban the noisy and the weak. I am now an eschatologist of theater.

 

An eschatologist of theater who wants to prevent just the end of theater. To stop its apocalypse, I imagine an auditorium for diverse spectators, not one to be filled up with a large number of them.

기획노트

‹저스트키즈①›, 이혜령, 서울 영등포아트홀, 2019

 

​*무대 위에 7명의 성인과 4명의 어린이가 서 있다. 노년의 이주여성이 말한다. 무대 배경으로 글이 자막처리된다. 

우리들 중 한 사람은 happy 라는 영어 단어를 배운 날을, 한 사람은 할아버지를 만나면 인사를 해야 한다고 배웠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 중에 한 사람은 여섯 살 때 누나 친구의 목을 졸랐고, 한 사람은 교회에서 지옥을 보여준다는 친구들에게 목조름을  당했습니다.

이 중 한 사람은 난쟁이라는 놀림을 받았고, 또 한 사람은 키우던 이구아나를 나무 아래에 묻으며 울었습니다. 우리들 중 일부는 페르시안 왕자와 정글짐에서의 탈출 놀이를 좋아했고 또 다른 일부는 생전 처음 봤던  연극을 기억합니다.

처음으로 극장에 간 것은 몇살 때 인가요? 

그 나이만큼 뛰세요. 

 

극장에서 나오면서 이거 애들 장난도 아니고...라는 말을 한 적이 있나요?

그렇다면 혀를 최대한 길게 내미세요.

아니라면 귀를 잡아당기세요.

7세 이상 관람가는 아이를 위한 배려인가요, 방해받지 않기 위한 배제인가요?

아이들을 위한 거라면 오른팔로 얼굴을 가리고 왼손으로 당신의 모습을 크게 그려봅니다.

방해받지 않기 위한 거라면 뒤로 돌아 팔꿈치에 계속 입을 맞추세요. 

 

흥이 나면 손뼉을 치고 펄쩍펄쩍 뛰는 발달장애청년 김세환은 7세 이상이므로 극장에 갈 수 있나요?

갈 수 있다면 손뼉을 치며 뛰세요.

특별 편성된 회차에 가야 한다면, 두 손바닥을 앞으로 뻗고 바닥에 등을 대고 움직입니다.

국내 국공립극장 여성 극장장 비율이 1.2%로 세계 꼴지인 것은 참일까요 거짓일까요?

참이라면 양팔을 벌리고 좌우로 크게 몸을 흔드세요 

거짓이라면 위아래로 크게 머리를 흔드세요. 

기울어진 극장에서 자꾸만 넘어지나요?

그렇다면 무릎을 굽힌 채로 움직이세요.

아니라면 두 손등을 하늘로 향한 상태로 빠르게 걸어 다니세요.

약한 사람만이 아니라 나약한 사람도 이해할 수 있나요?

그렇다면 빠른 속도로 옆으로 걸으세요.

아니라면 그 자리에서 한 바퀴 돈 뒤 멈추세요.

객석에 눕고 싶다는 상상은 불온한가요?

극장에서 내 자리를 주장하기에 지금은 좀 이른 시간인가요?

당신은 언제 처음으로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나요?

암전이 시작되자 이대로 영원히 어둠 속에 있기를 바란 적이 있나요?

그런 바람을 상상도 못해본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나요? (암전)

‹저스트키즈①›, 이혜령

작업 개요

‹극장종말론:입문편›은 2021년 11월 한달간 관객들의 다양한 극장 경험을 기고와 인터뷰 등의 방식으로 모아내는 프로젝트로, 서울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운영된다.

작가는 글을 나누고 만나는 과정을 통과하며 극장을 수신처로 둔 편지를 쓰고 우표를 붙여 발송한다.






 

개요

2019년부터는 연극이나 영화 관람을 거의 끊다시피 했다. 코로나19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시 대한민국은 <겨울왕국2> 열풍에 휩싸여 있었는데,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즐기는 작품이다 보니 ‘어른’과 ‘아이’ 사이 충돌이 생겨 버렸다. 일부 성인들이 <겨울왕국2>를 조용히 관람하고 싶으니 시끄러운 어린이들을 분리해달라고 주장한 것이다. 당시 나는 20대 후반이었지만, 노키즈존 갑론을박이 과열되는 현상을 보며 함께 위기감을 느꼈다. 관람 예술의 세계에도 계급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된 것이었다.
 

계급도는 간단한 만큼 잔인했다. 교양 있는 비장애 성인을 최상위로 두고, 나머지를 최하위로 상정하기 때문이었다. 이 층위는 결국 ‘관람 자격’을 가른다. 자격이 있다면 얼마든지 예술을 누려도 좋지만, 없으면 이곳에 나타나지도 말아달란 부탁 같기 때문이다.

ADHD를 가진 나 역시 극장이 끊임없이 눈총을 쏘아대는 관객 타입 중 하나였다. 따지자면 나의 천성은 어린이 쪽에 가까웠다. 뭘 하든 꼼지락거리고, 소근 거리고, 크게 웃는 식으로 활동해야 편했다. ‘Into the Unknown’처럼 멋진 노래가 나온다면? 당연히 따라 부르고 싶어질 것이었다. 그래서 <겨울왕국2>로 인해 어린이들이 구박받는 현상이 남 일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공감한들, 나도 마이크가 없는 소수자일 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ADHD라는 약자성 하나만 지녀도 어디서나 암묵적인 계급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나는 늘 포함보다는 배제 군에 속하는 편이었고, 언젠가부터는 그게 익숙하여 일일이 서러워하기도 지쳐버린 상태였다. 냉대와 차별조차 산소처럼 만연해지면 늘 쉬는 숨으로 섞여들기 마련이었다.

 

***

 

한때는 내가 연극이나 영화 자체를 싫어한다고 믿기도 했다. 지인들이 대학로나 영화관을 권할 때마다 망설여지고, 되도록 다른 활동으로 유도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한번은 “왜 관람을 싫어하냐”라는 원론적인 질문을 받게 되었는데, 그제야 줄임표 가득한 의문점을 인식할 수 있었다. 새삼 ‘맞네……? 내가 그 재미있는 연극이나 영화를 왜 싫어하게 되었을까……?’ 싶었다.


곰곰이 따져보니 실은 2시간 남짓의 투명한 결박이 불편한 것이었다. 일례로 나에겐 극의 줄거리보다 먼저 소요 시간을 파악하고 보는 습관이 있었다. 다 보는 데 걸리는 시간이 90분 미만이면, 그건 일단 좋은 콘텐츠였다. 온 힘을 다해 버티면 버텨지는 범위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20분을 넘어가면 재미가 보장된 대형 극 이라도 큰 부담이 되었다. 오랫동안 입 다물고, 그저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일종의 감금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관람이 시작된 후에도 재차 시간을 확인해야 마음이 편했다. 틈날 때마다 냉큼 손목시계를 비틀어 숫자를 읽어내는 나는 억지로 끌려온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얼마나 더 참아야 할지’ 가늠하길 잊을 정도로 재미있는 극은 없었다. 그건 애초에 재미와 상관없는 문제였다. 나에게 심한 ADHD가 있다는 말은 내가 아무리 용을 써도 성인다운 몰입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몰입과 인내가 내게만은 동의어라는 뜻이었고, ‘정상인’들끼리 합의한 정적 상태가 왜인지 내 몸을 간지럽히는 것 같다는 뜻이기도 했다.


극장 내 객석의 고요에서 추출되는 메시지는 단 하나였다. ‘계속해서 유지하라.’

가끔은 여기서 답답함을 느끼는 게 나뿐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대단히 부도덕한 욕구를 느끼는 것도 아니었다. 주로 기지개를 켜고 싶다, 다리를 흔들고 싶다, 일행에게 중간중간 감상을 건네고 싶다, (남들은 전혀 웃지 않는 대목에서) 박장대소를 하고 싶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식의, 사소하다면 사소한 동작들이 전부였다. 하지만 필요한 동작을 다 했다간 다른 관객의 SNS에서 ‘관크’라는 욕을 집어먹을 게 뻔했다. 적혀봤자 익명이겠지만, 내 모습이 멸시와 조롱을 뒤집어쓴 채 웹 상을 떠돈다면 무서운 일이었다. 연극 시간 내내 끙끙거리다 보면, 어느 순간 무대가 아득해지면서 내가 극을 즐기러 온 주체인지, 객석에 보관된 짐짝인지 헷갈리는 기분이 들곤 했다.

어쩌면 나는 차별과 냉대에 익숙해졌다기보다, 익숙해졌다는 확신을 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매번 정체 모를 갑갑함에 압도되면서도, 나의 부자유스러운 감각들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이런 느낌이 정당한지 궁리해본 적조차 없었다. 극장에서의 나는 언제나 전전긍긍하기 바빴다. 혹시나 열연 중인 배우나 다른 관객에게 민폐를 끼칠까 봐 걱정하다 보면 안 그래도 부족한 주의집중력이 실제로 주의하느라 숭숭 빠져나갔다. 자연히 작품 속의 디테일을 많이 놓쳤다. 커튼콜 즈음의 나는 항상 남들보다 덜 이해했음에도 더 지쳐있기 일쑤였다. 그래서 드디어 밖으로 나가 지인들과 관람 소감을 나누는 자리에서는 꼭 이런 질문을 받았다. “넌 대체 뭘 본 거야? 우리 지금 같은 연극 얘기하는 거 맞지?”


하지만 이럴 때 내가 느끼는 곤란함을 구구절절 늘어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높은 확률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날 수밖에 없다’는 충고가 따라붙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진짜로 극장을 등지면 연극이나 영화는 내 발이 닿지 못하는 무수한 ‘절’ 중 하나가 될 것이고, 그건 왠지 슬픈 패배나 포기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관람이라는 취미를 유지하자고 극장을 계속 감내하는 것도 버거웠다.


언젠가는 영화관에서 압박감 없이 포근한 관람을 해본 경험이 있었다. 서울 모처의 CGV ‘템퍼 시네마’에서였다. 일명 ‘침대 상영관’이라 불리는 이곳에서는 모든 관객이 고급 침대에 누워 담요를 덮은 채 아늑하게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다. 입장 전에는 오히려 심드렁했다. ‘당연히 의자보단 침대가 편하겠지’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막상 영화가 시작되니 단순히 등허리가 안 아픈 정도가 아니었다. ‘눕는다’라는 행위가 허용됨으로써 관객 1인이 유용하는 공간 자체가 몇 배로 넓어졌고, 그래서 얼마간 꼼지락거리거나 부스럭거리는 소음을 내어도 티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약간이라면 소곤거리는 행동까지도 가능했다.


그러나 템퍼 시네마는 지속적인 대안이 되지 못했다. 일단 상영관 수가 너무 적고, 그마저도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에만 마련되어 있으며, 푯값이 1인당 45,000원이나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지속할 수 있는 극장 경험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는 있었다. ‘가만히 앉아서, 아무 말 말고, 움직이지도 말라’는 금기가 깨지자 이만큼이나 자유로워진 것처럼, 객석에 변화를 주어 얼마든지 다른 편함을 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꼭 템퍼 침대만큼 고급스러운 좌석이 아니어도 좋았다. 어디에 몸을 기대느냐보다는, 물리적 경직도를 완화하려는 시도가 중요했다. 일체형으로 다닥다닥 붙어 관객 모두가 서로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는 좌석이 빈백이나 소파 정도로만 바뀌어도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공간 대비 수용인원은 줄겠지만, 수용 계층은 전보다 훨씬 넓어질 것이었다.


공간을 탈바꿈하기 어렵다면 관람 규칙이나 콘텐츠의 구성을 뒤집어 볼 수도 있었다. 앞서 말한 &lt;겨울왕국2&gt;을 예로 들자면, 아예 다 같이 노래를 부르기로 합의하고 시작하는 것이다. 한 명이 흥얼대면 ‘관크’겠지만 모두가 함께 부르면 미니 콘서트의 떼창 같지 않겠는가. 무작정 눈살을 찌푸리기엔 아직 해본 적 없는 시도였다. 영화관에서도 많은 시도가 가능하겠지만, 연극이라면 특유의 현장감과 생동감을 살려 더더욱 색다르고 즐거운 일들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나는 &lt;쉬어 매드니스SHEAR MADNESS&gt;라는 코믹 추리극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다. 이 연극의 묘미는 현장 객석 반응에 따라 매회 차 결말이 달라진다는 점이었다. 배우와 관객들이 함께 사건을 풀어나가다 다수결로 그날그날의 범인을 정하는 식이다. 지금은 비교적 많아졌지만, 당시 관객 참여형 연극을 처음 접해본 나에겐 너무나 신선한 경험이었다. 객석에 침묵을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다각도의 반응을 유도해 콘텐츠의 결말로 수용하는 구조가 매우 재미있고 참신하게 느껴졌다. 관객을 객체가 아닌 주체로 대우한다는 느낌이 몇 년 째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

극장을 관통하는 최고선의 매너가 여전히 ‘정숙’이기 때문일까? 극장에서는 어떤 약자를 위해 무언가를 바꿔 보자는 주장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 소음으로 들린다. ‘굳이 왜 그래야 하냐’ 말로 거절되어도 마땅한 논의 같다. 그러나 여러 악재를 통해 ‘극장종말론’이 대두되고 있는 지금, 극장 또한 보다 적극적으로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나 같은 사람’도 무리 없이 녹아들 수 있는 관람 환경을 꿈꾼다. 내가 다니는 극장에서 더 많은 어린이와 노인과 장애인과 난민을 만나게 되길 소망하기도 한다. 아직은 요원해 보이지만, 변화를 바라는 마음이 변화의 시작임을 믿고 기다리는 중이다.

정지음
​에세이스트. 《젊은 ADHD의 슬픔》을 썼습니다.

‹투명한 결박›, 정지음

‹익명의 극장종말론자 모임›(A.E. : Anonymous theater Eschatologist)

무대와 창작자를 중심으로 형성된 극장의 세계에서 관객의 경험은 너무 적게 이야기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공연 후기나 비평이 아니라, 극장에 가려는 마음을 살핀 기록과 객석에 앉은 자로서의 상태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

그런 이야기가 없는 극장은 망할 것이라고, 나는 말했다. 함께 말할 사람을 찾는다. 익명의 극장종말론자 모임은 당신의 극장 경험을 나눌 자리를 만들 것이다. 모임에 함께 하고 싶다면
여기(Click)를 통해 가입할 수 있다.




 

익명의 극장종말론자 모임 (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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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Theatre은 마법 같은 곳이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고 내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랬다. 극장에서는 현실의 일도 예상치 못한 일도 즐거운 일도 슬픈 일도 재미난 일도 고통스러운 일도 일어났고 풀어졌다. 그 오묘한 매력에 수년간을 지칠 수 없이 극장을 드나드는 중이다. 이렇게 짝사랑 같은 마음으로 옮기는 발걸음이니 많은 경우, 나는 극장이 거는 마법에 충실히 순응하는 편이다. 어쩌면 그 마법이 잘 걸리도록 자기 암시를 잘하는 편인 것도 같다. 어떤 빛도 들어오지 않는 공간에서 자체 발광發光하지 않는다던가, ‘부스럭’, ‘꼼지락’을 포함해서 아무런 움직임 없이 숨 쉬고 오래오래 앉아 있기라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이것들에 나는 꽤나 경력과 노하우가 있다. 요즘에 들어서야 극장의 시간이 기네, 어쩌네 타박할 때도 있었지만 약간은 농담처럼 이었고 그저 나이 탓이다, 했다. 많은 시간을. 그 긴 시간 동안을.

이상한 낌새를 느낀 것은 최근 몇 년 동안의 극장 경험에서였다. 단지 낌새였던 흐릿함이 희부옇하지만 생각으로 들어와 잡힌 것은, 꼭 찍어서 말하자면 이보 반 호프의 <로마 비극Roman Tragedy>을 보고서였다. 

 

다섯 시간의 공연 시간. 무대를 마주 보며 불 꺼진 객석에서 시간 오래 참기 챌린지, 움직임Motionless없는 극장 예절을 지키기 따위의 익숙한 도전일 거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아니란다. 자리를 바꿔도 되고 무대에 올라가도 되고 간식을 먹어도 된다고. 오호.

소심하게 초콜릿 한 봉지를 의자에 앉아 부스럭거리며 먹었고 무대 위에서 팔고 있는 핫도그를 사러 갔다. 그 사이 뭐, 무대에서 배우들에게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겠으나 -같이 간 사람 중 하나는 핫도그를 사느라 주인공의 죽음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하하.- 나에게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으니 현실의 일도 극적인 일도 일어나는 극장의 본질에는 어긋나지 않고 딱 맞아떨어지는 중인 셈이었다. 신나게 먹거리를 밀어 넣었다는 즐거움이 있었던 다섯 시간이었지만 그보다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던 것은 그렇게 ‘해도 된다’라는 점이었다. 내가 알던 극장의 엄격한 규칙들을 어기고 있는 데도 그 누구도 말하지 않았고 따가운 눈초리조차 보내지 않았었던 묘한 경험. 왜...... 왜......? ‘해도 된다’의 명령은 누구로부터 오는 것이었을까. 

거꾸로 ‘해서는 안 된다’, ‘하지 말라’의 압력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이었을까.

’아이들의‘ 극장, ’아... 이들의‘ 극장

‘앞에 앉은 이모들이 무서운 눈으로 뒤를 돌아 쳐다봤어요.’ 

아홉 살 명재가 그랬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거냐고 물었더니 명재는 극장에 다녀왔다고 했다.

일전에 명재에게 동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노래를 한 곡 들려 준 적이 있었다. 그때 한창 극장에서 공연하고 있던 뮤지컬 <마틸다Matilda>의 ‘When I grow up’이었다. 찬찬히 듣고 있던 이 아이는 그 노래가 좋았는지 가사의 낱말 하나, 숨 쉬는 자리 하나도 빼놓지 않고 따라서 부르고 또 부르고 그랬다.

명재에게 벌어진 일은 극장의 모든 사람의 감정이 고조됐던 그 순간에 일어났다. 반짝반짝하는 불빛들이 극장의 공간에서 빛났을 테고 10미터쯤이나 높게 매달린 그네를 신나게 타는 아이들이, 또는 어른들이 머리 위를 날아다녔을 것이었다. 곧 귀에 익은 반주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명재는 반가운 마음으로 좋아하는 노래를 따라서 부르기 시작했다. 암묵적으로 깜깜한 극장에서 무대에 마주 앉은 누구에게도 허용될 수 없었다는 그 침묵을 아이는 깨버렸다. 그 결과는 속상하게 돌아왔다. 

 

‘오, 바람이 극장 안에서 씽씽 불었어요!’ 

‘엄청나게 덩치 크고 못생긴 아줌마가 친구들을 빙빙 잡고 돌려서 던졌어요!’

 

그날 극장을 다녀왔던 명재의 일기장에는 아이가 받은 엄청난 감동이 쓰여 있었다. 노래의 그 순간은 무서웠고 이상했고 조금 속상했더랬지만. 

머리 위에서 날아 무대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그네가 조마조마했지만 신기했던 경험, 몸에 느껴지는 공기의 흐름을 저렇게 남겨 놓았다. 이후에 저 ‘트런치불’ 아줌마가 남자야, 라고 얘기해 줬더니 우리 명재는 깜짝 놀라며 믿지 않았다. 그냥 남자 목소리를 내는 아줌마라면서 말이다. 무대의 상상을 이렇게도 굳건하게 믿어주는 관객이라니 흐붓이 웃음이 났다. 명재는 중간 쉬는 시간에도 극장에 들어가서 기다리자고 졸랐고 공연 기념품도 하나 사와서는 신나게 자랑했다. 다시 가면 좋겠다고도. 이 순간 우리가 극장에서 으레 만나는 환상적인 상상이 명재에게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누가 정해주지도 않았는데 숨 쉴 자리 하나 낱말 하나 내뱉을 수 없도록 극장을 만들어 온 것이 이 아이를 상처 낸 것을 아니었을까 하는데 생각이 미친다. 공연을 예민하게 관람해 온, 순응하는 어른인 나와 여태까지의 나의 극장은 아이들의 호기심과 감상이 들어 설 자리를 의도적으로 제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후회와 반성이 뒤늦게야 찌릿하게 찾아왔다. 

그리고 나의 극장은 이대로 괜찮고 무사하며 지속가능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 곧 뒤이어 생겨나기 시작했다.

 

탄광촌 소년이 발레리노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성장 이야기인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Billy Elliot>는 2010-2011년 시즌 처음으로 우리나라에서 공연되었다. 2011년에 우리 반이었던 열세 살 태수는 체육 시간에 마치 뮤지컬 공연 속 ‘빌리’처럼 엄청난 덤블링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같은 해 태수는 학예회 무대에서 <빌리 엘리어트>의 안무 동작을 거의 유사하게 그것도 아주 근사하게 해냈다. 태수의 최선을 다한 몸짓은 단지 200명가량의 친구 관객들이 보는 앞에서였을 뿐이고 학교의 작은 간이 극장에서 이루어졌을 뿐이었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서 있고 움직였던 단 몇 분간은 아이를 지속적으로 극장으로 데려오기에 충분했다. 

얼마 전 태수를 만났다. 곧 군대를 가게 된다고 했다. 아이의 성장과 앞으로의 안녕을 기도하며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도 태수는 어김없이 그때 열세 살 ‘빌리’ 이야기를 시작했다. 중간중간 비밀이라면서 버스를 타고 1시간을 가야 했던 공연장에 혼자 엄마 몰래 다녀 온 에피소드와 함께 태수는 청소년을 거쳐 청년이 된 지금까지도 행복한 기억으로 극장에 여러 번 갔다고 간간이 이야기 해 준다. 창작 뮤지컬을 보고 노래를 등굣길에 듣거나 연극의 대사들을 적어두기도 했다며 웃었다.  

아이의 추억을 듣다가 불현듯 힘들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탄광촌에서 발레리노를 꿈꾸던 공연의 빌리처럼, 어울리지 않는다는 편견 속에, 가혹한 기준 위에서 아이가 무대를, 더 나아가 극장을 소망하는 일. 힘든 감내의 과정이 있어야 하지는 않았을까, 나이 어린 관객들이 부딪히기엔 극장은 이해할 수 없는 권위와 규칙을 들이밀지는 않았을까 해서였다. 

하지만 걱정스러운 물음에 돌아오는 말은 예상과 사뭇 달랐다. 극장은 언제나 가고 싶은 곳이었으며 극장에서 제시하는 번거로움들은 극장을 나서는 순간 그곳에서 담아나오는 감정에 묻혀 사라질 만큼 사소한 것이었다고. 어린 나이라 모든 것을 다 보고 느낄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뿐 극장의 시스템에 화가 나거나 소외된 느낌을 받은 것 같지는 않다고 말이다. 

 

태수가 해 주는 말들을 들으면서 명재의 순간에도 조금은 마음을 놓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었다. 아이의 일기장에는 무섭고 속상하다는 말보다 극장으로 받은 훨씬 많은 행복한 말들이 있었다는 것을 다시금 기억해 냈다. 아이들의 극장은, 이들의 극장은 이렇게 시행착오를 겪을 뿐이다. 그들은 소외와 약자의 감성 대신 극장에서 머무르는 시간 동안 더 많은 것을 배워나갈 것이다. 

 

2021년 여름,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가 또 한 번 공연을 시작했다. 공연과 극장이 주는 즐거움은 늘 그렇듯 10년 전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신기하고 새로운 흐름이 느껴졌다. 극장의 로비를 걷고 사진을 찍는 많은 어린 관객들이었다. 객석을 둘러보니 20cm쯤 되는 방석을 당연하게 꼭 안고 와서는 등산하듯 앉고서 안내 방송과 주의사항을 귀 기울여 듣는다. 나이 들어버린 어른들이 웃고 박수치는 순간과 이 친구들이 웃고 탄성을 터뜨리는 부분은 다소 달랐지만 덕분에 공연 내내 까르륵하는 웃음이 이어졌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어린 관객이어서, 그들의 방식으로 극장을 즐기고 있어서 분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웃음과 박수 소리에 다시 한 번 웃음이 지나갔을 뿐이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어린 관객들도 극장의 방식을 이해하고 배워가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나의 ‘극장’은 ‘종말’이라는 영원한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그러지 않기 위해서 조금씩 이들을 포옹하며 바뀌어 가고 있는 중이라고 하면 너무나 큰 오해일까.

 

아직도, 아직은 그러나 확장되는 극장

 

‘극장종말론’이라는 낱말을 받아들고 꽤 오랜 기간 동안 고민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종말終末’이라는 세기말적인 어감이 무거워서였기도 했고 극장들을 종말‘론論’이라는 언어 논리로 끝장낼 능력이 없어서이기도 했다. 게다가 나는 어떤 이유에서든 여전히 극장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직 극장을 종말시킬 용기 따윈 없는 것 같으니 ‘극장 종말’을 면할 아주 가느다란 핑계를 찾아보기로 했다. 

 

Theatre [ˈθɪətə(r)] :

1. 관객, 배우 등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Cambridge Dictionary)

2. 시청각을 비롯한 다양한 감각에 대하여 정보와 자극을 제공하는 것(Collins Dictionary)

 

‘극장Theatre’은 일대일 대응으로 단 하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물리적인 공간이라는 의미와 함께 ‘극’ 자체를 지칭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 같은 동시적인 의미는 영미권의 공연계에서는 일반적으로 표현된다. 이것은 극장이라는 낱말이 가지는 모호함이 아니라 오히려, 동시적 의미 사이의 연결에 더 초점이 맞추어진 것은 아닐까 한다.

이렇듯 극장은 공간과 극을 함께 이야기한다. 그리고 명재와 태수가 경험했듯 이젠 사람으로, 의미로 옮겨가고 있는 것일테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극장을, 나의 극장을 타도하자고, 극장에게 종말을 선고해 작별하자고 말하기엔 아직은 이르다. 극장은 여전히 존재하고(물리적으로) 잘 해내고 있고(사람에게, 나에게, 우리에게) 극장이 스스로를 넓혀가면서(의미적으로) 구시대의 고정관념을 조금씩 폐기해 나가는 중이니까 말이다. 안녕을 고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덧씌운 극장에 대한 오해여야 한다. 어쩌면 종말에 다가서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극장에게 보내야 할 것은 무용無用의 종말 선고가 아니라 어린아이의 가능성을 신뢰하며 든든한 믿음을 보이는 것 같은 응원일 것이다. 

 

이런 식의 생각을 두서없이 쓰다 보니 하나둘 다른 기억들도 떠올랐다. 런던의 Phoenix Theatre의 뮤지컬 <더티 댄싱Dirty Dancing> 마지막 넘버Number ‘Time of My Life’를 목청껏 신나게 따라 부르던 모든 관객들의 풍경 같은 것들이. 

여전히, 극장과의 작별은 아직 이르다.


이우정

공연과 극장을 정말로 좋아하는 초등학교 교사. 내가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 더 알고 싶어서 늙어서도 공부한다. 하지만 여전히 공연과 극장은 좋으면서도 어렵다.

‹작별은 이른›, 이우정

극장에 대해서 나는 쓴다. 내가 쓰고자 하는 극장은 입장료를 받거나 극장이라는 간판이 달려있는 곳은 아니다. 그러나 이 곳에서는 세계 최고의 배우들이 열연하는 유서깊은 대극장 만큼이나 치열한 무대가 매일 펼쳐진다. 이 곳은 서울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 1길에 위치한 대한민국 국회다. 


시민들은 국회에서 상연되는 많은 작품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비호감은 다음의 한마디로 잘 요약된다.
 

“쑈하네.”
 

이 명쾌한 평가는 ‘연극으로서의 정치’를 위한 공간이라는 국회의 본질을 잘 포착한다. 국회를 구성하는 300명의 국회의원들은 국회라는 시민극장의 배우다. 국회에 진출한 의원들이 소속된 정당은 일종의 극단이다. 이들을 기용하는 것은 다름아닌 시민들이지만 정작 다수의 시민들은 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국회라는 극장에 출연할 수 있는 자격을 얻기 전, 배우 지망생들과 이들이 속한 극단들은 시민들에게 온갖 매혹적인 약속을 던진다. 우리를 무대 위로 올려주기만 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을 열연하겠다고. 하지만 대개 무대 위로 올라간 이들이 상연하는 작품은 그들의 당초 약속과는 거리가 멀다. 신축 건물의 조감도와 실제로 지어진 건물이 다른 것처럼. ‘조리예’ 라면사진과 내가 실제로 끓인 라면의 모습이 다른 것처럼. 혹은 과자로 가득할 거라 기대하며 봉지를 뜯었지만 부피의 80% 이상이 질소충전이었음을 깨달을 때처럼.
 

국회라는 무대에서 국회의원이라는 배우들은 저마다 혼신의 연기를 펼친다. 정당이라는 극단 차원에서 방대한 시나리오를 올리기도 하고, 개별 배우 차원에서 단막극을 펼치기도 한다. 300명 모두가 같은 대본을 가지고 연기하는 날은 거의 없다. 대본이 다른 이유는 향하는 객석의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객석을 향해 동시에 연기하는 수많은 배우들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공간. 그것이 바로 국회라는 이름의 극장이다.
 

흥미롭게도 국회라는 이름의 극장에서 좀처럼 관객으로 여겨지지 않는 사람들은 국회 밖의 고전적인 극장에서 ‘일반적인’ 관객으로 여겨지지 않는 사람들과 상당히 비슷하다. 조용히 숨죽인 채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있기를 어려워하는 사람들, 돈이 없는 사람들, 청소년들, 장애인들, 노인들, 성소수자들…. 이들을 위한 연극은 좀처럼 무대 위에 오르지 않는다. 설령 오른다 하더라도 인물을 다루는 방식이 상투적이고 평면적이다. 소외된 이들의 삶은 입체적이고 열린 인격체로서 조명받기보다 ‘불행의 아이콘’으로 전시되는 경우가 더 많다. 동정과 시혜의 관점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 이들을 등장시키는 극을 연기하는 배우는 엄청난 야유 혹은 철저한 무관심을 각오해야 한다.
 

이 극장은 분명 시민 모두에게 열린 극장이고, 그래야만 한다. 배우들에게 무대에 오를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 극장의 배우들은 시민을 차등대우한다. 시민들은 이 사실을 직관적으로안다. 시민들이 피, 땀, 눈물을 흘려가며 세운 이 민주주의의 전당은 그렇기에 시민들의 사랑보다는 질시와 무관심의 대상이다. 
 

스마트폰만 켜면 수많은 채널들에서 웃기고 멋지고 슬프고 이상한 것들을 끝없이 볼 수 있는 세상에서 국회라는 극장은 점점 시민들의 뇌리에서 잊혀져가고 있다. 정확히는 국회가 극장이라는 사실, 평범한 시민들의희로애락을 대변하는 극장이어야 한다는 사실이 잊혀져가고 있다. 국회는 마치 태고적부터 반복되어 왔을듯한 거대한 두 극단의 뽀얗게 먼지 앉은 진영싸움만 영원히 반복되는 잊혀진 극장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이 극장이 시민들의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기를 원한다. 이 극장에서 ‘나의 이야기’가 상연되기를 바라는 시민들의 마음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사실 이런 마음은 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삶이, 나아가 다른 동료 시민들의 삶이 더 인간답게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국회라는 극장이 나의 삶을 닮기를 바라는 마음과 닮아있다. 그렇기에 나는 희망적이다. 국회라는 민주주의 극장의 무대는 계속되어야 한다. 이 극장에서 얼마나 다양한 작품들이 상연될지, 이 작품들을 소화하기 위해 얼마나 다양한 배우들이 무대 위에 오를지를 결정할 ‘캐스팅보트’는 결국 관객인 우리들의 손에 달렸다. 그렇게 우리가 국회라는 극장의 풍경을 다채롭게 바꾸어나갈 때, 비로소 국회 밖 진짜 ‘극장’들의 풍경도 함께 바뀌어갈 것이다.

장혜영

21대 국회 정의당 국회의원

‹좀처럼 관객으로 여겨지지 않는 사람들›, 장혜영
‹모두가 자신의 객석에서 단독자가 될 수 있도록›, 조기현

 

제너럴 쿤스트 연출 이혜령이 작업실에 놀러 왔을 때, 어떤 극장의 ‘보금자리 석’이라는 좌석 여부를 알게 됐다. 보금자리 석은 아이 동반석으로, 일반 객석에서 분리되어 따로 공간을 쓰게 되어있다고 했다. 말하자면 돌봄의 객석인 셈. 아이 출입이 제한되었던 극장에 큰 변화였다. 이혜령은 ‘다른’ 객석의 가능성을 봤다며, 여러 극장에 도입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만 엄마가 아이를 품고 있는 느낌의 명칭만 좀 별로라고 했다.

지난 2019년 우리는 공연 <영등등등등등등등등포>(영등포 아트홀)를 공동창작했는데, 당시에 그는 이미 ‘아이’라는 이유로 극장 출입을 제한하는 것을 비판하는 작업을 했다. 그때 나는 그에게 어린 시절을 복기할 만한 지시문이나 누군가에 대한 차별이 정당한지 묻는 말에 답하며 요상한 몸짓을 요구받았다. 영등포아트홀이라는 프로시니엄 극장 무대에서 표현되는 그 요상한 몸짓은 극장이 기어코 배제하고자 하는 어떤 것이었고, 그 어떤 것을 극장 한가운데에 가져야 놓은 셈이었다.

 

그때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아이가 다 똑같은 아이가 아닌데, 단지 나이 구분으로 출입은 막는 건 잘못된 것이라고, 어른이 더 시끄러울 수 있지 않냐고. 그 말을 들은 나는 우리 강아지 얘기했다. 우리 강아지는 작고 조용하고 얌전한 시츄인데 누군가 위협할 것처럼 대하는 곳들이 있다고. 그때 우리가 나눴던 대화는 ‘정상’의 인지 기준을 상정하고, 그것을 표준 삼아 다른 존재들을 배제하는 것에 대한 어렴풋한 반발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는 내 영화 <1포 10kg 100개의 생애>의 첫 장면을 떠올렸다. 영화는 영화를 함께 만들었던 스태프들과 나, 무엇보다 영화의 주인공이기도 한 아버지가 객석에 앉아 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아버지 무릎에는 강아지도 앉아있다. 우리는 우리의 영화가 시작되길 기다린다. 이 장면은 프로젝션이 되는 어떤 소극장을 대여해서 찍었다. 돌이켜보면, 불가능한 장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극장은 늘 ‘정상’적인 인지 기준을 통과한 자들만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인지 저하(치매)를 앓고 있고, 강아지는 비인간이다. 다른 극장에서 아버지와 강아지가 함께 하는 장면이 잘 상상되지 않았다.

 

왜 극장인가

극장은 비관객을 상정하고 관객을 인준하는 것 같다. 마치 민주주의가 비시민을 상정하고 시민을 인준하듯이 말이다. 민주주의는 모두에게 권리가 있다고 하지만, 동시에 그 권리가 적용되지 않은 범주를 끊임없이 양산한다. 고대 아테네에서 여성, 아이, 노예가 그렇고, 오늘날 대표적으로 난민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반명 민주주의는 오늘날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적용되는 모델인 것에 비 어쩐지 극장은 선택하는 여러 공간 중 하나일 뿐인 것 같다. 그러므로 극장은 특정 범주를 비관객으로 배제하는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될 듯하다.

극장은 왜 소수자, ‘정상’과 ‘표준’이 아닌 존재를 배제하면 안 되는가? 원활한 공연 진행을 위해? 시연자들이 온전한 집중을 돕고 소비자인 관객에게 피해가 가지 않기 위해? 객석이라는 일률 혹은 규율의 오래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이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왜 극장인가?

극장이 이 세계에, 더 나아가 우리 삶에 어떤 효용이 있는지 먼저 파악한다면, 극장이 왜 어떤 존재들을 배제하는지 혹은 하면 안 되는지에 대한 확실한 질문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무엇보다 우리가 말하는 극장, 그중에서 객석의 핵심적인 성격은 바로 ‘수동성’이다. 수동성에 대한 다양한 언술들을 모아봤다. 우리의 질문이 ‘왜 객석인가’ 혹은 ‘왜 관객인가’ 등으로 더 구체화할 수 있기를.

 

“깜깜해진 객석에서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한 채 꼼짝없이 앉아있는 것도 멋지다. 극장에서는 불을 끈다. 신자유주의 안에 그런 곳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극장은 멀티태스킹을 모르는 곳이다. 한번 생각해 보라. 몇 시간 동안 자리에 앉아, 앉는 것 말고는 하지 않는 곳이 극장 말고 또 어디에 있을까?” 마텐 스팽베르크, 《그들은 야생에 있었다》, 작업실유령, 2021년, 10쪽.

“끼어들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 카벨은 그것이 우리가 시민으로서의 삶(CIVIC LIFE)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항체를 만들어준다고 믿는다. 실제 삶에서 타인의 내면을 전연 알지 못한 채 대면하는 데 익숙한 관객들에게 위험에 노출된 인물들의 비극적인 운명을 속수무책으로 관람하도록 물리적으로 강제하는 관람 방식이 특유의 윤리적·미적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카벨은 그것을 타인의 삶을 인정(RECOG_NITION)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비극의 윤리적·미적 성격은 바로 이렇게 연극이 공연되고 영화가 상영될 때 우리가 상호인정의 관계를 만들지 못하고 이를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보도록 강제한다는 점에 있다. 관람을 마치고 일상생활로 돌아온 관객은 그가 영화에서 보았던 것과는 달리 타인을 바라보아야 하고 또 그러한 비대칭성을 깰 수 있고 또 깨야 한다. … 바로 그와 같은 수동적인 태도가 관객을 운명에서 해방시킨다는 것이다.” 서동진, 《동시대 이후 : 시간-경험-이미지》, 현실문화A, 2018년, 228쪽.

“능동적인 것과 수동적인 것 사이에 근본적 대립을 사전에 설정하지 않고서야, 제자리에 앉은 관객을 능동적이지 않다고 선언하게 해주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 어째서 보기와 수동성을 동일시할 수 있겠는가? 말이 행위의 반대라는 편견에 기대지 않고서야, 어떻게 듣기와 수동성을 동류시할 수 있겠는가? 이 대립-보기/알기, 외양/현실, 능동성/수동성-은 명확하게 정의된 항들 사이의 논리적 대립과 전혀 다른 것이다. 그 대립은 고유하게 감각적인 것의 나눔, 즉 위치 및 이 위치에 결부되는 능력과 무능력에 대한 선험적 분배를 정의한다.” 자크 랑시에르, 《해방된 관객》, 현실문화, 2016년, 23쪽.

“페이션트가 된다는 것은 인격이 사라지거나 특이성이 소멸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우리가 수동적으로 될 때, 우리는 능동성을 발휘할 때보다 훨씬 더 선명하게 우리 자신이 된다. 환자의 자리는 대체될 수 없는 나의 자리다. 내 몸, 내 질병, 내 장기, 내 죽음의 자리는 대체되지 않는다. 대역을 쓸 수 없다. 그것은 단독자의 자리다. 활동이 아니라 감수의 자리에서 우리는 자신을 만난다. 겪어내야 하는 것을 겪는 그 자리에서 우리는 자기가 된다.” 김홍중, 《은둔기계》, 문학동네, 2020년, 273쪽.

 

모든 감각이 과포화된 시대에 앉아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객석. 시민으로서의 삶에 윤리적·미적 힘을 실어주며 현실과 상호작용하는 객석. 수동성과 능동성의 근본적인 대립으로 만들어진 감각적인 것의 나눔을 벗어나는 해방의 조건인 객석. 그것은 곧 감수자, 즉 페이션트(patient)로 자신이 지닌 감수능력을 알아채고, 능동성 너머 수동성이 지닌 힘에 도달하며, 나 말고는 대체 불가능한 단독자의 자리에 앉는 것이다.

 

신경전형인 관객과 신경다양인 관객

왜 극장인가? 왜 객석인가? 왜 관객인가? 극장과 객석과 관객이 현실의 삶에 주는 효용은 더 이상한 누군가 배제할 근거를 찾지 못할 정도로 크다. 앞서 이야기한 아이, 인지 저하증이 시작된 남성, 강아지는 왜 객석의 자리에 앉을 수 없거나 상상될 수 없을까? 그들은 ‘신경전형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경전형’이라는 말은 자폐와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 커뮤니티에서 나온 용어로, 규범화된 인지 능력을 갖추고, 종 전형적(species typical)이라고 간주되는 개인이나 특질을 가리킨다. 자폐증 연구자이자 동물 옹호가인 대니얼 살로먼은 이렇게 썼다. “신경전형주의는 전형적 신경을 가진─자폐증이 아닌─뇌 구조를 가진 사람들에게 특징적인 인지 과정을 특권화하지만, 자폐 성향이 있는 인간이나 비인간 동물들에게 자연스러운 다른 형태의 인지 과정은 최소한 암묵적으로는 열등한 것으로 간주한다.” 

“‘신경다양성’ 논의는 자폐증을 비롯한 여러 가지 신경적 차이를 반드시 치유해야 할 질환으로 보는 대신 민족성, 성적 지향?정체성 등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다양성으로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운동이다. 신경다양성 관점을 견지하는 이들은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지배적 규범을 ‘신경적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차별로 인식하며, 그것은 바로 ‘신경전형인의 특권’이라고 비판한다. 즉 여기서 신경전형이란 신경다양성 스펙트럼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들, 즉 비자폐인이나 신경질환이 없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수나우라 테일러, 《짐을 끄는 짐승들》, 오월의봄, 2020년, 119~120쪽.

 

그렇다면 객석의 문제는 민주주의의 문제가 된다. 민주주의가 비시민이라고 상정한 이들이 곧 비관객이 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배제와 포함의 원리는 소수자를 재생산하는 과정이다. 아이는 보호를 받아야 하지만 차별이 정당한 존재이며, 신경다양인 혹은 인지다양인은 다양성을 보장받기보다 지식 권력이나 사회적 조건에 의해 소외되며, 동물은 그 모든 것이 합해진 차별을 받는다.

이제 우리는 신경 다양성을 위한 극장을 고민해야 한다. 세계가 점점 더 배제와 차별이 과열될수록 객석이 먼저 배제와 차별을 없앨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정말이지 극장은 세계의 흐름에 따라 같이 종말해버릴지도 모른다. 모두가 객석에서 수동성의 힘을 느낄 수 있도록, 자신의 자리에서 단독자가 될 수 있도록. 그것이 우리의 현실과 주고받을 영향에 대해서는 다음번에 또다시 논의하기로 하자.

조기현

작가, 영화감독

이유정, “어떤 극장도 휠체어 출입 금지라고 써 붙인 곳은 없지만” 

나는 그를 유튜브에서 처음 봤다. 그때 나는 덜컹대는 지하철에 앉아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역사를 추적하는 방송과 인터뷰, 짧은 클립과 뉴스를 연달아 살피고 있었다. 유아차를 끌고 다니는 동안 지하철역에서 누린 편리가 서울시의 탁월한 행정이 아니라 그 투쟁 덕분인 것을, 너무 늦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빠르게 정보를 내어주는 유튜브의 알고리즘에 나를 맡겼다. 

그러다가 그가 만든 영상도 나왔던 것이다. 그는 어차피 주목받는 김에 관종이 되겠다고 하기도 하고, 자신을 보고 당황하거나 피하는 이들에게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가 시선을 받는 이유는 휠체어 때문이었고, 영상 속에서 그는 휠체어를 타고 버스를 타거나 사무실 건물에 들어가거나 비행기를 타거나 했다. 너무 뻔한 에피소드라기엔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건 짐작만으로 알 수 없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나는 그 영상들을 보다가 그에게 연락했다. 그가 극장에 간다면, 극장종말론자가 아닐 수 없으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는 리즌정의 원더랜드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소플의 대표로 있는 이유정이다.

 * * * * *

 

사전 인터뷰를 줌으로 진행하고 처음 만나게 되었어요. 반갑습니다. 〈극장종말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터인데, 어떤 생각으로 인터뷰에 응하게 되었나요?

 

아이를 키우는 처지에서 극장을 노키즈존으로 보고 계시다는 게 인상 깊었어요. 노키즈존인 곳은 휠체어가 들어가기 어려운 곳일 경우도 많아요. 그게 아니더라도 노키즈존 안내를 보면 괜히 위축되어 눈치를 살피게 되기도 합니다. 제가 어린이가 아니라고 해서 편안한 상태로 머물게 되지는 않아요. 

 

이런 인식이 극장이란 장소와 연결된다는 점, 배제가 발생하는 장소에 관해 극장을 중심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재미있었습니다. 아이가 갈 수 없는 곳에는 결국 성인인 발달장애인도 갈 수 없을 가능성이 커요. 노인도 연결점이 있고요. 대놓고 안된다고 입장 금지를 써 붙이지는 않지만, 암묵적으로 금지되는 공간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어떤 극장도 휠체어 출입 금지라고 써 붙인 곳은 없어요. 하지만 물리적으로 제약이 있거나 어차피 안 올 것으로 생각하고 조성된 장소는 갈 수 없고 그건 출입금지인 것과 다를 바가 없어요. 극장 말고도 그런 장소는 너무 많고요.

극장에서 종말의 장면을 목격한 경우가 많으실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정말 극장 더는 못 오겠다 생각했던 경험이요. 

 

일단 경험을 말하기 전에…. 저희는 극장에 ‘갈 수가’ 없어요. 인터뷰 같은 걸 할 때, 제게 문제점을 말해달라고 하시는데, 일단 기본적인 접근 자체도 안되니까 경험을 말할 수가 없는 거죠. 그리고 정보가 너무 적어요. 접근성이 고려된 공간이 있어도, 그걸 몰라서 갈 수 없고, 안가니까 또 안 온다고 생각해서 고려를 하지 않고요. 그래서 저는 제가 간 극장, 콘서트장의 휠체어 석에 관한 정보를 블로그에 올리고 있어요. 저도 제가 갈 수 있을 거란 생각 자체를 못했거든요. 이걸 보고, 아 여기 휠체어를 가지고 갈 수 있구나 처음 깨닫게 되셨다는 분들의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어요.

 

어렵게 어렵게 극장에 가도 문제는 많아요. 작은 공연장은 입구에 휠체어를 놓고 들어가요. 저 같은 경우는 조금은 걸을 수 있어서 손을 잡고 들어가요. 그럴 수 없는 사람은 업히거나 안겨서 객석에 앉기도 하고요. 휠체어 석이 맨 뒤나 맨 앞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한번은 맨 앞줄에 휠체어석이라고 앉았던 지인이 뒷좌석에 앉은 관객에게 휠체어 때문에 안 보인다고 항의를 받기도 했어요. 휠체어석이라는 게 일반인 좌석 하나를 뺀 것인데, 휠체어 높이가 있다 보니 애매해진 거죠. 

 

게다가 휠체어석이 일반 객석들과 따로 떨어져있다보니, 외롭다는 분도 계셨어요. 자리 자체에 문제가 있다기보다 분리된 게 문제라고 해야 할까요. 한 줄이 다 휠체어 석으로 되어 있으면, 그 자리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 있어야 하거든요. 북적이는 객석 바깥에 있는 것이 외로워서 휠체어석이 있어도 거기에 앉지 않고, 업혀서 안겨서 일반 객석에 앉으신다는 거죠.

 

또 하나는 예약하는 과정이에요. 극장에 가려면 표를 예약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인터넷 예매사이트에서는 휠체어 좌석 예매를 하려면 무조건 전화로 하게 되어 있어요. 저도 낮에는 일하고 퇴근 후에야 예매할 생각이 드는데, 그게 안 되는 거죠. 왜냐하면, 업무시간 내에 전화로만 예매해야 하니까요. 출근하면서 지하철에서 전화로 예매하기도 하고 그래요. 게다가 전화를 한다고 끝이 아니에요. 예매처에서는 극장 상태는 잘 모른다고 제작사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제작사에서는 극장에 확인해보겠다고 하면서 회신이 늦어지기도 해요. 그걸 기다리고 확인하는 과정은 인터넷 예매에 비하면 훨씬 오래 걸리고 번거로운 과정이예요. 그 점에서 스트레스도 있고 심리적으로 거리감이 생겨 포기하게 되기도 해요. 

 

그럼 처음 극장에 가신 건 어떻게 가게 되신 건가요?

 

저는 극장에 상당히 늦게 가봤어요. 대학에 진학한 후에 휠체어를 타면서 활발하게 다닐 수 있게 되었는데, 그렇게 다녀도 공연장에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했어요. 당연히 못 간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중 우연히 월드컵경기장을 지나가는데,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들이 줄을 서 있었어요. 그때 장애인 콜택시에서 내린 휠체어 관람객이 입구로 가는 모습을 봤어요. 전혀 생각도 못했던 장면이라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아, 휠체어로도 콘서트장에 갈 수 있구나’라는 생각으로 머릿 속에 번개가 치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우선 워낙 사람이 밀집해있으니 떠밀릴 수도 있고 위험할 것으로 생각했고, 휠체어를 타고 콘서트장 가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당연히 못 간다고 여겼거든요. 주변에 경험자가 없으니 막연히 못간다고 생각한 것인데, 그 뒤로는 한을 푸는 것처럼 콘서트도 보고 연극도 보게 되었어요. 지금까지 많이 보러 다니고 있어요.

 

극장에 꼭 가야 할 필요가 있을까, 정말 관객이 되는 게 중요할까,  이 작업 하면서 동시에 그런 생각 많이 해요. 어떠세요?

 

제게는 정말 중요해요. 현장에서 오는 생동감이 확실하게 존재하거든요.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것들 물론 좋죠, 하지만 저에게 있어서 극장에 간다는 건 단순하게 공연만으로 끝나는 행위가 아니예요. 중요한 사건, 말하자면 나들이 같은 것이에요. 공연을 보고 맛있는 걸 먹고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공연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하나의 사건인 거죠. 게다가 학교에서 단체로 극장에 관람을 가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럴 때는 일종의 사회적 경험의 일부라고도 생각해요. 

 

최근 장애인들에게 온라인을 통한 경험을 많이 강조하는 것을 많이 봐요. 예를 들면 특수학교에서 세계 여행을 VR로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처럼요. 물론 그것이 필요한 부분도 있죠. 그런데 무조건 온라인으로 할 수 있으니까, 오프라인을 빼놓을 순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현장에 가서 공연을 보고 싶어요. 하나의 좋은 방법인 것은 맞지만, 온라인이 오프라인의 대안이 되고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관객으로서 자신을 인식하신 순간은 언제일까요?

 

제가 직접 그 자리에 가서 앉았을 때요. 공연을 보고 그 내용을 알고 연출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해서 관객이 되는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휠체어석이 보장되어 있고 그 자리가 안전하다고 느껴질 때 조금 더 관객으로서 당당해지는 것 같아요. 휠체어를 타고 오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관객 중의 하나라고 여겨지는 것부터가 중요한 것 같아요. 사실 극장에 간다고 마음먹으면 갈 수 있어야 하잖아요. 하지만 현실은 너무 달라서요. 얼마든지 보러 오라고, 언제든 관객이 되라고 하면서 정작 경사로가 없거나 좌석을 구석에 몰아놓는다면, 그건 진짜 관객이 되는 일을 방해한다고 생각해요.

 

그러고보니 휠체어 석은 선택할 수 있는 자리 자체가 제약이 있군요. 예매할 때 좌석 등급이 어떻게 되나요?

 

보통은 VIP석이나 R석이예요. 많은 경우 1층에 휠체어석이 있으니까요. 2층에 있는 곳도 있지만 많지 않아요. 때로 복지할인 받으니까 같은 값을 내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혜택처럼 얘기하시는 때도 있는데, 사실 VIP라고 하기에는 그만큼 불편하고 선택권이 없는 자리이기도 해요. 원하는 자리를 고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게다가 요즘은 할인도 줄어들거나 없어진다는 생각도 했어요.*

극장에 올 수 있는 조건들을 다양하게 가져보고 싶으면서도 저 또한 계속 의심이 되어요. 그게 될까요?

 

극장에서 시끄럽게 하면 다들 쳐다보잖아요. 발달장애인이나 휠체어를 타는 사람은 눈에 띌 수밖에 없으니 시선을 받게 되고요. 그래도 서로 다른 상태와 다른 관람 방식을 서로 생각하면서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여겨져요. 저 자신이 휠체어를 타기 때문에 극장에 가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했잖아요, 그런데 얼마 전에는 저보다 10살 어린 동생과 평소 다소 시끄럽게 말하는 엄마와 함께 극장에 갔는데, 이번에는 몸이 아니라 마음이 너무 불편하고 불안했어요. 극장에서는 조용히 해야 하는데 뭔가 실수하면 어쩌지 조마조마했어요. 또 극장에 올 수 있을까,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그러니까 극장은 교양있고 조용한 사람들만 보는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객석에서 제가 너무 위축되는 거죠. 

 

작은 극장이나 무료 공연, 저렴한 좌석에 앉을 때도 위축되는 경험이 있어요. 휠체어를 타고 오신다고요? 이렇게 되묻는 것 같이 느껴지는, 상상을 못하시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러면 일단 위축되고 관객으로서 어떤 것을 얘기하기가 어려워져요. 한번은 친구가 '모서리' 이야기를 했어요. 지하철에서 노약자석이나 휠체어석이 한쪽에 몰려 있고, 극장에 가서 보니 끝이나 귀퉁이, 모서리에 자리를 몰아 놓고요. 이 모서리가 최선의 자리일까 생각하게 되었는데, 극장에 갈 수 있는 조건을 다양하게 한다는 건 이 모서리에만 몰아넣지 않겠다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 * * * *


 

인터뷰를 마친 오후에 나는 지하철을 탔다. 구석에 앉았다. 오늘은 아이가 없으므로 내가 원해서 앉는 것이지만, 아이와 함께할 때는 어디서나 구석으로 기어들어가는 기분이다. 모서리로. 

 

거기 앉아 내가 한때 외롭기 위해서 극장에 가기도 했다는 걸 기억해냈다.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는 곳, 어둠 속에서 느껴지던 고요한 안전을 찾아서. 그때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그럼에도 진짜 혼자는 아닐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짜로 외롭기 위해 객석에 앉았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오늘 만난 이유정 대표를 비롯해 큰 극장에서 지금의 휠체어 석을 이용하는 이들은 극장에서 진짜 외로워지기도 한다. 그래서 극장에 있음에도 관객이 아니라고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인터뷰 중 휠체어 석이 따로 떨어져 있고 거기 앉아서 공연을 볼 때 외롭다고 느꼈던 분은, 결국 극장에 와서도 관객 중 하나가 되지 못했음을 감각하셨던 게 아닐까. 그가 덩그러니 앉은 모습이 머릿 속에 선하게 그려졌다. 그건 극장 밖에서의 모습과 얼마나 다를까. 


 

*사전 인터뷰 때 복지할인 이야기가 나왔었다. 나는 복지라는 이름이 붙어서 그런지, 할인된 금액만큼을 정부에서 보전해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공연제작사가 감수하는 부분이고, 할인율 또한 제작사의 재량이다 

‹휠체어 금지라고 써 붙인 곳은 없지만› 이유정 인터뷰

울림, “과거의 극장을 버리고 나오려고요. 미래의 극장을 기다리면서요.”


 

그때 그 여자들을 찾는다고 썼는데, 울림이 답했다. 저예요. 임신 기간까지도 극장을 내리 찾았으나 이제는 가지 못하는 여자요.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한때 극장을 제집처럼 드나들었으나 지금은 집에 머무는 여자들로서. 

 

그에게 이야기를 더 나눌 수 있겠냐고 묻고 날짜를 잡았으나, 나의 두 아이가 감기에 걸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가지 못했다. 낮잠 시간이지만 잠들지 않은 두 아이를 두고, 울림은 이 혼란을 이해해줄 사람이라고 믿으며 극장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상황은 그때 그 여자들이 극장에 가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으므로.

 

대화에 응해주셔서 감사해요. 간단히 소개를 해주시겠어요?

 

저는 올해 마흔 살이고 3살과 7살인 두 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7년간 전업 엄마로 지내기 전에, 방송국에서 PD로 일했어요. 중간에 기자 생활도 10개월 정도 했고요. 언론과 미디어 분야가 아이를 키우면서 계속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첫째 임신 초기에 유산 위험도 있어 퇴사했어요. 계속 예능국에서 일했고, 마지막에는 케이블TV 스타일 채널에 있었어요. 

 

사실 예능PD를 하게 된 것도 공연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요. 공연 기획 직무를 알아보기도 했지만 부모님으로서는 안정적으로 느껴지지 않으셨던 것 같아요. 저 또한 관객으로서 공연을 좋아하지만, 공연을 만들고 제작하는 분야를 잘 알지 못했고요. 안정적이면서도 비슷한 일은 뭐가 있을까 찾다가 예능PD가 된 것 같아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극장종말론>을 처음 접하셨을 때 어떠셨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너무 통쾌하고 울컥하고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라고 하셨어요. 

 

극장에 가는 건 특별한 외출로 여겨져요. 좋은 옷을 입고, 늦지 않으려고 신경을 쓰고, 미리 도착해서 표도 받고, 기념사진도 찍고, 캐스팅도 확인하고, 다른 관객들을 구경하기도 합니다. 저는 관람 예절이 몸에 익은 관객이었고 그 사실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했어요. 미리 착석해야 하고, 공연장 안에서는 사진을 찍으면 안 되고, 인터미션은 몇 분 정도니까 미리 화장실을 다녀와야 하고, 극장 내 식사는 당연히 안 되고, 타인의 관람을 방해하면 안 되고…. 등등 ‘안 되는’ 항목을 많이 알고 있었죠. 그것을 잘 모르는 관객을 비웃기도 했어요. 

 

아이를 낳고 극장에서 멀어지자 그 특별한 외출이 그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좌절감을 느낀 것 같아요. 아무 때나 소리를 지르고 울고 드러눕고 움직이는 생명체의 전담 양육자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환영받지 못하게 되었구나, 아이가 클 때까지는 돌봄이 해결되지 않는 한 극장에 가지 못하겠구나, 생각했어요. 제멋대로 움직이는 아이라는 존재는 당연히 관객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거죠. 

 

저의 엄마는 취미로 플룻을 연주하시며 매년 정기 공연을 열지만, 아이를 낳은 후로 7년째 못 가보고 있어요. 첫째가 빨리 커서 할머니 연주를 보러 오면 좋겠다고 말씀하곤 하십니다. 그런데 장애가 있는 둘째를 낳고 나서 과연 그날이 올까 까마득하게 느껴졌어요. 비장애인이자 모범생 성향인 첫째는 때가 되면 극장 예절을 지킬 수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세 살에 아직 걷지도, 말을 하지도 못하는 둘째가 열 살이나 열다섯 살이 되면, 극장 예절을 지킬 수 있을까요? 그러지 못할 거라는 예상이 장애에 대한 저의 편견일 수도 있지만, 장애가 없어도 그게 힘든 사람은 많잖아요. 그런데 둘째를 낳기 전에는 그걸 몰랐어요. 일정한 나이가 되면 예절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는 규범을 내면화한 채 살았어요. 

 

그런데 극장종말론 글을 읽으면서 공연을 너무나 사랑했던, ‘찐 관객’이었던 나를 밀어내는 극장, 너는 대체 어떤 존재냐, 어떤 자격을 가져야만 관객이 될 수 있는 거냐, 반문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고 통쾌했어요. “공연 보고 싶다”라고 말했던 내가, 단지 과거를 그리워하고 슬퍼하기만 한 게 아니라 볼 수 없는 현실에 분노하고 있었다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눈물이 날 것 같았나 봐요. 

 

둘째 아이는 극장 입장이 가능한 나이인 열두 살이 된다 해도 조용히 앉아서 관람하는 게 어려울지도 몰라요. 장애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로서, 약해서는 안 되고 자신을 드러내서도 안 되는 극장 규범의 종말을 고하고 다른 상상을 해보자고 말하는 것이 고마웠어요. 전혀 다른 극장을 만들고 바꿀 수도 있다는 희망이 생겨서 무척 기쁘기도 했어요. 

 

‘공연 보고 싶다’라는 말이 단지 그리움이 아니라 볼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연결되어 있다는 게 정확한 표현 같아요. 그 분노가 이 작업의 출발점이기도 했고요. 분노 이전에 우리가 그리워하는 극장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어요. 처음 극장에 갔던 걸 기억하시나요?

 

부모님께서 어렸을 때 어린이 뮤지컬을 데려가셨다고 하는데, 사실 그건 기억나지 않아요. 제 기억에 정확히 남은 건 초등학생 때 처음 가 본 세종문화회관이에요. 클래식 음악회와 발레 공연을 연달아 봤어요. 우연히 표가 생겨서 두 차례 모두 또래 친구들과 갔는데, 다들 재미없다고 했어요. 그런데 저는 제 눈앞에서 그런 게 벌어진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벅찼어요. 아직도 생생해요. 

 

집에 돌아오는 길에 광화문 사거리에 그랜드 피아노 광고가 있던 것까지 기억나고, 로비도 기억나고. 그날 다들 가장 좋은 옷을 꺼내입고 귀한 장소에 가족들이 함께 간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건 정말 특별한 기억이었고, 저 세계는 무엇인지 궁금해졌어요. 중고등학교 때는 아이돌을 좋아해서 콘서트나 공연장을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갔어요. 그래서 이 극장종말론에서의 극장은 어떤 극장인지 궁금했어요. 극장이 정말 다양하잖아요, 음악 공연장인지, 연극을 하는 극장인 건지.

 

 

기본적으로는 프로시니엄 무대에 한 방향 객석을 가진 전통적인 중대형 극장이고, 그중에서도 공공 극장을 생각하고 기획한 프로젝트예요. 공공 재원을 가지고 비영리로 운영되는 극장을 공공 극장이라고 보는데, 우리나라는 공공 극장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요. 공공극장을 중심으로 이야기하지만 결국은 통상적인 극장 규범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죠.  기억하시는 첫 극장 경험이 아주 각별해서 계속 영향을 끼쳤을 것 같아요.

 

맞아요. 현장성을 인식한 것 같아요. TV에서는 줄 수 없는 감동이 있다는 걸 느낀 거죠. 그래서 어디에 공연이 있다고 하면 기를 쓰고 찾아갔어요. 표를 사기 위해 세뱃돈을 모았고, 부족한 금액을 보태달라고 부모님을 조르기도 했어요. 중학교 때는 앨라니스 모리셋이 내한해서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했는데, 3층 맨 꼭대기 좌석에서 혼자 봤어요. 부모님이 극장 앞까지 데려다줄 테니 혼자 들어가서 볼 수 있겠냐고 해서 가게 되었어요. 가족이 다 같이 볼 돈은 없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거의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것인데도 워크맨을 들고 다니면서 듣거나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과는 무척 달랐어요. 제가 좋아하는 록스타가 앞에 와서 공연하니까 그것도 너무나 신기했고요. 그때부터는 더 많이 조르게 되었어요. 밤새워서 엠넷 보고 MTV 보며 팝 순위를 외웠고 돈을 모았다가 내한한다는 가수가 있으면 조르기를 반복했어요. 

 

바네사 메이가 양재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할 때도 부모님이 차로 데려다 주셔서 저와 동생만 들어갔어요. 무대에서 영어로 이야기하니까 어른들은 웃고 있는데 저희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좋았어요. 그때 딱 하나 들린 단어가 파가니니였어요. 그 이름을 말하고 바네사 메이가 본인 곡이 아닌 곡을 연주했어요. 그래서 파가니니라는 바이올린 잘 켜는 사람이 있나보다 짐작했어요. 누가 그 이름 들려줬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무대를 직접 보면서 음악가 얘기를 들으니까 잊히지 않았죠.

 

그러다가 PC통신 생기던 시기에 자우림이 막 데뷔했거든요. PC통신 팬클럽 동호회에서 활동하다가 대학로 라이브극장에서 공연할 때 단체 관람도 하고, 일반 관객 퇴장 후에 동호회 관객들만 남아서 팬 미팅도 가지고 그랬어요. 

 

말씀하시는 경험들 속에서 극장에 간다는 것은 단순히 공연이나 작품을 본다는 것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것 같아요. 더 복잡한 경험인 거죠. 

 

맞아요. 만남을 위한 장소였다는 생각도 들어요. 처음에는 그냥 혼자 좋아해서 갔는데, 거기 가면 나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혼자 가서 봐도, 친구랑 같이 가도, 동호회를 통해도 각각 다른 모임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공연 보고 나서 하는 뒤풀이도 있잖아요. 없더라도 친구랑 극장 앞 계단이나 마로니에 공원에 앉아서 이야기하다가 돌아오니까, 극장에 간다는 건 그 모든 걸 아우르는 재밌는 외출이었어요. 그리고 객석에 앉으면… 뭔가 특별해지는 것 같았어요.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직접 만나고, 바로 앞에서 보고, 동호회를 통해 관람할 때는 정말로 출연자와 관객이 서로를 인식하고 있기도 했고요. 

 

울림이라는 인물의 극장사를 듣는 것 같아요. 그 이후에는 또 어떤 극장에 갔나요?

 

대학 진학 후에는 서태지 공연을 찾아 대형 극장이나 주 경기장을 갔던 것 같아요. 서태지의 본공연 시작 전 무대에서 새로운 밴드들이 많이 등장했어요. 그게 이어져 다른 밴드 공연도 찾아보게 되었고, 대학로에서 <헤드윅> 공연도 처음 보게 되었어요.

 

너무 자연스럽게 연결되네요. 이제 뮤지컬로 넘어가나요?

 

네. 조승우라는 배우를 좋아하게 되면서, <헤드윅>을 정말 여러 번 봤어요. 같은 배역을 맡은 다른 배우가 제각각 다르게 공연하고, 같은 배우라도 어제와 오늘의 공연이 현장에서 매번 다르고요. 그런 것을 발견하는 재미를 느끼니까 계속 반복해서 가게 되었어요. 조승우 배우의 표는 구하기도 어려워서, 피시방에 가서 대기하다가 티켓팅을 하기도 했어요. 그때 공연 작품이 점차 많아져서, 조승우라는 배우를 통해 다른 뮤지컬로도 시야가 넓어진 것 같아요. 

 

공연을 극장에 가서 본다는 것이 갖는 매력을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있으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계속 반복해서 볼 수밖에 없으셨던 것 같고요. 학교나 회사에 다니면서 극장을 꾸준하게 찾으신 건데, 일상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극장은 어떤 영향을 주는 곳이었나요?

 

버는 돈은 다 공연 보는 데에 썼어요. 극장에 갈 날을 달력에 표시해놓고 그날을 기다리면서 지냈어요. 극장에 가려고 일을 했던 것 같아요. 회사 다닐 때도 휴가를 한 2주 내면 그중에 열흘 정도를 공연만 보면서 지냈어요. 영국으로 혼자 여행을 가서도 매일매일 웨스트엔드의 공연을 보는 거예요. 너무 그리운 시절이죠. 돈은 모을 수 없었지만 극장에 다녀오면 그게 너무 좋으니까, 그게 나를 살린다는 생각으로 극장을 간 것 같아요. 

 

임신 중에 <지킬앤하이드>를 보러 가니, 스릴러라서 임신부에게는 위험할 수 있다고 객석 안내원께서 말씀해주셨어요. 저는 이 작품의 가사와 대사를 하나도 빠짐없이 외운다고, 괜찮다고 말하며 들어갔죠. 만삭까지도 극장에 정말 많이 갔어요. 객석은 하나도 불편하지 않았어요. 

 

 

객석이 좁고 답답할 법도 한데, 불편하지 않았다는 게 재미있어요. 이미 극장에서 공연을 보는 것이 갖는 의미와 가치를 알고 있는 관객에게는, 물리적으로 객석이 어떻게 딱딱하고 좁은지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네요. 

 

객석이 불편하고 몸이 힘든 것보다, 커튼콜 때 관객들이 모두 손뼉 치고 환호하는데 그걸 힘껏 함께 할 수 없는 게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헤드윅> 공연의 커튼콜은 관객이 다 같이 뛰고 노래하는데 임신 중에는 배가 무거우니까 뛸 수가 없어서 무릎만 살살 튕겼어요. 완전히 빠져들어서 보고 앵콜 때에야 몸이 아픈 게 느껴지는 거죠.

 

첫째 아기가 13개월쯤 되었을 때, 친정엄마에게 아기를 맡기고 낮 공연을 보러 갔어요. 전에 봤던 작품이니까, 저기 무대 세트가 어떻게 바뀌었네, 저기 연출은 이번에 저렇게 했네, 이런 것도 재공연 때 달라지네, 하면서 봤어요. 변화를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주로 동생분이랑 공연을 보신 것 같아요.

공연을 보고 나면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데, 극장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이랑은 나눌 게 더 많잖아요. 동생은 제게 딱 맞는 친구 같았어요. 같이 울고 같이 웃고. 공연이라는 게 그 공연 하나만 보고 딱 끝나는 게 아니고 앞뒤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이 있잖아요. 그걸 같이 할 수 있는 게 제게는 동생이에요.

 

같이 보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주변에 앉은 관객들로부터도 영향을 받는다는 뜻으로 이해되어요. ‘관크’라는 용어도 그런 차원에서 생겼을까 싶어요. 저는 사실 그 용어 때문에 극장 내에서 더 조용히 하고 움직이지 않으려고 하게 된 적도 있었던 것 같아요. 함께 객석에 앉아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지, 어떤 관객들을 봤었는지 궁금해요.

 

제가 가장 좋았다고 생각하는 공연은, 조승우 배우가 군 제대 후에 했던 첫 공연이에요. 정말 표를 구하기 어려원 공연이었고, 그만큼 조승우 배우의 팬들만 왔어요. 공연장을 채운 공기가 달랐는데, 다시 말하면 관객들의 집중도 달랐던 거죠. 그게 좋았던 이유는 다 같은 마음이라는 감각 때문이었던 거 같아요. 

 

평소에 극장에 가면 객석에 팔짱 끼고 어디 잘하나 보자는 식으로 앉아 계신 분들이 있거든요. 끝까지 휴대전화만 들여다보기도 하고요. 그런 사람은 특별한 행동을 해서 방해하지 않더라도 관람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 같아요. 반대로 너무 많이 봐서, 전날 했던 애드리브나 행동 같은 것을 다시 요구하는 관객도 있었어요. 예를 들어 <헤드윅> 공연에는 그럴 여지가 많아서요. 이 공연을 처음 보는 관객도 있을 텐데 그건 좀 불편했던 것 같아요. 

 

*함께 객석에 앉아 있는 것으로 어떤 친밀감이 쌓이는데, 그것을 초과하는 방식이 불편해진 순간인 것 같아요. 그런 관람 태도를 보일 것이라면 극장에 가지 않아야 하나, 극장은 과연 모두가 가야 하는 곳일까, 의문이 들어요. 울림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극장에 모두가 가야 하냐고 하면,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전에는 음악과 공연을 좋아하는 게 당연하고 모든 사람이 그런 줄 알았거든요. 하지만 전혀 관심이 없고 왜 좋은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런 분들이라면 극장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것 또한 경험해봐야 알 수 있는 거잖아요. 누구든 극장에 가는 게 어떤 건지 직접 경험해볼 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극장에 가고 안 가고는 이후에 각자가 판단할 몫이죠. 어쨌든 극장은 안 가보면 알 수 없는 곳이에요. 그런 차원에서 접근성이 중요한 것일 테고요.

 

울림은 꽤 어렸을 때 극장에 갔었잖아요. 언제 처음 극장에 가느냐도 중요한 것 같아요. 아이들을 언제쯤 극장에 데려가야지, 생각해보셨나요? 

 

첫째 아이가 어린이 뮤지컬을 본 적은 있어요. 저를 닮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극장에 가는 걸 정말 좋아해요. 자신은 영상보다 실제로 보는 공연이 더 좋다고, 저런 무대에 서고 싶다고 말하곤 해요. 이제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데, 학교에 가면 연극도 만들고 출연도 할 수 있다는 말을 해주기도 했어요. 그래서 첫째랑 제가 좋아하는 공연을 함께 하는 것에 대한 기대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극장종말론>을 접한 후에, 발달장애가 있는 둘째랑은 공연을 보러 갈 것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어요. 발달장애인과 가족이 볼 수 있는 방법으로 특별 회차를 편성하는 등에 방법이 있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조금 더 느슨한 형태로 편안한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시에 한편으로는 엄마가 혼자 보고 싶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저도 혼자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하지만 리서치 과정을 지나면서 보니 그것 또한 지금의 정상성에 기반한 환경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 것 같아요. 만약 지금 혼자 극장에 가시려면, 어떤 준비와 과정을 거쳐야 하나요? 

혼자서 보는 게 편하리라 여겨지지만 사실 준비 과정은 시작부터 난관이 예상되어요. 일단 원하는 공연을 보려면 티켓을 예매해야 하는데, 티켓 오픈 시간에 맞춰 접속해서 예매 전쟁ㅡ ‘피케팅’에 참전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해요. 제때 기저귀 주문하기도 힘든 육아 중에 피케팅이라니…. 심기일전하고 피시방 가서 서버 시각 띄워놓고 클릭할 때도 자주 실패했는데, 지금은 꿈도 못 꿉니다. 

 

운이 좋게 표를 구한다면, 그때부터는 아이 돌봄을 해결해야죠. 남편이 휴가를 낼 가능성은 매우 적으니, 아마도 친정엄마께 와주실 수 있는지 여쭤볼 거예요. 와주신다면 아이들 하원, 둘째 치료실 일정 등에 차질이 없게 미리 조율하고, 돌봄 기관 선생님들께 할머니가 하원 때 오실 거라고 미리 전달해둬야 해요. 친정엄마가 아이들을 챙길 때 알아야 할 사항들을 전달하고, 상황에 따라 저녁까지 미리 차린 후 정신없이 씻고 나갈 거예요. 

 

혼자 가면 몸은 가볍겠지만 그것도 예전과 같을 수는 없어요. 여유롭게 극장 근처에서 밥을 먹고 미리 표를 받고 사진 찍을 여유는 아마 없을 거예요. 정시에 들어가기만 해도 천만다행이죠. 집에서 나가기 직전에 아이가 보챌 수도 있고, 토를 할 수도 있으니까요. 

 

어렵게라도 공연을 본다면 정말 벅차고 즐겁겠지만, 끝난 후에 극장 근처에서 여운을 즐기거나 시간을 보내고 올 수는 없을 거예요. 감동을 겨우 누르며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서 엄마를 기다리는 애들을 달래고 재우고, 저를 대신해주신 친정엄마께도 감사 인사를 드리고 일상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극장에 다녀온 건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리며 곱씹을 새도 없이 잠이 들겠죠. 게다가 비싼 공연이었다면 카드값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후회할 테고, 결국 당분간은 모든 공연 정보를 차단하자고 다짐하게 될 것 같아요. 

 

아이를 데려가도 데려가지 않아도 혼란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렇게까지 해서 극장에 가야 하나 자괴감이 들 때가 많아요. 이래서 저희가 사라진 여성 관객이 된 것이구나 싶네요. 극장에 가는 것을 특별하고 즐겁게 만들어주던 조건들이 저를 옥죈다는 생각도 해요.

 

어릴 때부터 극장에 간다고 하면, 깔끔하게 입고 조용히 있어야 하고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고 배웠어요. 그리고 그런 규칙들 때문에 극장이 특별한 것이라고 인식하게 되기도 했어요. 그걸 알고 지킨다는 건 교양이 있는 것이고, 그런 예절을 갖추지 못하는 것은 교양 없는 짓이라고 여기게 된 거죠. 그런 과정이 극장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면서 동시에 누군가는 배제하고 소외시키게 되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이 점에 누군가에게는 일상 속의 특별한 이벤트를 만들어주는 요소이고, 누군가에게는 아예 극장의 문턱을 높게 만드는 거죠.

 

첫째 아이가 세 살쯤 되었을 때, 맘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아이와 엄마가 함께 공연을 볼 수 있는 행사에 참여했어요. 조명도 그리 어둡지 않고 소리도 편안한 수준이어서 이유식을 먹이든 기저귀를 갈든 상관없다고 편하게 즐기라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즐겁게 즐기는 가족들이 많았어요. 당시 저희 아이는 소리에 예민해서 드라이기 소리에도 울던 때라,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울어서 저는 로비에서 화면으로만 봤어요. 극장에 간다는 게 내 욕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떻게 해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무대에서 진행하시는 분이나 출연자들이 아무 눈치 보지 말라는 메시지를 계속 보내주니까, 보호자들의 마음이 편안한 거예요. 이렇게 편안해질 수 있구나, 라는 가능성을 보긴 했어요. 

 

영유아는 아니더라도 어린 관객들을 자주 볼 수 있는 곳은 방송국이나 콘서트장인 것 같아요. 가보면 경호하시는 분들이 팬들을 함부로 대해요. 제가 방송국에서 조연출로 음악프로그램을 맡고 있을 때도 그랬고요. 제가 어린 팬들에게 존댓말을 사용해서 규칙과 진행 방법을 안내하면, 다른 스태프들이 비웃었어요. 왜 어린애들한테 저렇게 정중하게 하는지 모르겠다는 식인 거예요. 

 

많은 어린이나 청소년들은 전통 연극이나 뮤지컬, 클래식 음악회보다 대중음악 공연에서 먼저 무대를 만나고 있어요. 그렇게 관객 경험을 시작하게 될 때 위축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제가 처음에 아이돌을 좋아했기 때문에 다른 음악도 듣게 되고 극장에도 가게 되고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게 된 경우라서, 관객 개발이라는 것이 필요하다면 어린 관객들을 존중하는 것부터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어린 관객들을 존중하는 태도에 관해 얘기해주신 거 너무 인상 깊고 좋네요. 관객은 개발하는 게 아니라 기르는 것이라는 얘기를 해주신 분이 계시는데, 그것과도 맥락이 닿아 있는 것 같아요. 내년쯤 8세가 될 첫째 아이를 데리고 극장에 간다고 하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세요? 어떤 조언과 충고를 해주실지 궁금합니다. 

 

최근 친구가 <호두까기 인형> 발레 공연 표를 저에게 양도했어요. 그래서 다음 주에 처음으로 첫째 아이와 극장에 가게 될 것 같아요. 아이들이 뛰고 노래하고 말해도 되는 공연이 아닌 극은 처음이라서 어떻게 받아들일지 긴장이 됩니다. 

 

어두운 걸 싫어하는 아이라서 미리 어두워질 거라고 이야기를 해줄 거고, 음악은 있지만 말이나 가사는 나오지 않고 멋진 옷을 입고 춤을 추는 공연이라고 설명해줄 생각이에요. 가만히 앉아서 보는 게 힘들 수 있으니까, 밖으로 나가고 싶으면 엄마한테 귓속말로 말해달라고 일러줄 생각입니다. 

 

<극장종말론>에 대해 몰랐다면 그냥 조용히 해야 하고, 가만히 앉아서 봐야 한다고만 말했을 것 같아요. 예쁜 옷을 입혀서 엄숙한 의식처럼 갔을 거예요. 지금은 그냥 편한 옷 입고 중간에 나올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가려고 해요. 극장 분위기에 아이가 주눅 들고 경직되길 바라지 않아요. 아이가 불편한 걸 참는 게 당연하지도, 필요하지도 않다는 걸 생각하게 되었어요. 육아 때문에 희생하거나 공연을 보고 싶은 마음을 참거나 미루는 게 아니라, 미래의 관객과 함께 과거의 극장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마음으로 가려고 해요. 아이가 힘들어하면 미련 없이 과거의 극장을 버리고 나오려고요. 미래의 극장을 기다리면서요.

 

아이가 잘 앉아서 봐준다면 그것 또한 기특하고 고맙겠죠, 현장감과 설렘과 떨림을 아이도 느끼면 좋겠어요. 저는 공연과 극장을 사랑하던 관객이고, 내 아이도 라이브 공연이 주는 감동을 즐기게 되길 바라요. 그래서 모범생 첫째뿐 아니라 둘째도 함께 같이 공연을 즐길 수 있길 바라요. 

 

그리고 아이가 나중에 어떤 공연을 좋아하든 지지할 거예요. 저는 11살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아이돌 팬이라서 대중음악 팬을 향한 세간의 무시에 대해 늘 화가 났어요. 뮤지컬을 즐겨보는 2030 여성을 돈줄로 보는 업계나 사치 부린다고 보는 사회적 시선도 불쾌하고요. 대체로 여성이 무언가를 좋아하면 그건 흔히 멸시의 대상이 되는 것 같아요. 가수도, 배우도, 브랜드도, 콘텐츠도, 그게 뭐든지요. 

 

저는 제 아이가 아이돌을 좋아하면 전적으로 지원해줄 생각이에요. 공연장에 데려다주고, 팬 사인회 가야 되면 굿즈도 사줄 거고, 피케팅에도 같이 참전해 줄 거고요.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무시당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좋아하는 사람을 보러 공연장에 가서 불쾌한 경험을 하고 오지 않으면 좋겠어요. 특히 아이돌 공연장에서는 무시당하고 클래식 공연장에서는 품격있는 관객으로 대우받는다고 인식하게 되지 않았으면 해요. 공연이 있는 곳에서는 똑같이 관객으로 존중받으면 좋겠어요. 관객으로서는 아이에게 공연자를 존중하라고 가르칠 거예요. 보기 싫은 공연을 억지로 참고 볼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용기를 내 무대 위에서 공연을 펼치는 사람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죠. 의도적으로 공연을 방해한다거나, 나쁜 말을 한다거나, 집기를 훼손한다거나, 공연장이 아니어도 당연히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은 여기서도 하지 말라고 조언해주고 싶어요.

 

극장에서 지켜야 할 규칙과 조언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극장과 사회가 닮은 면이 많다는 걸 다시금 느껴요.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실까요.

 

극의 본질은 억압이 아니었을 텐데, 지금의 극장은 왜 이렇게 된 걸까요. 장애학 강의에서 장애인을 능력 없는(dis-able) 존재로 만드는 건 사회이고 비장애 중심의 사회가 장애인을 무력하게 만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관객과 관객이 아닌 사람을 구분 짓는 극장을 과연 극장이라 할 수 있을까요? 의도하지 않았어도 결국 관객을 골라서 받고 어떤 존재를 배제하고 소외시키는 극장은 정말 종말을 맞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극장에 가만히 앉아서 무대에 집중하는 행위는 학교에서 정해진 자리에 앉아 수업에 집중하는 태도랑 크게 다르지 않죠. 발달장애가 있어 일반 학교에 진학을 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둘째를 생각하면 자주 암담해져요. 일반 학교에 진학해도 특수학급에서 시간 대부분을 보내야 할 거예요. 어쩌면 특수학교로 가야 하는데, 집 근처 특수학교에 자리가 없어 교육 난민이 될지도 몰라요. 학교에서 장애 학생을 배제하는 논리와 극장에서 장애인 관객, 특히 발달장애가 있는 관객이나 아이들을 배제하는 논리가 같아요. 극장에 가지 못하는 관객은 학교에도 갈 수 없고 지하철도 탈 수 없네요. 

 

첫째 아이는 집에서 엄마, 아빠, 동생을 관객으로 앉혀놓고 여러 공연을 선보여요. 자기가 놀이터에서 공연을 할 거니까 이웃들을 초대하라고 할 때도 있어요. 정작 밖에 나가서는 낯 가리고 인사도 말도 잘 하지 않지만 집에서는 퍼포머예요. 둘째 아이도 음악이 나오면 들썩들썩 춤을 추고 좋아해요. 저랑 눈 맞추며 입을 ‘오’ 모양으로 오므리는데, 노래하라는 뜻이에요. 저만 알아봐요. 그런 걸 보면 아이들은 타고난 퍼포머고,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음악, 예술을 즐기는 아티스트들이라는 생각을 해요. 결국 이 아이들이 딱딱한 어른이 되는 건 공연에 대한, 극장에 대한 판에 박힌 교육과 권위적인 문화 때문인 것 같아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때 싱어롱관을 따로 운영했거든요. 노래를 따라 부르고 싶으면 정해진 곳에서만 따라 불러야 하고, 거기에서 가만히 있으면 또 촌스럽다고 눈총받겠죠? 조용한 뮤지컬 극장에서 아이가 노래를 따라 하면 그건 또 예절이 아니라고 째려볼 테고요. 당연시되고 경직된 관람 문화에 대해 새롭게 이야기해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미래의 극장을 기다리면서요› 울림 인터뷰
색 얼룩

진한 만남이 있었던 전시를 이제 막 마무리했다. 작은 동네에서 짧은 기간 동안 진행했던 전시였지만, 나는 꽤 진지했다. 잘하고 싶었고, 멋지고 싶었다. 문득 누군가에게 글로 나의 전시를 설명한다면 공간의 느낌과 시각적 구성 요소들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짧은 글로 전시의 장면들을 설명해본다.

경기도 과천의 별별극장 한쪽에 제법 근사한 전시장을 하나 마련했다. 하얀 바닥과 벽이 있는 20평 남짓의 사각형 공간에, 천장에는 크고 작은 조명기가 여럿 달린 그리드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곳에 일 년 동안 열심히 찍었던 이웃 사진과 그들의 이야기 스무 편을 일정 간격을 두고 공중에 걸었다.?



사진은 우리가 만났던 이웃들의 얼굴 사진으로, A2 사이즈의 랑데뷰 240g 종이에 세로로 출력했고, 글은 100자 남짓의 글로 압축하여 같은 재질 종이에 A3 사이즈로 출력했다. 랑데뷰는 종이의 지질을 말한다. 종이에는 별도의 코팅을 하지 않아 사진의 표면이 빛에 반사되지 않도록 했다. 글은 각각 남색 배경에 흰색과 노란색 글씨, 혹은 흰색 배경에 검은 글씨로 굵기를 다르게 하여 디자인했다.?



사진 한 장마다 글 한 장씩을 걸었다. 공간 내 설치되어 있는 그리드에 철제 와이어와 고리를 이용하여 설치했고, 위쪽의 모서리 두 곳에 펀치를 뚫어 매달아 두었기에 누군가 설치된 사진과 이야기 앞을 지나가면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고는 했다. 설치된 사진과 이야기들은 저마다 높낮이를 달리해서 공간 높이의 중간 정도 위치에 걸려 있었다. 사람들은 사진과 이야기 사이를 거닐 수 있었고, 공간의 입구에서 보면 사진의 얼굴들이 서로의 어깨 사이 사이로 드러나 마치 단체 사진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장면을 만들었다.

공간의 오른쪽 벽 전면에 설치된 대형 거울을 커튼으로 가리지 않고 그대로 열어두었다. 정면을 향해 걸려 있는 사진들이 오른쪽의 거울에 비추어서 공간이 가로로 넓어 보이도록 했다. 천장의 그리드에는 작은 전시용 조명들이 열 개 남짓 걸려 있었다. 각 조명은 전원이 들어오는 레일에 걸려 있어서 걸려 있는 사진과 글을 밝게 비추었다. 전체적인 조명은 하얀색 빛깔이었고, 사진과 글이 설치된 부분은 다른 공간보다 조금 더 밝았다. 은은한 재즈풍의 캐롤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일년간 팝업 사진관으로 진행했던 프로젝트 ‘별별 사진관’을 마무리하며 그동안의 기록을 전시하는 ‘별별 이웃 사진전’이었다. 과천에 있는 한 살 배기 창작공간 ‘별별극장’이 극장의 용도를 달리하여 사진관과 전시장이 되는 과정이 꽤나 흥미로웠다. ‘별별 사진관’에서 사진 작가 장은혜는 스무 명의 마을 이웃을 만나 밀도 있는 이야기들을 수집하며, 이들을 위한 프로필 사진을 찍었다. 공연과 연습으로 사용되던 이 공간의 매무새를 만지며 사진을 한 장씩 걸 때마다 전시에 어떤 사람들이 와서 어떤 감각을 하게 될지 상상했다. 내가 의도했던 공간의 율동감을 관객들도 느낄까. 이웃들의 이야기가 두런두런 전달되는 것 같은 순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사진의 수평을 여러 번 점검하며 전시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전시의 오프닝 날에 첫 손님이 찾아왔다. 극장 인근의 청계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명의 아이들이었다. 극장에 여러 번 와보았던 이들은 조금은 달라진 분위기에 낯설었는지 공간에 설치된 사진들을 힐끗 보더니 아는 사람들이 있는지 빠르게 훑어보았다. 그리고 이내 이곳의 조도와 분위기에 조금 익숙해지자 천장에서부터 와이어로 걸려 있던 사진들이 이들의 림보 게임을 위한 설치물이 되었다. 고요하게 흘러나오는 전시장의 배경 음악이 민망해질 만큼 신나게 아이들이 웃어젖히며 림보 게임을 시작했다

말려야 할까. 조용한 분위기를 만들어달라고. 오늘 이 극장은 분위기 있는 전시장이 되기로 약속했다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야 할까. 설명한다면 곧잘 수긍할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어쩐지 입이 떨어지지를 않아서 멍하니 림보 게임을 구경했다. 사실 이 약속은 내가 극장과 한 것이지, 이곳을 놀이터 삼아 드나들던 이들과 상의한 것은 아니었다. 오늘은 극장을 내가 내 마음대로 사용하는 날이니, 이곳에서는 놀지 말아야 한다는 규칙을 써 붙인 적도 없었다. 다만 전시장의 설치물들을 보고 림보를 떠올릴 것이라는 상상을 미리 하지 못했던 것일 뿐이었다. 나풀거리는 이웃들의 사진 아래로 아이들이 무릎을 구부리고 허리를 뒤로 꺾은 채 아슬아슬 빠져나왔다. 걸어둔 사진에 옷깃이라도 스치면 아이들 웃음소리에 극장이 쩌렁쩌렁 울렸다.

관객들이 공간의 율동감을 느끼길 바랐던 나의 의도가 떠올라서 웃음이 났다. 내가 머릿속으로 그렸던 장면과는 달랐지만 분명 이곳의 율동감이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제멋대로 나부끼고 있었다. 어쩐지 싫지 않았다. 전시를 관람하는 방식, 전시장의 약속과 규칙은 누가 정했을까. 어쩌면 이곳을 가장 많이 찾았던 이들과 대화할 수 있는 약속과 규칙이어야 하지 않을까. 잘하고 싶었고, 멋지고 싶었던 스스로가 어쩐지 머쓱했다. 나도 저 틈바구니에 끼어서 같이 림보를 하고 싶었다. 아이들은 이내 거울을 마주 보고 서서, 에스파의 블랙맘바를 추기 시작했다. 핸드폰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가 전시장의 배경 음악보다 간신히 조금 더 작은 수준이었다.

전시장에는 한참 동안 방문객이 없었고, 아이들은 계속 춤을 췄다. 무료로 오픈되는 전시라고 해서 부모님이 보내주었을 텐데, 거울도 열려 있고 사람도 없다니 이게 웬 횡재냐 싶었겠다. 전시장 바깥쪽에서 바라보고 있는 나는 안중에도 없이 신나는 댄스 타임이 한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그토록 설레며 바라던 율동감이 거기 있었다. 전시의 사진작가였던 장은혜는 6살, 4살의 딸들과 함께 전시장을 찾았다. 아이들은 엄마의 사진을 보며 잠시 좋아하더니 사진 사이사이로 숨으며 술래잡기했다. ‘이모도 같이 놀자!’ 잠시 기획자의 본분을 잊고 아이들과 뛰어놀았다. 전시장 온도가 훅- 뜨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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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떠난 뒤에도 공간의 율동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오브제 극을 연출하고 공연하는 이철성이 관객으로 방문하여 사진을 하나씩 차분히 바라보더니, 이내 전시에 대한 칭찬과 격려를 몇 마디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는 공간에 조금 더 머무르더니 이내 걸린 사진들을 하나씩 손으로 건드리며 사진들이 거침없이 좌우로 흔들리게 했다. 공간이 그와 함께 퍼포먼스를 했다. 흔들리던 사진들은 수평을 잃고 제멋대로 나부꼈고, 나는 이미 모든 것을 포기했다. 열심히 걸었는데 어떻게 하지 걱정할 새도 없었던 것은 그 모습이 사실 흥미롭고 역동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공간에 대한 나의 상상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그리고 그 틀린 틈새로 관객들이 자유로이 탐험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고, 행복했다. 이 공간에서 저마다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이들은 전시회가 만나고자 했던 관객들, 우리의 이웃들이었다.

 

관객들이 예술을 만나는 방법은 누가 정하는가. 창작과 발표에 능한 우리는 때로 관객들이 어떻게 예술을 누리는지를 가벼이 생각하게 된다. 창작자가 정한 약속과 규칙에 대부분의 관객은 수긍한다. 그것이 예술을 즐기는 방식이라고 학습한다. 하지만 이렇게 학습이 작용하지 않는 공간에서 관객들의 반응은 예술의 의도를 바꾸어내고, 도리어 그 의도의 한계를 넘어서서 가능성을 확장한다. 물론, 전시장의 약속을 금세 읽어내고 마찰 없이 전시를 관람한 관객들이 더 많았지만, 설계와 계획이 틀어질 때 마주하게 되는 이러한 장면들은 내게 더 긴 잔상을 남겼다.

 

가끔, ‘안 돼요’를 말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온다. 관객인 당신도, 기획자인 나도, 동일한 선상에서 함께 예술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내 나의 예술이 우리의 예술이 되는 순간을 마주한다. 극장의 용도 변경을 실험하는 일은 기획자로서 내가 최근 관심을 두고 있는 화두이다. 그리고 이 용도 변경의 중심에는 늘 관객이 한몫을 한다. 우리가 원하는 예술의 공간은 어떤 모습일지 질문하며 관객이 예술을 만나는 방법에서 힌트를 얻는다. 다음의 극장은 어떤 모습이 될지 기획자로서의 상상을 또 펼쳐낸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기획자의 상상이 어쩌면 관객의 상상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을. 함께 상상하며 미래의 극장을 만들어간다면, 어쩌면 극장은 종말을 맞이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임현진

독립 프로듀서. 공연을 기획하거나 제작하고, 축제 프로그래머, 국제교류 코디네이터로 일한다. 공동체를 위한 예술, 공간 민주화의 관점에서 예술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시도를 지속하며, 기획자이자 연구자로 활동의 반경을 점차 넓히고자 한다. 다수의 거리예술 프로젝트를 기획하였고, 공연예술축제를 기반으로 한 플랫폼에서의 국제 교류 업무를 맡아 왔다.

임현진

 

 

김소을 하우스 매니저님께

 

  조금 더 일찍 썼다면 좋았을 이 편지를, 이미 그 자리를 떠나 사라져 버린 수신자에게, 아무도 읽지 않을 자리에 쓴다는 점은 유감스럽습니다.
  그렇지만 써 봅니다.

 

  기억하실까요? 그때 저는 극장이라면 환장하는 인간이었습니다. 무대는, 똑같은 암전의 순간마다 매번 다른 기대감에 떨게 하는 곳, 조명이 켜지면 환상을 구현한 이상적 공간, 들어가 볼 수 없으나 바로 눈 앞에서 움직이는 다른 세계였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 조명기가 달린 배튼이 내려오면 그것대로, 리허설 중 대도구와 세트가 제멋대로 놓이면 또 그것대로 근사했습니다. 마스킹 테이프 자국이 눈에 보일 정도로 가까이 가면 속까지 뒤집어 삼킨 기분으로, 3층 객석에서 내려다보면 작은 오르골 속 장면 같아서, 빠짐없이 다 좋았습니다.

 

  그래서 객석 안내원에 지원했던 것입니다. 어떻게든 거기 있고 싶었습니다. 전공도 무관하고 예술 비슷한 경력 하나 없는 제가 내세울만한 건 참으로 초라했어요. 서울에서 가장 큰 키즈카페에서 아르바이트했던 이력을 두고, 서비스 정신이 투철하다고 썼더랬지요. 면접을 보고 매니저님이 연락을 주셨을 때, 너무 감사합니다, 라고 말했을 때, 그때 저는 정말 다 진심이었습니다.

 

  매일 오후 극장으로 가는 길이 얼마나 즐거웠는지요. 공연을 마친 후 동료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며 공연 이야기를 하는 건 또 어떻고요.

 

  물론, 그 겨울 저녁 이후로는, 모든 게 조금씩 달라졌지만요.

 

  그는 웃는 얼굴이 선해 보이는, 평범한 외모였어요. 키가 커서 눈길이 갔지요. 큰 키에 회색빛이 도는 싱글 코트를 입고 목에는 스카프 같은 것을 동여매고 있었어요. 눈빛이 조금 불안해 보였지만, 꼭 닮은 노년의 여성과 손을 잡고 서로 마주 보며 싱긋 웃는데, 아들이라면 참 좋은 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12월의 첫날이었습니다. 평일 저녁이지만 객석은 꽤 많이 채워졌습니다. 인기가 좋은 작품이었어요. 음악도 근사해서, 저희 안내원들끼리도 흥얼거렸습니다. 특히 1막 중간쯤 여자 배우가 부르는 솔로곡은 휴게실에서 자주 들렸어요. 수정언니가 정말 비슷하게 따라 부르곤 했으니까요.

 

  평소와 다름없이 하우스 오픈, 공연 시작, 그리고 그 노래가 시작되었어요. 하지만 솔로곡이 다 끝나기도 전이 객석 중간에서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습니다. 객석에서 사진 촬영을 하거나 통화를 하는 관객들이 보이면 조용히 다가가 그것을 저지하는 경우가 종종 있잖아요. 많지는 않지만 주기적으로 있잖아요. 저희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소란이 생기는 경우, 인터미션 동안 자리를 옮기고 싶다는 항의도 들어오곤 하잖아요.

 

  그 날, 두 명의 관객이 고개를 뒤로 돌려 힐끔대거나 뭐라고 조용히 말을 하기도 하고, 뒤에 앉은 사람 하나는 고개를 조아리는데, 곧 조용해졌습니다. 저는 다른 관객들에게도 방해가 되면 안 되니, 일단 주시하고 있었어요. 인터미션이 시작되자마자 그 앞자리에 앉은 두 명의 관객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뒷자리 사람들에게 뭐라고 말을 한 뒤 로비로 나가더군요. 뒤에 앉은 사람이 누군가, 하고 보니, 아까 봤던 그였습니다.

 

  밖으로 나간 두 명의 관객은, 높은 확률로 매니저님을 찾아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로비로 나갔을 때는 한참 대화중이셨고요. 이 공연을 너무나 기대하고 온 관객, 아주 먼 곳에서 한 시간 반을 지하철로 온 관객, 특별한 날이라서 돈을 더 내고 좋은 자리를 구매한 관객이었습니다. 이 공연에 필요한 좋은 관객분들이셨고, 저는 공연에 대한 기대감에 대해서라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므로, 덩달아 속이 상했어요.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 가운데 짧은 머리를 하고 상하의 모두 까만색으로 깔끔하게 입은 분께서 마지막에 덧붙이셨지요.

 

  ㅡ 저런 사람한테 표를 팔면 어쩌냐. 이렇게 민폐를 끼치는 사람한테.

 

  그와 동행인이 그 모습을 보고 찾아왔습니다. 대화도 혹시 들었을까요? 저는 심장이 피에 젖은 솜처럼 축축하고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예외 없이 누구에게나 밝게 웃을 수 있다는 게 저의 장점이라고 이력서에 썼는데, 그 날 저의 입꼬리는 천근만근 무거웠습니다. 매니저님께서는 수정 언니에게 민원을 제기한 관객분들의 안내를 부탁하신 후, 그와 그 동행인을 맞이했습니다.

 

  ㅡ 죄송하지만 혹시 자리를 옮겨줄 수 있으실까요?
 

  그 어머니가 그렇게 먼저 물었습니다.
 

  ㅡ 저희 아들이 폐를 끼쳐서요.

  제가 그때 매니저님이 시키는 대로 티켓부스에 다녀왔습니다. 예비석 자리 번호가 찍힌 새로운 표를 두 장 받아서 그 두 사람에게 전하자, 그들은 갖고 있던 1층 R석  B구역 12열 7번과 8번 표를 저에게 돌려주었습니다. 50% 복지할인-R석 40,000원. 티켓 두 장.

  어머니는 미안한 표정으로 연신 죄송하다고 말했고, 그는 어머니 손을 잡고 로비 곳곳을 살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1층 맨 뒤쪽에 남겨둔 예비석에서 2막을 보기로 했습니다. 잘 마무리된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2막이 시작되었을 때, 그 두 사람은 객석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1층 출입구 앞에 서서, 그 빈자리를, 오래오래 보았습니다.


  환하게 빛나던 무대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날 이후로도 3개월 정도 더 일했습니다. 하지만 객석에서 종종 슬퍼졌습니다. 저보다 빨리, 매니저님도 퇴사했잖아요. 저는 그게 슬픔 때문은 아닐까 생각하곤 했습니다. 너무 조용히 사라지시는 바람에, 그리고 저 또한 바로 며칠 뒤에 도망치듯 극장을 떠나는 바람에, 짐작만으로 남았지만요.

  다만 얼마 후 부매니저님이 하우스 매니저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수정 언니의 전화를 받고 축하하는 자리에 갔어요. 어쩐지 그렇게라도 가보지 않으면, 종종 찾아오는 슬픔의 출처를 물을 곳이 없어질 것 같았어요.

 

  우리는 오랜만에 시끄럽게 떠들었습니다. 하우스팀은 늘 차분하고 친절하고, 또 공연 내내 침묵하고 있다 보니 틈만 나면 더욱 시끄럽게 떠들게 되는 것 같아요. 게다가 저희끼리 공유하는 정서가 있잖아요. 공연을 만드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연과 무관한 것도 아닌 하우스팀은 어쩐지 늘 사이에 낀 존재라는 느낌. 그 애매함을 공유하면서 더욱 돈독해지고 시끄러워지곤 합니다. 그렇게 맥주 몇 잔에 모두 새빨개진 얼굴로 구시렁대었어요.

  ㅡ 극장은 끝내 망해버릴 거야, 아름다움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사람들을 쫓아내잖아.

 

  깔깔대다가, 울다가, 화를 냈습니다.
 

  우리는 각자가 다른 방식으로 극장의 종말을 상상했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극장 앞 광장에 앉아 있던 노숙자를 경찰에 신고했던 날, 박수 타이밍이 아닌데 자꾸 박수를 치다가 눈초리를 받던 관객을 쫓아낸 일, 유모차에 태운 아기를 달래며 로비에 설치된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젊은 여자, 그리고 그 날 그와 그의 엄마가 객석으로 돌아오지 않았던 일까지 말입니다.

 

  매니저님은 괜찮으신가요? 저는 슬픔의 출처를 확인하고도 계속 슬픕니다. 극장에 가지 않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망할 코로나 19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타이밍이 좋은 핑계였을 뿐입니다. 저는 야속한 극장을 멀리서 보는 일 만으로도 이미 슬퍼집니다.

 

  어떤 관객은 관객이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관객 개발'이나 '관객 발굴' 같은 희한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을까요? 아름다운 것을 함께 볼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어쩌다보니 저는 지금 SF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두 사람에게도 허락되는 객석을 상상하다 보면, 조금 먼 미래로 가게 됩니다.  

  저희도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안부를 전해주세요.

   2021년 1월 23일 도경 씀

 

 

 


 

하우스 매니저님께

친애하는 극장종말론자 여러분께 ― 적대하는 객석을 향해

 

여러분이 썼거나 등장한 ― 혹은 멀리서 읽었을 ― 스무 편이 조금 안 되는 글을 읽고 이 편지를 씁니다. 지금 제가 앉은 책상에는 몇 달째 굴러다니고 있는 영화관람권 두 장이 널부러져 있습니다. 유효기간이 이제 두 주도 채 남지 않았으므로, 영화관 나들이를 선물하기엔 시국이 좋지 않으므로, 아마도 이대로 버려질 것입니다. 시국이 이래서가 아니라 좋아하지 않아서 쓰지 않은 것입니다. 극장을, 객석을 말입니다. 저 역시 정지음과 마찬가지로[i] 영화든 공연이든 몇 분짜리인지를 더없이 중요하게 여깁니다. 조심스레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몇 번이고 어둠 속에서 시간을 확인하기도 합니다. 자주 꼼지락거리고 부스럭거립니다. 아무리 목이 뻐근해도 두두둑 소리가 나도록 비틀지는 않기, 아무리 산만해져도 콧노래를 흥얼거리지는 않기, 그나마 이 정도는 지켜 보려 애씁니다. 참아야 할 것이 많은 그곳을 저는 싫어합니다.

그리하여 반가이 읽었습니다, 여러분 극장종말론자들의 이야기를. 야근을 일삼는 직장에 다니지도 누군가에게 밀착해 돌봄을 수행하지도 이렇다 할 장애가 있지도 않은 저의 경험 대신 아이를 낳은 후로 좀처럼 만나기 힘들어진 친구를, 눈에서 한뼘만 떨어져도 글자를 읽기 곤란한 저시력자 친구를, 극장이 없는 지역에서 나고 자라 곧 중년을 바라보며 여전히 그곳에 살고 있는 친구를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스쳐가는 가게마다 경사로가 있는지를 혹은 노키즈존 스티커가 붙어있지는 않은지는 살피는 친구를, 제게 일상인 어떤 용어들을 배운 적 없어 낯설어 하는 친구를, 남녀 둘로 나뉜 화장실 어디에도 선뜻 들어가지 못해 집 밖에서는 물을 마시지 않는 친구를 생각했습니다. 객석에 앉기를 즐기지 않지만 저는 여전히 큰 어려움 없이 ― 몇 달 전 서울을 떠난 후로 고속버스 시간 때문에 평일 저녁 공연은 보지 못하게 된 것이, 관람료를 제외하면 십수 년만에 제가 처음으로 겪게 된 어려움입니다 ― 극장에 다닙니다. 저의 적의는 티나지 않으므로 매끈하게 숨어듭니다.

집중을 방해할 저의 산만함을 노려보는 주위의 적의를 애써 무시하며 되레 그들을 노려봅니다. 저의 시선은 가장 모범적인 관객을 향합니다. 웃어야 할 때에 웃는 사람, 박수쳐야 할 때에 박수치는 사람을요. 서울의 전철, 을지로입구역이었던 것 같습니다. 역사에 마련된 어느 무대의 사회자가 무대에 오른 이에게 어디에 사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을지로에 산다고 답했고 사회자는 을지로면 여기 아니냐며, 그럼 노숙을 한다는 거냐고 되물었습니다. 두 사람과 관객 대부분이 웃었습니다. 저는 그들과 바로 옆에 앉아 있던 노숙인을 (실은 그가 정말로 노숙인인지는 모릅니다만) 번갈아 바라보았습니다. 남은 시간동안 사회자는 별 탈 없이 박수를 받습니다. 동성애자를 농담거리 삼았던, 대학로에서 처음 본 연극 ― 이른바 ‘코믹극’ ― 과 신난 관객들을 기억합니다. 이제 저는 객석이 아니라 무대를 향해 그리고 객석에 앉은 관객들을 향해 한층 깊은 적의를 품지만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극장은 그러라고 있는 곳이 아니니까요.

 

*

팔짱을 끼고서 어디 잘하나 보자는 식으로 앉아 있는 사람,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방해가 되는 사람일 것입니다. 같이 울고 웃고[ii] 하기보다는 종종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만의 방에 숨은 사람이 됩니다. 신종 바이러스의 유행에 밀려 개점휴업에 처한 극장을 그리워하며 많은 이들이 소통의 공간, 연대의 공간으로서의 극장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말하는 것을 보며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객석은 연대의 공간이 아니라 더 없는 적대의 공간의 공간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감히 침범할 수 없는 무대라는 공간을 바라보며 펼칠 수 없는 욕망만을 품을 때, 그리고 그 욕망이 곁에 앉은 이들의 것과 얼마나 다른지를 끊임없이 깨달을 때 ― 우리는 무대만이 아니라 다른 관객을 또한 관람합니다 ― 저는 오롯이 혼자가 되어 모두와 적대합니다. 다시 한번 말하건대,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극장은 그러라고 있는 곳이 아니니까요.

조기현은 몇 명의 문장을 거쳐 극장에서 관객은 “나 말고는 대체 불가능한 단독자의 자리에 앉는”다고, 이것은 관객에게 그저 바라보는 수동적인 존재가 될 것을 요구하는 극장만이 해내는 일이자 극장이 우리 삶에 주는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소중한 자리가 민주주의적으로 누구에게나 열릴 수 있도록 “세계가 점점 더 배제와 차별이 과열될수록 객석이 먼저 배제와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씁니다.[iii] 여기에 한 마디를 덧붙여도 좋을까요. 적극적으로 수동적인 존재가 된, 단독자가 된 관객이 제가 극장의 규칙을 좇아 하는 대로 조용히 머문다면 관객인 자신이 대체 불가능한 존재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그저 노려보는 적대가 아니라, 그야말로 말로 또 몸으로 부딪히는 적대가 끝내 금지된다면, 오직 나만이 나를 안다면, 우리가 함께 모일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웃어야 할 곳과 박수 쳐야 할 곳을 알고 지키는 관객이나 조용히 있어야 함을 알고 지키는 저는 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길만 터 준다면 기꺼이 관극의 관습을 지키는 훌륭한 관객이 될 수 있을 어린이들,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 소수 언어 사용자들이 들어온다 해도 절로 될 일은 아닐 것입니다. 어느 전시장의 어린 관객들은 사진을 건 줄 아래로 림보 놀이를 합니다.[iv] 저는 임현진이 이것을 그들이 전시장의 “분위기에 익숙해지자” 벌어진 일로 쓴 데에 눈이 머물렀습니다. 제지하고 쫓아내는 사람 없이 머무를 수 있었던 얼마간의 시간, 그 사소한 환대만으로도 관객이라는 수동적인 위치가 그저 보고 느끼고 배우는 무력한 위치가 아니게 되었던 ― 새로운 공간의 시발점이 되었던 모양입니다.

우선은 가로막지 않기. 나아가 제지하고 쫓아내지 않기. 무언가를 만들고 보여주는 자리를 점하는, 극장에서 유일하게 능동적이어 보이는 공간인 무대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리라 짐작합니다. 무대가 스스로를 “침묵의 객석에 둘러싸인 진공 상태”로 남겨두어야만 지켜질 수 있는 것이라면, 기껏해야 정해진 자리에 정해진 웃음과 환호와 눈물만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라면, 실은 무대만큼 허약하고 수동적인 존재도 없을 것입니다. 이혜령은 진공을 벗어나 이 세계에 돌아올 미래의 극장이 관객에게 “요청할 수 있을” ― ‘줄 수 있을’이 아니라 ― “여유”를 이야기하자고 합니다.[v] 여유라는 것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인 동시에 짜여진 틀 너머에 있기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시간이라고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지금, 여기, 현장으로서의 무대의 핵심이라 해도 좋겠습니다. 객석에 미지수를 요청하고 극장을 무너뜨림으로써 비로소 극장을 열 수 있는 용기, 에 관한 말인 셈입니다.

하지만 무대 위에 없는 여유를 객석에 요청한다는 것은 이상해 보입니다. 적어도 어려워 보입니다. 조용히 집중하지 못하는 관객, 예상 밖의 반응을 하는 관객을 기꺼이 맞을 수 있는 무대였다면 애초에 희곡에 몰입하지 못하는 배우, 대본을 암기하지 못하는 배우가 나설 수 있는 무대이기도 하지 않았을까. 실은 그럴 수 있는 무대만이 객석을 열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흥미롭게도 국회라는 이름의 극장에서 좀처럼 관객으로 여겨지지 않는 사람들은 국회 밖의 고전적인 극장에서 ‘일반적인’ 관객으로 여겨지지 않는 사람들과 상당히 비슷하다”는[vi] 문장을 읽으며 저 극장에서 결코 배우가 될 수 없는 이들을 함께 떠올렸습니다. 온갖 소수자를 사회/문화/경제적으로 배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적은 물론 나이까지를 법률로써 배제의 근거로 삼아 출마부터 막는 저 무대를 보며, 무대와 객석이 공유하는 자물쇠를 생각했습니다.

*

극장종말론자 여러분. 여러분은 극장을 싫어하거나 그 종말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고, 그저 지금과 같은 객석으로는 결국 극장이 종말하고 말 것임을 예견했을 뿐이라고 하셨습니다.[vii] “진짜 종말만은 막기 위해” 미리부터 이 소식을 알리고 변화를 촉구하신다고요.[viii] 저는 여러분처럼 극장을 사랑해 본 적은 없습니다. 변함없이 굳건한 극장을 오가며 조금씩 달라진 여러분이 예감한 것은 실은 극장의 종말이 아니라 그저 극장을 사랑하는 마음의 종말일 뿐일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그 마음의 종말을 막기 위해 극장의 종말을 앞당기려는 것은 아닌지 하고요. “현실의 일도 예상치 못한 일도 즐거운 일도 슬픈 일도 재미난 일도 고통스러운 일도 일어났고 풀어졌다”는, 관객을 매료한 극장의 마법은[ix] 제겐 오히려 알리바이였습니다. 극장을 현실과 유리된 특별한 곳으로, 자율적 존재를 참칭하는 개인이 여유로이 가짜 외로움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만드는, 이를 위해 숭고와 아름다움을 내세워 객석을 통제하는 극장의 알리바이.[x]

관객에게 여기저기 돌아다녀도 괜찮다고 말한 어느 공연에서 “핫도그를 사느라 주인공의 죽음을 보지 못했다”는,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현실의 일도 극적인 일도 일어나는 극장의 본질에는 어긋나지 않고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는 이우정의 말이[xi] 그래서 반가웠습니다. 이 대목에서는 아무것도 풀어지지 않았다고 느꼈습니다. 무대의 일이 무대에 보존되는 대신 맥없이 현실의 일부가 되어버렸다고, 현실의 일이 보란듯이 관극을 침범해서는 그대로 박혀버렸다고 읽었습니다. 극장은 이런 순간에 이미 종말해 버렸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살아남은 것은, 아니, 이제야 비로소 살아난 것은, 아마도 객석일 터입니다.

극장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키려 극장을 무너뜨린다고 틀어 말했지만. 제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여러분이 사랑한 것은 무대가 아니라 객석으로서의 극장, 여러분이 종말을 재촉하는 것은 객석을 짓누르는 무대로서의 극장이라고 하면 될까요. 때로는 가까운 이들과, 종종 낯선 이들과 함께 같은 것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 때로는 같은 것을 느끼지만 종종 서로 달리 느끼기에 자신과 타인을 꺼내어 보이고 알 수 있는 자리로서의 객석, 그리고 그런 객석을 위한 공간으로서의 극장을 사랑하신다고요. 그 객석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무대를 무너뜨리기로 하셨다고요.

서로 다른 이들이 각자의 다름을 갖고서 찾을 수 있는 이런 곳을 다시금 저의 어휘로 적대하는 객석이라 불러도, 여러분이 조금씩 줄어드는 적대의 가능성을 되찾고자 한다고 말해도 좋을까요. 그런 객석은, 점잖은 어린이라면 봐도 좋을 ― 이를테면 ‘동심을 지켜 주는’ ― 이야기가 펼쳐지는 무대 앞에 놓인 점잖은 어린이를 위한 객석이 아니라, 이해 못 할 사건이 벌어지는 앞에서 이해가 안 된다고 외쳐도 좋은 객석이리라고 생각합니다. 약한 자들이 마음껏 악한 자가 될 수 있는 객석이리라고요. 이 변신이야말로 여러분이 겪었고 나누고자 하는 극장의 마법, 그 숭고이자 아름다움이라고 읽었습니다.

 

2021년 12월 15일,

안팎 드림.

 

추신.

이 글이 꼭 편지의 꼴을 할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몇 가지 단어와 어미만 바꾸면 금세 독백이 될 글입니다. 그저 언어를 생각하느라 그랬습니다. 이혜령은 극장 관계자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건네는 모든 말이 그렇긴 하지만, 편지란 답신을 요구하는 방식의 말걸기입니다. 다정하고도 강력하게요. 이혜령의 편지들에 어떤 식으로든 답장이 온다면 즐거울 것입니다. 아무 답장이 오지 않는다면, 그것이 어떤 대답인지를 우리는 알게 되고 말겠지요.
그런데 문득, ‘극장 관계자 선생님들’에겐 극장이라는 분명한 주소가 있지만, 일정한 거처가 없는 이는 편지를 받을 수 없다는 데에 생각이 이르렀습니다. 거처는 있다 해도 펜으로 쓴 혹은 프린터로 인쇄한 글은 읽을 수 없는 사람에게라면 편지는 쉽게 가닿지 않을 것입니다. 그뿐일까요. 제 문장을 술술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를 떠올리면서도 이 ― 극장종말론자 여러분에게 보내는 척 했지만 운이 좋다면 극장이나 이론과는 연이 없는 제 친구에게도 이를지 모를 ― 편지에는 평소와 같은 단어를 빼곡히 적어 넣었습니다.
「저스트키즈①」를 읽으면서는 귀나 혀를 잡아당길 손이 없는 이, 옆으로나 제자리에서 걸을 다리가 없는 이를 생각했습니다. 그 자리에 그런 관객이 있었다면 그는 어떻게 자신을 알렸을까요. 혹은 그런 관객의 존재를 무대에서 알아차렸다면, 대본은 어떻게 급히 수정되었을까요. 어떤 말을 어떤 매체로 누구를 향해 발신해야 좋을지 저는 아직 알지 못합니다. 떠오르는 몇 가지를 해낼 능력이 당장은 없습니다. 다양한 몸이 모일 수 있는 객석과 함께, 더 많은 몸이 이야기를 나누고 싸우고 적대할 수 있을 언어를, 다만 궁금해합니다.

 

[i]       정지음, 「투명한 결박」.

[ii]      이 단락의 여기까지는 울림/이혜령, 「미래의 극장을 기다리면서요」에 실린 울림의 말에서.

[iii]     조기현, 「모두가 객석에서 단독자가 될 수 있도록」.

[iv]     임현진, 「관객이 예술을 만나는 방법」.

[v]      이혜령, 「극장 관계자 선생님들께 4 : 관객을 기르는 법」.
이혜령은 정확히는 “객석에서는 어떤 여유와 환호를 요청할 수 있을 것인지”라고 썼습니다. 객석에서 무대와 공연과 극장을 상대로 청할 수 있는 여유와 환호를 말한 것으로 읽는 편이 타당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저 환호하는 것이 아니라 감히 무대에게 자신들을 향한 환호를 요청하는 관객을 마주하는 데에도 마찬가지의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vi]     장혜영, 「국회라는 극장」.

[vii]    이혜령, 「letter to the theater」.

[viii]   「극장종말론 선언」.

[ix]     이우정, 「작별을 말하기엔 이른」. 강조는 제가 더한 것입니다.

[x]      이 문장에 쓴 단어들은 이혜령의 여러 글에서 가져 왔습니다. 특히 이유정을 인터뷰해 쓴 「금지라고 써붙인 곳은 없지만」의 말미에 단 후기를  되새깁니다.
“[…] 내가 한때 외롭기 위해서 극장에 가기도 했다는 걸 기억해냈다.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는 곳, 어둠 속에서 느껴지던 고요한 안전을 찾아서. 그때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그럼에도 진짜 혼자는 아닐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짜로 외롭기 위해 객석에 앉았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오늘 만난 이유정 대표를 비롯해 큰 극장에서 지금의 휠체어 석을 이용하는 이들은 극장에서 진짜 외로워지기도 한다. 그래서 극장에 있음에도 관객이 아니라고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인터뷰 중 휠체어 석이 따로 떨어져 있고 거기 앉아서 공연을 볼 때 외롭다고 느꼈던 분은, 결국 극장에 와서도 관객 중 하나가 되지 못했음을 감각하셨던 게 아닐까. 그가 덩그러니 앉은 모습이 머릿 속에 선하게 그려졌다. 그건 극장 밖에서의 모습과 얼마나 다를까.”

[xi]     이우정, 같은 글.

안팎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시각 이미지를 만드는 페미니스트 프로젝트 노뉴워크(No New Work)에서 활동하며 주로 예술과 철학에 관해 쓴다. 반 년 전 서울을 떠났고 객석에 앉는 일이 조금 줄었다.

박종주

1. 『극장종말론』 시리즈는 2019년 영등포아트홀에서 진행된 공연 <영등등등등등등등포>(2019, 공동창작) 속 장면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착안해 시작되었습니다. 장면 제목은 '저스트 키즈'입니다. 『극장종말론:입문편』의 첫번째 글로 발행되었습니다.


2. 『극장종말론:입문편』(2021)은 총 3가지 형태로 구현되었습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관객들이 극장의 불편한 장면을 담아낸 글 묶음 <극장/세계/서사>, 작가가 직접 극장 관계자 선생님들을 수신자로 삼아 쓴 편지를 선언문과 함께 전국의 극장으로 우편 발송하는 <극장 관계자 선생님께>, 마지막으로 극장에서는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나누는 <익명의 극장종말론자 모임>입니다. 이는 서울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았으며, 계속 공개 및 진행됩니다.


3. 『극장종말론』에서 출발한 키워드들ㅡ편지, 목격담, 이론 등ㅡ을 토대로,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를 창작했고 공연했습니다. 공연의 이름은 《대극장 짓기》(Theater-ing)입니다. 2022인천아트플랫폼 창제작 프로젝트로 11월에 한 차례, 신촌극장2022 라인업으로 12월에 각각 선보였습니다. 재공연을 희망하며 베뉴와 후원처를 찾고 있습니다.


4. 2024년 12월 발행을 시작한 『극장종말론:해설편』은 본 프로젝트를 둘러싼 오해와 한계에 부딪히며 하고 싶었던 설명을 담을 예정입니다. 추가 필진과 구성을 통해 2025년을 경유해 2026년까지 진행됩니다. 이것이 극장종말론이 종말을 통과해 상상하는 미래를 그려낼 밑거름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5. #장면. 해설편의 배경

내가 분명히 극장의 종말만은 막고 싶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제 뜻과 달리 오해한 듯한 극장 및 공연 관계자 B가 와서 말했어요. "진짜 종말... 아니, 가짜 종말은 뭐 따로 있나요? 그냥 망하는 건 괜찮은데, 작가님의 신념이랑 다르게 망하는 건 못보겠다는 건가요? 극장이 얼마나 복잡한 생명체인 줄 아세요? 극장이 무슨 생각 없이 돌아가는 기계나 공산품 찍어 팔아 제끼는 공장인 줄 아시냐고요. 어떤 식으로 발전해야 극장에 종말이 안 와요? 지금 저희가 만드는 것도, 제가 어젯밤에 보고 온 연극도 다 결국은 관객과 소통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런 와중에 극장에 오지도 않은 관객들에게까지 연결되지 못했다고 실패작, 실패자 취급하시는 것으로 밖에 안들려요. 예술에 높고 낮음이 있다고 여기시나 봐요. 저희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관객의 귀한 시간을 일 분도 허투로 쓰지 않으려고 무대를 가득 채우는지 생각해보셨다면, 객석이 변하지 않는 극장이 문제라고 그것 때문에 극장은 망할 거라는 얘기는 못하시죠. 저희 같은 사람들이 애쓰는 것만큼 관객들도 지켜야 할 게 있으니까요. 그게 서로에 대한 존중이고요. 그런 게 소통이고요. 저는 진짜 요즘 신념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많이 생각해요. 뭔가 어떤 윤리가 옳다고 믿어버리고 그것만 우선시하는 거요. 작가님 신념이 모두에게 답은 아닐 수도 있다고요." 

나는 그의 말뜻을 이해한 것 같기는 한데, 그가 내 말 뜻을 이해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자... 일단 진짜 가짜 종말을 나누자는 뜻은 아니였어, 그리고 그냥 망하는 게 괜찮다고 한 적 없어... 극장이 생각 없는 기계라고 한 적은 없지만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혹은 그런 면도 있다는 뉘앙스가 느껴졌을 수는 있지만 그거랑 이건 달라... 소통... 실패작 실패자 취급을 내가 어떻게 하니... 그리고 '저희 같은 사람들'이라니, 그건 누구야, 나 같은 사람은 누구고... 저도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네요.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가, 어떻게 설명해도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어쩌면 내가 뭔가 잘못한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극장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모두 어떤 의미에서 같은 편인데, 다시 말하면 같은 걸 공유한 경험이 있는 건데, 거기서 편을 나눠 싸울 생각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거든요. 아무튼 구구절절 쏟아낼 말들을 고르던 속마음과 달리, 그 앞에서는 저는 그저 조용히 서 있었습니다. (끝)

해설편-작업개요
해설-오해풀이

어째서 그들은 극장종말론자가 되었는가? (같은 말 한 번 더하기​)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여러 오해도 받게 되었습니다. 극장 종말론? 극장 혐오자야? 그래서 극장 밖에서 공연하는 거야? 그런 비슷한 오해들. 다른 오해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자는 건데? 

〈극장종말론〉은 2019년 처음 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그 당시 4살이던 아이를 돌보면서 극장에서의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는데요. 그 과정에서 마주한 장면이 기이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극장이 이 세계의 축소판과 같다고 생각했다면, 그 날부터는 이 세계의 편견과 억압이 압축된 곳이 극장이라고 새로이 배웠습니다. 

그 이후, 저는 극장이라는 장소로부터 출발해 사회 전반에 깔린 규범의 한계를 지적하는 이야기를 모으고 나눕니다. 처음에는 극장 관계자 선생님들께 우편으로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후 에세이, 짧은 이야기, 선언문, 강연, 퍼포먼스 스코어, 그리고 퍼포먼스 등 다양한 형식으로 발견하고 발표해오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글을 읽거나 대화에 참여하는 이들을 모두 극장종말론에 연루시키고 싶어서요. 서간문이 가진 수행적 면모가  읽기라는 경험이 하나의 퍼포먼스와 같은 체험으로 바뀌는 시간을 만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각자가 스스로를 극장종말론자라고 칭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보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계속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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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혐오와 차별의 현실을 은유하는ㅡ그에 복무해온 극장

     “공연예술은 연약하고 다양한 
       인간 군상을 무대에 올리며 
       혼란하고 취약한 삶과 시스템을 
       드러내지만, 
       실제로도 나약하고 유난한 인간은 
       관객으로 초대하지 않는다.”
      <객석 없음> 중


예술은 다양한 인간의 몸과 상태, 역사를 살필 수 있는 영토라고, 최소한 정치나 학문, 경제 시스템이 벽을 쌓은 것보다는 적어도 더 나은 토양을 가졌으리라고 믿어집니다. 일단 저는 그렇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가? 예술을 담아내는 자리로서 극장은 차별의 프레임을 깨는데 기여했는가? 오히려 그 편견을 강화하는데 복무한 것은 아닌가? ...그런데 여기서 '극장'이라는 단어를 '세계'로 바꿔도 이질감이 없다면? 질문을 이어붙일수록, 이 프로젝트의 몸은 극장만이 아니라 세계를 향해있습니다. 

극장은 세계의 축소판으로 자주 은유됩니다. 세계의 생생한 단면을 압축해 무대 위에 올려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허나 제가 보기에 그 은유는 실제로 극장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차별의 모양새는 현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에 기인합니다. 극장에서의 장면만이 아니라, 극장이라는 장소를 구성하는 시스템 자체가 극장 밖의 현실과 닮았습니다. 등급을 나눈 객석, 감시와 금지부터 당연시되는 통념의 극단화, 예외를 향한 싸늘한 태도, 그들만의 세계. 극장에서의 경험들은 사회 시스템의 문제들을 회피해왔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성실하게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여성과 극장과 세계. 장소와 접근성이라는 일상적 권력에서 극장은 여성적 공간이라 인식되기 쉽습니다. 여성 관객이 많으니까. 하지만 이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지워진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부담들을 덜어낸, ‘백인-이성애-남성’을 기준으로 한 ‘정상성’을 충족하는 ‘여성’에만 한정됩니다. ‘정상성’에 복무하지 못하는 여성을 비롯해 장애인, 어린이,환자, 환자의 보호자, 야간 노동자 등은 극장을 들어가는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없었습니다. 마치 우리의 일상 속 수많은 장소에서 그렇듯이.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극장종말론자들은 극장과 세계의 종말을 바라는 걸까요, 그것을 기원하는 걸까요? 아니요. 우리 종말론자들은 그저 가까운 미래에 다가올 종말을 목격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종말이 단지 기우나 허황된 말이 아님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극장의 종말은 곧 세계의 종말이기도 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잊고, 그저 시스템을 지탱하기 위해 생겨난 규칙들만을 수호하며 속이 텅 비어버린 지금의 세계. 사랑은 없고 흉내만 있는 세계. 우리 종말론자들은 모든 게 단지 소문이 아님을 알기에, '극장이 망할 것'이라고 본 것을 말함으로써 극장을, 이 세계를 지켜내고자 합니다.

허나, 극장의 종말이라면 기시감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대체할 수 있는 오락거리가 늘어나면서, 먹고 살기가 바빠져서 오는 것이라고, 세계의 흐름에 따른 불가피한 것이라고 여기면 쉬우니까요. 하지만 극장의 종말은,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 태도 때문에 옵니다. 

따라서 이 작업은 많은 질문을 품고, 또 이어지는 질문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극장이라는 예술적 장소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여기서 작동하는 엄격한 금지의 규범들은 예술을 위해서 복무하는가?" 와 같은 넓고 큰 질문부터, 구체적으로는 "‘7세 이상 관람가’라는 규범은 예술 작품을 위한 것인가, 예술가를 위한 것인가, 관객을 위한 것인가?", "관람가 결정은 무엇을 강화하고 누구를 지우는가?"와 같은 물음으로 구불구불 이어집니다. 

그리고 대답을 시도합니다. 다만, 이 질문들에 대답하기 위해 예술 이론이나 개론서를 인용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이 이미 다른 규범이자 틀이기 때문에. 오히려 극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실제 경험에서 발견되는 장면, 감정, 어휘, 톤, 표정을 포착하고 싶습니다. 답을 찾는 시도는 실패를 거듭합니다. 답을 찾으면서도 그것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순간 누락되는 것들을 발견하기 때문에. 단순히 답을 찾기 보다는 더 많은, 더 복잡한 질문을 나눕니다.

 

 
 

자리에 앉아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무대를 두리번거리는 관객,

인스타그램용 인증 사진을 촬영하는 관객,

팜플렛의 공연 정보를 유심히 보는 관객,

지인에게 인사하는 관객.

 

조명이 꺼지면 제각기 흩어져 있던 시선은 일제히 무대를 향한다. 극장에서 보거나 듣는 행위는 자연스럽다. 마땅하고 필수적이다. 다채로운 이야기를, 생각을, 감각을 수용하고 소통하기 위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와 결이 다른 ‘보고 듣기’가 이곳에 침투한다면? 관객이 오히려 집중의 대상이 된다면? 

 

이는 서울에 위치한 한 공공극장에서 관객안내원*으로 근무하는 동안 끊임없이 마주한 질문들이다. 관객안내원의 근무는 공연 관람 규율을 실체화한다. 극장 내 질서 유지와 ‘감시’ 사이를 넘나드는 방식으로. 하루는 한 관객이 어둠 속에서 끄적거린 좌석번호 메모를 발견했다. 부스럭거리는 소음을 유발한, 즉 자신의 관람을 방해한 좌석번호였다. 그에게는 완벽한 극장이라는 그림이 있었을 것이다. 메모 속 좌석번호는 아마로 자신의 이상향과 달랐을 것이다. 기어이 그것을 찾아낸다. 치밀한 다른 그림 찾기. 

 

다른 그림 찾기 1.

"근무하며 알게 된 아마도 가장 인상적인 규정은 ‘8세 미만 아동 공연 관람 불가’다. **

 

관객안내원에게 어린 관객의 등장은 영화 <몬스터 주식회사>에서 몬스터 근무자가 아동과 눈이 마주친 때만큼 비상이다. 민감해지고 다급해지며 안내가 길어진다. “친구 혹시 몇 살이에요?”라고 나이를 확인해야 하는데, 관객이 대답을 머뭇거리거나 8세 미만으로 밝혀지면 곧장 무전기를 켜야 한다. 해당 공연의 매니저를 포함한 모든 근무자에게 아이와 보호자의 인상착의와 현 위치 등을 무전으로 꼭 보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8세 이상이어도 관객안내원은 보호자에게 아동이 관람 예절을 잘 지킬 수 있게 지도해달라고 안내해야 한다. 손에 쥐고 있는 장난감은 가방에 보관할 것을, 반짝반짝 빛나는 예쁜 신발은 공연 중 벗고 관람할 것을 사전에 알린다. 이따금 보호자에게서 당황한, 아니면 떨떠름한 기색이 느껴지면 ‘무슨 관람예절...?’, ‘이미 익히 알고 있습니다.’, ‘어련히 알아서 잘 합니다.’, ‘아이를 주시하는구나.’ 중에서 어떤 생각의 결과일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나마 극장이 나아졌다고 할 수 있는 점은 미취학 아동이라는 차별적 표현 대신 차라리 8세 미만 아동으로 나이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또한 요즘은 만 나이로 통일하여 실질적으로 7세부터 공연 관람이 가능하다나. 다행인지 숫자 놀음인지 아리송하다. 

 

다른 그림 찾기 2.

"악장과 악장 사이에 박수는 금지 아닌가요? 사람들이 박수를 막 치는데.”라고 항의를 받은 적이 있다. 덕분에 클래식 공연의 관람 매너를 알게 된 순간이었다. 사실 클래식이 낯선 관객은 곡의 중간 공백과 완전한 끝을 구분하기 쉽지 않고 더욱이 박수 매너는 잘 모를 수 있다. 혹은 연주에 감명을 받아 박수가 자동 반사적으로 나올 수도 있다. 악장과 악장 사이의 박수가 공연을 방해하는 요소라면, 이를 당연시하거나 팜플렛 귀퉁이의 문구로만 적어두는 것이 아니라 공연 시작 전에 관계자가 객석 앞에서 직접 알려주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한다. 막연한 상상이지만 “3장과 4장 사이에는 연주자들의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니 지휘자가 팔을 이렇게 하면 박수를 쳐주세요.”와 같은 안내.

 

다른 그림 찾기 3.

"어떤 관객에게는 부동(不動)의 공연 관람이 어렵다. 고요한 경청을 요하는 클래식 공연의 경우, 기침을 하면 주변의 눈치가 보이고 목캔디를 먹으려 하면 봉지 소리에 2차로 눈치가 보여 공연에 가기 힘들다는 후기를 들었다. 언젠가 피아노 연주회의 인터미션 때 한 관객이 나를 찾아왔다. 앞 사람이 목과 어깨를 “계속” 움직인다는 거였다. 알고 보니 딱딱한 의자에 장시간 꼿꼿하게 앉아 있을 수 없는 관객이었다. 극장의 담요로 허리나 어깨를 받치는 조치를 취했으나 내가 기억하기로는 결국 뒷사람을 시야에 아무도 걸리지 않는 좌석으로 이동시켰다.

*   *   *

위 세 가지는 관객안내원으로서 목격하고 실천한 감시의 일부다. 극장에는 누가 남게 될까. 만약 극장에 위기나 종말이 있다면, 넷플릭스나 인공지능의 발달과 같은 외부의 영향보다 내부에서 살아 숨 쉬고 재생산되는 날카로움 때문일 거라고 감히 말해본다. 객석 곳곳에 꽂히는 시선, 웅성거림, 눈초리, 지적, 이 모든 것들을 동반한 감시. 

 

극장에서의 감시는 돌고 돌았다. 

 

근무 초반에는 감시가 관객안내원을 향한다고 느꼈다. 짧은 머리가 머리망과 실핀에서 삐져 나오지 않는지, 숏컷 머리를 기를 것인지, 왜 머리카락 하단은 물이 빠진 갈색인지, 불만을 토로하는 관객에게 죄송하다고 했는지, 매니저와 그의 눈을 맡은 선임은 내 능력과 성실함의 정도와는 별개로 상당히 많은 것들을 지켜보고 평가했다. 공연이 끝나면 매니저 앞에 줄을 서서 관객을 어떻게 응대했는지 보고하거나 공개적으로 혼이 나기도 했다. 이러한 피드백 시간은 더 나은 근무를 위한 당연한 절차이다. 동시에 불필요하게 강압적인 분위기는 피하고 싶었다. 

 

꼬투리 잡히지 않는 관객안내원이 되기 위해 점점 더 관객을 몰래, 빤히 지켜보게 되었다. 착실한 감시로 앞서 말한 상황들이 반복된다. 아동 관객을 물리치고 무전을 하고 무전을 잘했다는 칭찬을 듣는다. 짧게라도 관객을 제지하지 않거나 공연 중 객석 사이로 허리를 숙여 걸어가지 않았다면 유독 그날의 관객이 '클린’했던 것일지, 내가 태업을 했을지 고민되기도 했다.

물론 극장 규율의 필요성과 관객안내원 근무의 가치를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극장 인력이 감축되어 기계가 검표를 하는 지금도 관객안내원은 관객의 질서 유지와 안전을 위해 필요하다. 다만 극장과 나를 포함한 개인의 변화 가능성을, 완전무결함을 향한 감시의 날이 무뎌질 가능성을 조심스레 바랄 뿐이다. 다양한 관객이 참여 가능한 작품 기획이 점점 늘고 관객안내원의 근무 매뉴얼이 바뀌고 공공극장에서 시민 대상의 이벤트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습도 좋은 변화의 방향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날카로움이 무뎌진 극장이라면 공연에서 마주치게 될 이야기를, 함께 있을 사람들을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궁금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살아 있는 수많은 몸의 고민과 선택을 배우며 나의 기억 한 조각을 꺼내고 추가할 수 있는 공간이기에, 나는 앞으로도 극장을 찾을 것이다. 

“공연 시작 전에 숨을 크게 들이 쉬고 후- 내쉬어 보세요. 이제 곧 만날 사람에, 이야기에, 감각에 반갑게 인사해 주세요.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라는 말을 나에게, 익명의 관객에게 남겨 본다. 아무래도 극장에는 감시보다 마주 봄이 어울린다.



 

*관객안내원: 극장 혹은 공연장 안내원, 하우스 어텐던트, 어셔 등으로 불린다. 극장을 특정할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관객안내원을 사용하는 극장이 있다면 그저 우연일 뿐이다.

 

**예를 들어 뮤지컬 <마틸다>의 주인공은 극 중 나이가 5세지만 마틸다가 가족과 학교라는 억압적 환경을 탈출하는 공연이 국내 극장에서는 8세 미만 관람 불가다. 국내의 마틸다들과 그의 친구들이 동갑내기의 이야기를 보지 못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아기 사자가 멋진 어른으로 성장하는 <라이온 킹>도 영화는 전체관람가, 내한 뮤지컬은 8세 미만 관람 불가라는 연령 제한에 걸린다. 어린이 공연이라는 이름이 붙지 않은 공연은 보통 8세 미만 관객을 배제한다. 8세 이상 관람 권장의 취지보다 8세 미만 입장 금지의 역할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8세 미만 아동은 공연 중 집중력이 떨어져 몸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침묵이라는 금기를 깨고 보호자에게 말을 걸거나 공연에 맞춰 소리 내어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극장 종말론이라는 주제에 맞게 글을 써야 하니 관객으로서 소외된 경험을 써야 할 것 같은데 어쩐지 나에게는 무대에서 소외된 경험이 먼저 떠오른다. 순식간에 부끄러워지던, 몸을 움츠러들게 만들던 기억들이다. 평소에 생각해 오던 무언가를 말했을 때 과한 진지함으로 조롱거리가 된 기억. 거울 앞에서 연습하던 것을 무대 위에서 펼쳐 보였을 때 어색한 몸짓과 표정, 불완전한 각선미가 두고두고 놀림거리가 된 기억. 그런 손가락질 뒤에는 다음의 말이 숨어있는 것 같았다.

 

    ‘너는 그런 것을 하기에는 너무 뚱뚱해.’

    ‘너는 그런 것을 하기에는 충분히 예쁘지 않아.’

    ‘너는 그런 것을 하기에는 평범해.’

    ‘너는 예술가가 아니야.’

 

말하자면 이 이야기들은 다음의 말로 요약될 수가 있었다.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 (바로 나처럼.)’

 

나는 어디서나 춤을 추고 노래하기를 즐기는 어린이였다. 어린이들이 으레 그렇듯이 말이다. 유난히 사람들 앞에 서는 걸 좋아해서 유치원 재롱잔치의 1부, 2부 무대를 두 번 다 올라갔다. 엄마는 지금도 내가 재롱잔치에서 활약하던 시기를 회상하기를 좋아한다. 

 

“그 조그만 애가 무대에서 발레를 하는데 동작을 어찌나 섬세하게 하는지! 손가락을 이렇게 파르르 떨더라니까. 사람들이 무대 위에 너를 보고서 웃으면서 웅성거리는 거야. 저 애는 도대체 누구 딸내미냐고. 내가 너무 창피해서 얼굴을 가리고 숨어 있었어.”

 

자라면서 조금씩 사람들이 보내는 환호가 감탄스러운 것보다는 우스운 것에 보내는 반응에 가까웠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나는 그것이 매우 실망스러웠고 때로는 화가 나기까지 했다. 어린 내 생각에 사람들은 무대 위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을 좀 더 존중해야 했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고 나는 웃음거리가 되기 싫어서 서서히 춤을 추고 노래하기를 멈추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저런 것을 하기에는 너무 뚱뚱해’

    ‘나는 저런 것을 하기에는 충분히 예쁘지 않아’

    ‘나는 저런 것을 하기에는 평범해’

    ‘나는 예술가가 아니야’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시간이 흘러 나는 무대와는 멀어지고 그 대신 완벽하게 모범적인 관객이 되었다.

 

또 나에게는 이런 기억이 있다. 스물 세 살쯤 되었을까, 당시 만나던 애인은 조소를 전공한 사람이었다. 내 주변에는 미술을 전공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나는 미술관이라고는 성인이 되고서야 처음 가본 이공계생이었다. 창작을 하는 친구들에게 그토록 끌리면서도 나는 내가 창작하는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줄을 꽤 오랫동안 눈치채지 못했다.

 

애인이 한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던 날 나는 엄마를 그곳에 초대했다. 일상 대부분의 시간을 시장의 떡볶이집에서 장사를 하며 보내던 우리 엄마는 평소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복장을 하고서 서울의 하얀 갤러리에 도착했다. 애인의 작품을 꼼꼼히 보고 내가 쓴 전시 서문도 골똘히 봤다. 엄마의 머리카락에서는 순대 냄새가 났다. 그때의 나는 지적 문화적 교양이 넘치는 애인의 어머니와 나의 어머니를 번갈아 생각하며 스스로 열패감과 열등감에 휩싸여 있느라 엄마가 그 공간에서 느끼고 있을 마음은 전혀 헤아리지 못했다. 엄마는 죽 둘러본 뒤 어색하게 커피를 마시며 무어라도 말을 해야 할 것 같은지 고심하다가 한마디를 했다.

 

    “그래. 참 예술적이네……”

예술적이다. 참 예술적이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또 ‘너는 그런 것을 하기에는……’라고 말할 때의 ‘그런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무엇이기에 우리를 주눅 들게 하고 비교하게 만들며 스스로 작품 앞에서 침묵하게 만드는 것일까? 

 

또 이런 기억도 있다. 애인이 단체전에 참여했을 때였다.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미술 교육을 하고 아이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이는 전시였다. 전시장에 도착한 나는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이 아이들과 만든 작품을 관람했다. 나의 애인의 작업은 바닥에 놓여있었는데 어정쩡한 모양의 지점토 모형이 여러 개 복제되어 작은 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내 눈에는 별로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아 이내 나는 흥미를 잃었다. 한편, 벽에 걸린 더 섬세한 그림들이 있었다. 아이들 그림에 화가가 자기 그림을 덧붙이거나 해서 만든 작품이었다. 나는 감탄하면서 그 작품을 봤다. 그러던 와중 바깥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리더니 어린이 관객이 전시장에 대거 입장했다. 순식간에 전시장은 소란스러워졌다.

 

어린이들은 전시장에 도착하자마자 애인이 만든 작품으로 달려갔고 그곳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신기하고 재미난 것을 보는 눈으로 계속 관찰하고 만지기도 했다. 그제야 나는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한 벽에 걸린 작품들이 아이들이 보기에는 너무 높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또 그 그림들은 아이들이 그린 그림에서 이미 너무 멀어져 버려 자신의 작품임을 어린이들이 알아볼 수 없었다. 반면 애인의 작품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었고 아이들이 직접 지점토로 만든 모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아이들은 자기 작품이 어떻게 여러 개로 복제되어 다른 친구들의 작품과 함께 어우러졌는지를 잘 볼 수 있었다. 이때의 기억은 두고두고 내게 되돌아와 아름다움의 기준이 누구에게 맞추어져 있는지를 스스로 묻게 만든다.

 

시간은 10년 정도 지나 나는 벌써 여러 권의 책을 낸 작가가 되었다. 그때 내가 동경하던 친구 중 많은 수는 더 이상 작품 활동을 하지 않는다. 내 주변 사람들은 나의 과도한 진지함을 조롱거리 삼지 않고, 나 역시 그것을 내버려두지 않을 만큼은 단단해졌다. 나는 이제 지적으로 문화적으로 가장 앞선 작품들을 읽고 볼 수 있는 특권을 누리면서 지낸다. 그리고 이 세계가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얼마나 많은 거짓 권위로 이루어진 곳인지를 본다.

 

“조용히 있으라! 가만히 있으라! 정해진 시간에 오라!”라는 관객에게 주어지는 명령이 나에게는 무대 위의 사람에게 주어지는 명령과도 이어져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실패하지 마라! 우스워 보이지 마라! 촌스럽게 굴지 마라!” 이러한 명령은 너무 많은 시도를 일찌감치 무너뜨린다. 창의성과 예술과 어울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 짓고 경계를 만든다. 모든 이들의 마음 안에 잠재된 예술가의 씨앗을 뭉개버린다.

 

창의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그 앞에 사람들이 머리를 조아리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 마음과 몸을 활짝 펼치고 그에 반응하며 살아가는 상태 자체다. 내게는 화이트 큐브의 미술관에 작품을 거는 사람들만큼이나 비누 받침대나 문고리의 묵묵한 쓰임을 보고 감탄할 줄 아는 사람,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며 삶을 새로 배우는 사람, 매일 시장에서 만나는 이들을 기억하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람들이 창의적인 사람들로 느껴진다. 자신이 부딪힌 세계에 자신을 열어젖히고 스스로 변화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 말이다.

아름다움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시끄럽고 약한 자들을 금지하는 극장은 망할 것이다. 그러나 시끄럽고 약한 자들에게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극장은 새로 태어날 것이다. 우리는 무대를 바라보는 사람인 동시에 무대 위에 올라와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모두 아무것도 아니고 그렇기에 또한 특별한 누군가다. 우리에게서 아름다움을 말할 권리를, 아름다움을 누릴 권리를 빼앗는 것은 무엇일까?

신유민
하미나

공연이 올라가기 전 극장에 셋업을 들어갈 때 나는 늘 주머니에 ABC 초콜릿을 잔뜩 담아가거나 에너지 드링크를 몇 병 챙기곤 한다. 자칫하면 예민해질 수 있는 현장에서 스태프들에게 나눠주는 초콜릿 한 줌, 음료수 한 모금의 느슨함이 나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조명, 음향, 무대 참여자로 공연 일을 시작한 덕에 20대 때 해외 내한 공연의 기술 통역을 자주 맡으며 기술 스태프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약 15년 전만 해도, 셋업 작업은 대개 밤을 새워야 하는 일이었다. 당시 각 분야의 감독들은 효율적인 작업 진행을 위해 전력을 다했지만, 예기치 않은 상황은 늘 발생했고, 예술과 기술적인 성과를 동시에 추구하려다 보니 시간은 항상 부족했다. 그럴 때마다 감독들은 ‘이제는 우리도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만큼 위험도 있었고 조심할 일들도 많았는데, 전문 인력보다는 아르바이트생이 더 많던 곳에서 어린 스태프들은 그 누구도 사전에 알려주지 않은 수많은 규율과 상식들을 눈치껏 배워야만 했다. 밤을 새워 기술 셋업을 하고 나면, 다음 날 아침 예술 실연 팀이 들어오고, 기술 스태프들은 무대 위에서 실링(무대 천장)으로, 백스테이지로, 콘솔로 이동한다. 기술 스태프들은 늘 그렇게 오페라의 유령처럼 며칠, 혹은 하루나 이틀 밤 만에 기적을 만들어내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야 했기에 목소리를 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비록 좀 더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하는 국공립 극장이라 할지라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예술 기관만의 특수한 상황으로, 경영 부서와 예술 부서(예술단, 기획팀 등), 그리고 기술 부서의 본질적 업무 차이를 좀처럼 좁힐 수 없었다. 주 52시간제가 도입되면서(2019년) 무대 인력의 노동권과 현장 업무의 모순적인 관계를 개선할 대응 방안이 부족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미국, 유럽 등의 노동조합 제도 사례를 연구하고 제도를 세우는 등, 안전한 작업 환경, 안정적인 일자리, 전문성의 인정을 위해 끊임없이 연대하고 노력해 왔다. 시간이 지나며, 국가가 인증하는 무대예술 전문자격증과 수료증이 도입되었고 이제 모든 이들은 공연장에 들어가기 전 필수 안전 교육을 받아야만 한다. 나는 이 변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또한 대한민국이 여러 재난과 사고들을 경험하면서, 극장 또한 관객, 예술가, 그리고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적절한 장치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고 생각했다.

◆ 무대예술전문인 제도를 통하여 무대예술분야의 전문성을 강화하여, 무대예술의 부문간 지역간 균형 발전을 증진

◆ 무대예술전문인들 간의 활발한 교류와 경쟁을 통하여 무대예술분야의 기술향상 지향

◆ 무대예술종사자의 사기양양 및 자긍심을 고취하며, 우수인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여 공연 예술의 완성도 제고 및 전국 국 . 공립 공연장에 무대예술전문인을 의무 배치하여 극장관리 및 운영의 효율성 증진

     - 무대예술전문인 자격검정위원회, 공연법 제 14조, 제도 시행목적 中

◆ 안전취약 무대시설에 대한 전문기술 및 안전점검 지원

◆ 공연장 관리자에 대한 안전교육 및 선진기술 보급

◆ 공연장 안전 및 전문기술에 대한 연구 및 개발

◆ 공연장 안전제도에 대한 연구 및 정책지원

     - 공연장안전지원센터, 기능 및 역할 소개 中

 

그런데도 2018년 경북 김천시 산하 문화예술회관에서 조연출 아르바이트를 하던 박송희 씨가 무대 채색 작업 중 6.9미터 아래로 추락하여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법이 된다.

 

박송희 법이 제정된 이후 공연 현장은 또 급변하였다. 안전관리가 더욱 강화되었고 코로나19의 여파로 위생 관리 또한 철저해졌다. 많은 희생과 시행착오를 거치며 극장 안전에 대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그렇지만, 현장은 여전히 효율성이 우선순위였고, 이에 따라 안전 관리의 일부가 ‘온라인 안전교육 수료’로 대체되었다. 안전교육은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과 마찬가지로,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온라인 법정 교육으로 전락하였다. [공연장 안전교육 시험 답안이 블로그에 게시되어 있을 만큼 ‘어쩔 수 없이’라는 표현이 억지스럽지 않다] 물론 공연장에 셋업을 위해 처음 들어가면 극장 무대감독의 필수 대면 소방안전교육도 있다. 

 

얼마 전, 한 장애예술축제의 셋업날이었다. 극장 감독님은 늘 그렇듯 정해진 시간에 소방안전교육을 제공하였다. 그런데, 교육 중 한 장애 예술가가 손을 들어, 이렇게 말했다. “저를 담당하게 될 남성 직원 한 명을 지정해 주세요. 저의 체중은 00.00kg이고, 만일의 사태에서는 휠체어는 버려도 되니 저만 안고 가주시면 됩니다.” 극장 감독은 “우리 극장에는 든든한 남성 직원들이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상황을 안심시켰지만, 해당 예술가는 ‘특정 담당자의 지정’이 필요하다고 해결책을 요구하고 있었다. 장애 예술가는 본인의 특성에 맞는 소방 안전 대피법도 직접 제시할 줄 알아야 한다니. 제도와 경험이 부족한 예술가였다면, 이 상황은 상당히 당황스러울 법하다. 사실 현재의 규제대로라면 무대는 모든 이의 것이 되지 못한다. 예를 들어, 공연장 안전 교육 수료 과정이 온라인으로 진행되며 시험까지 치러져야 하는데, 발달 장애인, 외국 예술인, 어린이 예술가는 어떻게 수료할 수 있을까? 효율적인 안전 관리를 위해 극장이 보편의 기준을 설정하여 형식화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제도적 기반이 갖춰진 덕에 기술 스태프들의 일은 훨씬 더 수월해졌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역할이 명확해졌다. 물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많겠지만 라떼는을 시전하자면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제도적 강제성을 이행해야 하는, 그리고 안전을 유지해야 하는 책임감과 표현의 자유를 지지해야 하는 의무감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공연장 안전이 더욱 강화되면서 자연스럽게 무대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졌고 예술적 실험의 허용범위는 더 엄격해졌다. 무대감독들은 자연스레 예술적 실현을 위한 기술적 매개자의 역할이 아니라 무엇이 되고 안되고를 엄격히 결정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험악한 셋업 분위기에서 이따금 나는 초콜릿조차도 못 꺼내는 일이 잦아졌다.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지만 안전 허용의 범위를 넘어서기는 어렵기 때문에 초콜릿과 같은 비논리적인 설득은 소용이 없다. 그렇다면 반대로 예술가들이 극장의 안전한 틀을 맞추기 위해 노력할 수는 없을까? 문제는 작품의 준비기간 동안 극장의 모든 규율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채 연습실에 있다가 극장에 들어간 하룻밤 사이에 모든 것이 뒤바뀐다는 점이다. 예술가들에게 역시 쉽지 않은 주문이다.

 

한국 정부의 대응은 타국에 비하면 그래도 꽤 민첩하다. 다양한 시민과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를 빠르게 수렴하고, 세계 각국의 모범 사례를 참고하여 신속한 정책 변화를 모색한다. 하지만 재빠른 변화가 수용되는 만큼 그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여러 빈틈과 아쉬운 점들이 존재함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안전'과 '예술'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이루어 나갈 것인지는 우리 모두에게 제기된 고민의 숙제이다. 故 박송희 씨의 사건 이후 드러난 극장과 무대 예술계의 잠재적 문제들은 이제 더 이상 무시하거나 간과할 수 없는 심각한 이슈로 부상하였다. 이 중점적인 문제에는 '안전'과 '예술'이 상호 배타적이면서도 동시에 어떻게 무대예술의 핵심적인 부분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내재하여 있다.

안전과 예술, 이 둘 사이의 균형은 상호보완적이며 그 경계는 모호하다. 창조적인 자유를 위해서는 안전이 확보되어야 하며, 반대로 형식적인 안전 규제만으로는 예술의 본질적인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이런 도전과 기회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 나갈 수 있을까? 우리 사회 전반에서 예술과 안전이 동시에 존중받고 키워져야 한다는 전제하에서 시작해, 이해관계자들과 예술가들이 함께 더 합리적이고 인간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개개인의 경험과 지식, 그리고 통찰력이 종합적으로 모여 다양한 각도에서 해결책을 제시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극장은 종말되지 않고 우리는 예술의 본질적인 자유와 창의력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안전한 환경에서 이를 펼칠 수 있는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다시 내 주머니 속 ABC 초콜릿과 에너지 드링크가 효용가치를 발휘하길 바란다.

장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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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오늘 뭐 해요?”라는 메시지로 시작하는 밈이 있다. 한 야구팬에게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나’를 누나라고 부른 사람이 보내온 메시지다. 누나 뭐해요? ‘나’는 답장한다. 야구 봐. 그럼 내일은요? 야구 봐. 주말에 약속 있어요? 야구장 가야 해. 그러면 상대가 결국 이렇게 묻는다. “누나 혹시 야구선수예요?” 이 밈은 덕질로 점철된 덕후의 일상을 과시(‘떡밥’이 많은 덕질은 축복이므로)하는 동시에 자조할 때 쓴다. 기출 변형으로 ‘야구선수’ 자리를 덕질의 분야나 대상으로 대체할 수 있다. 누나 혹시 아이돌이에요? 누나 혹시 배구선수예요? 내한 공연, 한국 공연, 호주 공연, 영화까지 뮤지컬 <위키드>를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본 나를 대입한다면 이런 답이 나오겠다. 누나 혹시, 엘파바예요? 

 

답이 언제나 극장이었던 시기가 있었다. 뭐해요? 공연 봐. 뭐해요? 연극 봐. 주말에는요? 뮤지컬 봐. 지금은 그렇지는 않다. 정확하게는 그럴 수 없다고 해야겠다. 한 소극장 뮤지컬을 스무 번도 넘게 보면서, 폐막 전에 꼭 봐야 하는 연극과 뮤지컬을 꼽으며 극장에서 살다시피 한 건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요즘 같은 때에 그랬다가는 파산하기 십상이다. 극장에 가는 횟수는 매년 줄어들고 있다. 지금부터는 극장과 물리적으로 가까운 삶을 건사하느라 정작 극장에는 가지 못하게 된, 이제 더는 연극 뮤지컬 관객으로 살지 못하는 나의 이야기다.

 

극장의 종말이나 경험의 멸종에 관한 논의를 당겨온 팬데믹은 내게도 질문을 남겼다. 극장과 영화관, 미술관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서울에 살 필요가 있을까? 숨 쉬는 값이 이렇게나 비싼 서울에서 버티는 게 옳은 일일까? 답을 내리기 전에 격리가 풀렸고, 딱 그때쯤 이사를 해야 했다.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해서, 가족 구성의 형태가 변해서, 나이가 들면서 우선순위가 바뀌어서, 대부분의 친구와 지인들이 서울 중심가에서 멀어지는 이동을 하던 시기였다. 나는 마치 그런 질문을 한 적도 잊은 듯이 무리에서 떨어져 모험을 감행하는 철새처럼 서울의 가장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내 영혼을 먹일 것들이 서울에 있다는 것. 문화 산업에 종사하는 작가이자 1인 가구의 가장으로서, 나는 리모컨으로 작동할 수 없는 예술의 근처에 머무르기를 원했다. 언제 다시 고립과 격리의 시간이 찾아올지 모르기에 오히려 더, 열려있는 지금 좋아하는 장소들과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고 싶었다. 배우면서 쉬고, 느끼면서 알고, 어쩔 수 없이 ‘예술은 최고야’라는 뻔한 말을 남기게 되는 극장, 영화관, 미술관, 공연장이 가까운 곳. 여기저기로 퍼져나간 친구들과의 직선거리가 가장 짧은 지역이기도 한, 종로였다. 

 

무려 대학로가 있는 동숭동, 명륜동의 소재지인 종로구까지 왔건만, 극장에는 전보다 자주 가지 못한다. 그래서 자주 가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극장을 포함한 대부분의 문화 공간이 서울 및 수도권에 집중되고 있는 문제나, 티켓 값이 상승 중인 이유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여기서 다룰 문제도, 내가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관객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하는 것뿐이다. 극장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고, 극장에 훨씬 쉽게 갈 수 있는 거리에 살면서도 왜 이전보다 극장에 덜 가는가? 앞서 언급했던 영혼을 먹이는 공간 중 영화관과 미술관은 이전보다 더 자주 가고 있는 현실을 보면, 비용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몇 년 사이 다루는 글의 형식이 바뀌면서 공연에 관한 정보를 얻기 어려워지면서 이전보다 관심의 농도가 옅어졌다는 개인적인 이유도 언급해야겠지만, 서울에 살며 지불해야하는 고정비용의 가파른 상승세에 지지 않겠다는 듯 올라가는 티켓 값이 만드는 문제, 관객으로 살기 위해 드는 비용이 이 글의 진짜 주인공이다. <위키드> 내한 공연의 VIP 좌석 티켓 가격은 19만 원이다. 이런 숫자를 보고 있으면 공연 관객이라면 몰라도, 공연 덕후로서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절로 나온다. “다 아는 내용인데, 뭘 또 봐.” 나만 가난해진 건지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티켓 가격 문제로 대극장 ‘회전문 관객’(다 회차 재관람 관객)이 줄었다고 한다.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다 회차를 봐야만 진짜 관객이라거나 공연 덕후라는 말은 아니다. 적어도 관객으로서의 나는 이야기의 감상하고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공연을 보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공연 관람은 단 한 번뿐인 무대를,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실감하며 존재하는 것이 목적인 행위다. 똑같은 배역이 무대에 올라도, 어제의 공연과 오늘의 공연은 같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 아는 내용이니 또 볼 이유가 없다는 건 내게 틀린 말이다. 더 볼 이유가 없다고 말하고 싶다면, 이 공연이 나에게 한 번의 관람으로 족하다거나, 지금까지 본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하면 된다. 하지만 나는 <위키드> 내한 공연을 13년 만에 또 보고 싶었기 때문에, 그런데 19만 원을 내고 볼 수는 없었기 때문에 신포도 취급을 한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본 <위키드>와 같을 거라고, 11월에 영화 <위키드:포 굿>이 개봉하면 아이맥스에서 2만 4천 원을 내고 보면 된다고. 

 

연극이나 극장의 수명을 넓고 길게 본다면, 나는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다. 독감 바이러스로 인구수가 급감한 디스토피아 미래를 그리는 소설 <스테이션 일레븐>의 생존자들은 유랑악단이 되어 떠돌아다니며 셰익스피어 연극을 공연한다. 이 소설의 미래처럼, 인간이 몸을 가진 존재로 남는 한, 이야기를 만들고 찾고 누리고자 하는 본성은 연극의 형태로 이어지고 온 세상이 무대-극장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좌석의 색으로 시야의 값을 매기며, 관객이 되는 경험을 계급화한 지금 극장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하기도 전에 이미 그 공간에서 밀려나고 있다고 느낀다. 조카 둘에게 <위키드> 무대를 보여주기 위해서 월세를 지불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아르바이트를 4시간씩 이틀 노동한 값으로 중극장 연극 한 편을 보라고 누군가에게 권유할 수도 없고, 생존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극장을 오가며 머무는 시간을 끼워 넣으라고 말할 수도 없다. 언제든 극장에 갈 수 있는 거리에 살면서도 여기 사는 비용을 지불하느라 정작 극장에 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핑계이자 푸념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유무가 만드는 문제에 관하여 돈에서부터 출발할 필요도 있다고 느낀다. 단차가 높은 객석이나 할인율을 제외하면, 극장에 격차가 커질수록 좋은 건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렇게 써놓고도 <프리마 파시> 예매 창을 띄워놓고 있다. 여성 1인극의 세 캐스트 모두를 보는 건 욕심이니, 회차를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 언제나 믿음직한 배우, 좋아하는 뮤지컬의 주연이었던 배우, 거의 모든 공연을 볼 정도로 좋아하는 또 하나의 배우 사이에서 갈팡질팡 중이다. 누군가 묻는다. 이번 주말에 뭐 해요? 충무 아트홀에 연극 보러 가. 누나 혹시 관객이에요? 어, 관객이야. 가능하다면 계속 관객이고 싶어.

윤이나
최희범

혜령님, 안녕하세요.


우리는 평소엔 조금 더 편안한 말투로 이야기하지만, 이 글은 극장종말론자의 한 사람으로서 드리는 답신이기에 조금은 격식을 갖추려 합니다.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지 고민하던 차에, 혜령님이 「극장 관계자 선생님들께」 쓰신 다섯 편의 편지를 다시 읽었습니다. 요즘 제가 하고 있는 작업과도 맞물려, 읽는 내내 많은 것들이 마음속을 지나쳤지만, 특히 마지막 편지에 담긴 이 질문은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럼 무엇이 바뀌어야 좀 나아질까요? 그런데 이런 얘기는 어디에 해야 할까요?”

 

한때 극장의 어둠 속에서 ‘사라지는 몸’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던 누군가가, 이제는 더 이상 사라질 수 없는 몸을 지닌 채 극장의 미래에 대해 묻는 질문이었기에, 그리고 다섯 편이나 이어지던 편지글이 이 질문 뒤에서 멈춰 있었기에, 무언가 답을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습니다. 정답이 되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답신을 써보려 합니다.

 

요즘 저는 중도중복장애 어린이를 위한 공연 창작을 준비하는 리서치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영유아극의 미학과 방법론이 이 작업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를 탐색하는 연구입니다. 혜령님의 편지 내용은 지난 3년간 특수학교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만나며, 그 아이들에게 연극과 움직임을 가르치면서 제 안에 생겨난 많은 질문들과 공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바뀌면 좀 나아질지”를 제 방식으로 고민하며, 저는 이 작업을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최근 들어 장애 예술은 예술계 전반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공연예술계에서도 마찬가지이지요. 소위 ‘의식 있는’ 창작자라면 베리어 프리를 지향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분위기인 것도 같습니다. 정말 기쁘고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변화를 보면서도 마음 한편이 그리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지금의 극장이 있는 힘껏 베리어 프리를 표방해도, 제가 만나는 아이들은 그 극장에 가기 어렵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중도중복장애는 둘 이상의 장애를 지니고 있으며, 그 장애의 정도가 중한 상태를 말합니다. 사람마다 종류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체·인지·감각 기능에 있어 중한 장애를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어 타인의 도움 없이는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것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물을 마시거나 화장실에 가는 것처럼 아주 기본적인 일들조차 그렇습니다.

 

필수적인 일상생활조차 지속적인 도움과 돌봄을 필요로 하기에, 생존을 넘어서는 삶의 요소를 누리는 일은 매우 특별한 사건이 됩니다. 예술 활동에 있어서는 단순한 물리적 접근을 넘어서, 정보 접근조차 불가능한 경우가 많고, 보호자 역시 돌봄에 삶의 대부분을 쏟아야 하기에 문화 활동을 누릴 여유는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장애 예술계 안에서도 이들은 보이지 않는 존재로 남아 있는 듯합니다.

 

비슷한 이유에서 영유아극 역시 어린이·청소년 연극계 안에서 늘 의심받는 자리에 머물러 왔습니다. 만 0~3세 정도의 영아를 대상으로 만들어지는 연극인 영유아극은 이제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아가고 있지만, 처음에는 수많은 의심과 질문을 받아야 했습니다.

 

“아기들은 그냥 놀아만 줘도 좋아하는데 왜 굳이 영유아를 위한 연극을 만들어야 하나요?”
“어차피 아기들은 발달 단계상 ‘재현’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그게 연극으로서 의미가 있나요?”
“아기들은 작품성을 평가할 수 없는데, 그럼 영유아극을 가치 있는 예술이라 평가할 수 있나요?”

‘이런 질문을 대놓고 던졌다고…?’ 혹시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평균’의 객석에 나를 끼워 맞출 수 없는 몸, 어둠 속으로 사라질 수 없는 몸을 위한 연극은 언제나 질문부터 받게 됩니다. 현실의 연극이라는 제도는, 그리고 그 제도를 이루고 있는 우리 모두는, 끝내 이런 질문을 던짐으로써 스스로 얼마나 좁은 상상력으로 ‘연극’과 ‘관객’을 설정하고 있는지를 드러냅니다.

얼마 전, 장애 어린이를 위한 연극을 꾸준히 창작해 온 J와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장애 어린이 관객이 비장애 어린이와 어떤 점에서 같고 다른지를 이야기하던 중, J는 한 가지 경험을 들려주었습니다. 중도중복장애 어린이들이 있는 학교 강당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휠체어가 서로 너무 빼곡히 붙어 있고 앞뒤 줄 사이 간격도 엉망이라 아이들이 무대를 제대로 보기 어려울 것 같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J는 선생님께 아이들의 자리를 조정해 줄 수 있는지 물었고, 돌아온 대답은 이랬습니다.

 

“어차피 애들은 못 보잖아요.”

 

이 이야기를 듣고 저는 J와 함께 잠시 탄식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그 선생님의 마음이 이해되기도 했습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할 때, 영아들이나 중증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무대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본다고 해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연극을 얼마나 ‘즐길’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수십 명의 아이들을 위해 자리를 재배치하고 휠체어를 옮기는 시간과 노동은 교사나 활동지원사들에게 큰 부담일 수 있습니다. 그분들 역시 늘 여유롭고 힘이 넘치는 존재는 아니니까요. 현실적 비용을 고려하는 일 역시 어떤 면에서는 타당하고 필요합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저 역시 이런 ‘어차피…’의 그늘에 잠식당하는 순간들이 자주 있습니다. 몇 년 동안 기지 못하는 아이에게 기기를, 뒤집기가 어려운 아이에게 뒤집기를 가르치면서도, 매번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들께 아이들의 작은 변화를 전하느라 분주히 움직이면서도, 속으로는 문득문득 의심이 밀려옵니다.

‘이렇게 매주 연습한다고 해도 이 아이가 언젠가 혼자 몸을 뒤집게 될까?’
‘생활에 필요한 건 어차피 옆에서 다 도와주는데, 이 힘겨운 움직임의 시간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결국 스스로 뿌듯해지기 위한 일은 아닐까?’

 

이런 생각은 몸을 무겁게 만들어, 아이들과 함께 움직이는 일이 갑자기 버거워집니다. 야속하게도 표현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라, 움직임이 즐거운지, 계속 배우고 싶은지 아이들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없습니다. 궁금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연신 시계를 확인하며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전히 아이들과 움직이고, 중도중복장애 어린이들을 위한 연극 창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왜냐고요?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지만, 제가 만나는 이 아이들을 위한 연극이 몇 편 정도, 가능한 한 많이 세상에 생기면 좋겠다는 바람이 너무도 당연하게 느껴져, 굳이 설명할 말을 찾지 않기로 했습니다. 다만 혜령님을 비롯한 극장종말론자 선생님들이 극장의 종말을 말하면서도 여전히 극장을 고민하고, 연극에 대해 쓰고, 공연예술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과 닿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영유아극이 초기에 받았던 무수한 비판과 의심 속에서도 이제 하나의 장르로 자리 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적어도 제가 아는 한—어떤 저명한 평론가나 제도적 인정 덕분이 아니라, 비판을 견디며 무대 위에 작품을 올려온 창작자들의 끈질긴 실천 덕분이었습니다.

 

J는 말했습니다. “남들은 앉혀 놨으니 앉아 있다고 보지만, 창작자에게는 아이들이 보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고요. 그 에너지가 공연 중에도 창작자의 몸에 분명히 전해진다고요. 가시적인 성과도, 명시적인 평가도 없지만, 그 순간이 아이에게 소중한 경험이 되고 몸에 각인된 기억이 되고 있다는 것을 창작자는 알아차립니다. 수업을 할 때의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수없이 의심하다가도 문득 ‘어차피’의 벽을 깨뜨리는 순간을 만나곤 합니다.

조심스레 자극을 주며 움직임을 도와주면 거의 움직이지 않던 아이가 더 하려고 힘을 쓰는 것을, 그 몸을 만지고 있는 저는 분명히 느낍니다. 움직이다 힘들어 몸이 픽픽 쓰러지면서도 다음 시간에는 다시 어김없이 제 앞으로 오는 아이의 의지를 저는 압니다. 작은 떨림, 옅은 미소, 소심한 눈빛이 전하는 몸의 환희는 말보다 더 분명하게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온몸으로 전하는 메시지를 저는 ‘포기하지 말라’는 말로 읽습니다. 우리와 함께 움직이고 연극을 만들라는 말로 듣습니다.

 

결국 저를 무겁게 만드는 마음의 벽을 깨뜨려 주는 것은 언제나 제가 만나는 아이들입니다. 어쩌면 정말 바뀌어야 하는 것은 힘들다고, 어렵다고, 잘 모르겠다고 말하며 순간 상상하기를 포기함으로써 아이의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이 무거움이 아닐까요? ‘어차피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을 텐데, 이 아이의 삶에서 배움과 예술 같은 것쯤 조금 사라져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도 가라앉아버리는 태도 말입니다. 정말로 깨부숴야 할 것은 극장도, 연극도 아닌, 이미 아는 것 말고는 기대하지 못하는 저 자신의 상상력의 한계가 아닐까요?

아마도 제가 중도중복장애 어린이들을 위한 연극 만들기 작업을 하려는 이유는, 연극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무대 위에 실현하는 예술이라고 믿기 때문일 것입니다. 너무 거창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배제되고 내쫓기고 감춰졌던 몸들이 무대의 주인공이 되는 장면, 극장의 환대를 받는 장면, 한 번도 보여진 적 없어서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어떤 장면을 저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더듬더듬 알지 못하는 것들을 몸으로 만나고 느끼다 보면, 어느새 넓어진 상상의 세계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지요. 그렇게 만들어진 무대를 함께 보는 날을 진심으로 기다립니다.

온몸으로,
희범 드림



나의 아이가 다섯 살 때부터 함께 어린이 공연을 봤고, 여덟 살이 된 지금까지 3년 동안 수십 편의 공연을 관람했다. 아이는 늘 반짝이는 눈빛으로 무대를 바라보며 공연장에서 펼쳐지는 세계 속을 유영했다. 그런데 최근 공연을 관람하는 아이를 보며 ‘당분간 공연을 조금 멀리해야 하나?’ 하는 고민이 생겼다. 이 글을 핑계 삼아, 그간의 어린이 공연장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고민을 나누고자 한다.
 

ep1. 어떡하지에 대한 대처

아이가 극장에 처음 간 건 다섯 살 무렵이었다. 아이 친구의 엄마가 함께 동행해 주었는데, 공연이 끝난 뒤 아이가 “또 보고 싶어”라고 짧은 한마디를 남겼다. 동반한 엄마도 “서우는 공연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아. 진심으로 즐거워하더라. 이제 공연장 다녀도 될 것 같아.”라고 전해줬다. 그 말을 듣고 기쁨과 안도가 동시에 밀려왔다. 기쁨은 아이가 진심으로 즐거워했다는 것 때문이었고, 안도는 내가 오래 품어왔던 ‘어떡하지?’라는 물음이 조금은 가벼워졌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공연장에서 울면 어떡하지? 소리가 너무 커서 놀라면 어떡하지? 보다가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어떡하지? 옆자리 사람이 불편해하면 어떡하지?’ 등 끝없이 이어지는 ‘어떡하지’ 때문에 매번 시도를 망설였는데, 결국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첫 공연 이후, ‘보다가 불편하면 나오면 돼’라는 둘만의 약속을 하고, 불성실한 관객이 되리라 다짐했다.


 

ep2. 러닝타임 버티기

불성실한 관객이 목표였지만, 그와 별개로 공연장 안에서만큼은 아이가 문화인이 되길 바랐다. 문화인이 되기 위해 우리는 공연장을 갈 때마다 관객과의 약속을 큰 소리로 외쳤다. 어린이 공연의 대부분은 다음과 같은 약속을 함께 외치는 것으로 시작한다.

 

첫째! 공연 중에는 자리에서 일어나 큰 소리를 내지 않아요.
둘째! 극장이 깜깜해져서 무서울 땐 손뼉을 짝짝 쳐요.
셋째! 앞좌석을 발로 콩콩 차지 않아요.
넷째! 재미있는 장면이 나오면 마음껏 웃어요!

 

신나게 따라 외치지만, 어린이가 실제로 큰 소리를 내지 않고 한두 시간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쉽지 않다. 어른도 힘든데 오죽할까. 지루함에 “집에 가고 싶어”를 외치기도 하고, 반대로 너무 몰입해 배우의 대사에 혼자 답을 하기도 했다. 달래기도 하고, 간식으로 꼬셔 보기도 했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미러링’이었다. 무대를 사랑하는 아이여서 가능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네가 무대에 서면 어떨 것 같아?”
“너무 좋아.”
“그런데 네가 말하고 노래하고 있는데, 너를 보는 사람들이 딴짓하거나 나가버리면 기분이 어떨까?”
“싫을 것 같아.”
“저 배우들도 그럴 거야. 열심히 준비했는데 관객이 집중하지 않으면 엄청 속상하겠지? 그러니까 우리도 잘 지켜보자. 난 그게 예의인 것 같아.”


그 대화 이후, 아이는 어떠한 주의 없이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관객이 되었다.



ep3. 문턱이 낮아졌다지만

업무 때문에 어린이 공연의 접근성을 모니터링하러 간 적이 있다. 장애 어린이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공연이라 음성 해설, 촉각 터치 투어, 점자 리플릿 등 다양한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다. 담당자는 “처음 해보는 것들이 많아 힘들었지만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했다. 그런데 티켓 예매 웹사이트에서 낯선 문구를 발견했다. “본 공연은 중간 입퇴장이 불가합니다.” 순간 의문이 들었다. 어린이 공연인데, 입퇴장이 불가하다고? 어린이가 화장실에 가야 할 수도 있고, 놀란 마음을 잠시 진정하러 나갔다 와야 할 수도 있는데 나가면 다시 못 들어온다고? 특히 장애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다면 더더욱 릴랙스 공간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다른 접근성 지원은 하면서 나가지 못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아 담당자에게 물었다. 돌아온 답은 “극장의 기본 룰이어서 수정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문구를 보며 아이와 처음 공연장을 갔을 때 쏟아지던 ‘어떡하지?’들이 다시 떠올랐다. 어린이 전용 공연장에도 문턱이 있었다. 문턱이 아예 없을 순 없을까? 아이들이 더 자유롭게, 더 즐겁게 공연을 경험할 수는 없을까? 이 글을 쓰며 다시 예매 사이트를 찾아봤지만, 올해의 공연도 ‘중간 입퇴장 불가’라는 문구가 박제되어 있었다.


 

ep4. 가만히 앉아만 있는 관객

올해도 아이와 몇 개의 공연을 보러 갔다. 언젠가부터 공연 내내 표정 변화 없이 가만히 앉아 있는 아이를 보며 ‘재미가 없는 건가? 너무 집중한 건가?’ 싶어 물었더니 “아니, 재미있었는데”라는 짧은 답을 했다. 가장 처음 들었던 생각은 ‘이제 관람 태도가 완성된 건가? 문화인으로서의 훌륭한 자세야’였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공연 실황을 TV로 보던 아이를 보며 나의 판단이 착오였음을 알게 되었다. 쨍한 형광등 아래서 큰 소리로 방방 뛰며 노래하고 춤추는 아이의 모습은 그야말로 ‘관객’이었다. ‘관객’ 그 자체. 

그제야 직감했다. 문제는 ‘바람직한 관람 태도’였다. 문화인을 만들고자 했던 나의 욕심도 큰 몫을 했을 것이다. 공연장에서의 바람직한 태도란 유도된 타이밍에 박수를 치고, 정해진 약속에 맞춰 리액션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장면이 나오면 마음껏 웃어요’라고 외치며 시작하는 공연장에서의 약속의 의미를 너무나도 잘 이해한 것이다. 아무런 약속도 없는 공연장에 있는 아이는 마음껏 표현하고, 원하는 만큼 몰입하고, 신명 나게 즐거웠다. 그런 아이를 보며 내가 처음 본 공연을 떠올렸다. 그때의 나도 규칙이나 예의보다, 어둠 속에서 펼쳐지는 낯선 세계를 마주했을 때의 경이감을 느꼈는데, 정작 아이에게 무엇을 원했던 것일까?



같은 공연을 봐도 저마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반응할 수 있다. 누군가는 깔깔 웃고, 누군가는 속삭이며, 또 누군가는 말없이 바라본다. 극장은 이렇게 넓은 품을 가진 곳인데 ‘적당히, 유사한 타이밍에, 다른 사람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의 감상은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극장이 더 넓게 품을 열 수는 없을까? 일률적인 약속이 아니라, 고민들을 나눌 수는 없을까? 아이들이 웃고, 속삭이고, 뛰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공연을 만날 수 있는 무대, 그게 진짜 공연장이 아닐까?


 

 

신승주

게시 예정

요른

좀처럼 아무것도 도착하지 않는 찬의 우체통에 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극장에서 온 것이다. 새해 맞이 연극을 볼 관객을 초대하는 표가 들어 있었다. 표는 세 장이었다. 엄마와 아빠, 찬. 세 명이 초대받았다. 1월 1일, 딱 하루만 공연하는 이 연극은 인기가 많았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출연하는 연극인만큼, 객석은 헐렁하게 비어 있었지만, 극장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만은 무대와 객석 구분 없이 가득 차 있었다. 무대 위에서 외치는 조연출 조지의 ‘스탠바이!’ 소리부터 객석에 앉아 발을 구르며 ‘브라보!’를 외치는 할머니 질롤라의 기함까지 말이다.

“나는 이번에 공연을 볼 거야.”

표를 받아쥐고 엄마 아빠에게 이렇게 말하자, 가슴이 뛰었다. 엄마와 아빠는 나란히 고개를 저으며 아침 일찍 집을 떠났다. 자신들의 딸이 내린 선택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당연히 무대를 택했다.

둘이 집을 떠난 후, 찬은 차갑게 식은 야채 수프를 먹으며 봉투에서 표를 꺼냈다. 어설프게 인쇄되어 글자가 기울어진 공연 표에는 D열 10석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객석에 앉는 것은 처음이었다. 나머지 두 장에는 D열 11석, D열 12석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객석이다. 찬은 늘 무대 어딘가에서 ‘관목’이나 ‘날치’, ‘돌멩이4’ 같은 역할을 맡느라 객석에 앉을 기회가 없었다. 엄마 아빠의 주장대로 아침부터 분장을 했다. 시간에 맞춰 무대에 섰다.

모두가 빠짐없이 무대를 사랑했다. 무대 뒤의 어둠에 숨었다가 눈 부신 빛 속으로 뛰어들었다. 어두운 객석이 텅 비어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로 준비한 대사를 제각각의 목소리로 외쳤고 속삭였고 노래했다. 대사가 없었던 찬은 이들과 반대였다. 눈이 밝은 그는 입을 여는 대신 실눈을 뜨고 어둠 속을 가만히 응시했다. 드넓은 객석에 듬성듬성 앉은 관객들의 눈빛을 봤다. 조용히 빛나는 그것. 섬광처럼 번쩍이는 눈들. 달빛처럼 밝혀지는 눈빛들. 무대 끄트머리 커튼 뒤에 숨어 있으면 이들의 이마와 입술도 보였다. 그 어디에서 본 것보다 더 경이로운 표정이었다. 눈썹을 연신 실룩거리고 굳게 다문 입술 끝의 근육은 웃음이나 긴장을 따라 움직일 준비를 마쳤다. 가끔 눈을 감고 뒤통수를 의자 등에 기댄 사람도 있었다. 아마도 깜박 잠이 들었을 것이다. 그들이 꿈에서 본 것도 아름다울 것이다. 그 눈과 표정. 찬은 그것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오늘이다. 달빛이 되는 날.

극장까지는 찬의 걸음으로 1시간 10분 정도 걸린다. 극장은 학교 앞에 있었는데, 찬이 학교에 다니는 동안 매일 아침과 오후에 걷는 산길을 그대로 따라 가면 된다. 찬은 매일 왕복 2시간을 걸었다. 9살 어린이라면 스스로 집과 학교를 오갈 줄 알아야 하는 시대였다. 2020년대가 되면 보호자 없이 걷는 어린이를 볼 수 없으리라고는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시절. 그 시절을 살던 찬은 집과 학교 사이를 혼자서 걸었다.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하겠다.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 중에ㅡ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것만으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다면ㅡ 찬과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는 없었다. 찬은 학교에서 동남쪽 산 너머에 있는 수동(Suedone) 이라는 마을에 살았는데, 학교의 정문은 북쪽에 나 있었고, 후문은 서쪽에 나 있었다. 북쪽으로는 거주지가 밀집한 곳이었고, 서쪽으로는 상가와 관공서가 있었다. 동남쪽에는 산이 있었다. 꽤 높은 산이었지만 골짜기를 따라서 넘으면 야트막한 길로 걸을 수 있었다. 찬은 그 산 너머에 살았다. 수동에 사는 어린이도, 그 산에 사는 어린이도 없었으므로, 찬은 매일 2시간은 혼자서 보냈다. 오늘은 극장에 가기 위해 같은 길을 다시 걸을 것이다.

 

극장에 가는 어린이다운 단장을 마쳤다. 가장 아끼는 흰 레이스 양말을 꼭 신고 싶었기 때문에 스타킹처럼 얇은 바지를 입고 그 위로 무릎 아래까지 흰 레이스 양말을 끌어당겼다. 작년까지는 넉넉했는데, 이제는 소매가 지나치게 딱 맞는 길이로 보이는 모직 원피스도 입었다. 보풀까지 생겨났지만, 아직 너무 작지 않아서 다행이다. 극장까지 눈길을 한 시간 걸어야 했으므로 두꺼운 스웨터 카디건을 덧입고 코트에 목도리, 모자, 털부츠까지 무장했다.

 

보통 학교에서 마지막 수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치면, 아이들은 우르르 북쪽 문으로 뛰어나갔다. 찬만이 천천히 서쪽 문으로 걸었다. 그나마 그 문이 뒷산으로 가기에 가까웠다. 학교 아이들은 뒷산이라고 부르는 그 산은, 찬이 8년 동안 앞산이라 부르던 것이었다. 찬은은 매일 산을 부르는 호칭을 헷갈리며 시간을 보냈다. ‘뒷산을 넘어 앞산을 지나 학교로 가네.’ 찬은 자신이 말을 지어 익숙한 동요 멜로디에 붙인 노래를 부르며 걸었다. ‘뒷산을 넘어 앞산을 지나 집으로 가네.’ 그렇게 시간은 그렇게 훌쩍 지나갔다.

극장을 향해 걷는 길. 바람이 불지 않아 생각보다는 덜 추웠다. 목도리를 잡아당겨 바람을 피하려 숨겼던 얼굴을 드러냈다. 발을 딛자 움푹 팬 발자국이 희고 빛나는 눈밭 위에 생겨났다. 발자국 하나 없는 야트막한 산을 싱싱한 발자국을 내며 걸었다. 당연하게도 이번에는 학교를 극장으로 바꿔서 불렀다. ‘뒷산을 넘어 앞산을 지나 극장에 가네’. 입안에 맴도는 정도의 작은 볼륨인지, 아니면 그저 속으로만 부르는 건지 알 수 없다. 어쨌든 부른다. ‘뒷산을 넘어 앞산을 지나 극장에 가네.’ 흥이 올랐는지 걸음에 힘이 붙기 시작하는데, 곧 찬은 뭔가 어긋났음을 깨달았다. 그는 속도를 냈다. 그는 극장에 늦을 것이다.

문제는 시간. 그 노래와 함께 보내는 1시간이 학교의 서쪽 문에서 찬의 집까지 걸리는 시간이라는 점이었다. 극장은 서쪽 문에서 학교 담장을 따라 돌아 난 길을 20분 더 걸어야 도착하는 정문 맞은 편에 있었다. 학교 문이 열려 있다면 가로질러 10분 안에 도착할 수도 있지만, 방학 중인 학교 문은 잠겨있을 것이다. 제때 도착할 수 있을까. 발걸음을 재촉했다. 목덜미와 등을 땀이 적시고 있었다. 찬은 짧은 숨을 내뱉으며 목도리를 풀어 손에 쥐었다. 멀리 학교의 서쪽 문이 열려있는 게 보였다. 학교를 가로질러 갈 수 있어. 이제야 조금 안심하게 된 그 순간에 알아버렸다.

"공연 표."

공연 표가 없다. 주머니를 뒤집어 까보고 가방을 모두 거꾸로 흔들어 보았지만, 표는 없었다. 문득 장갑을 잠깐 벗어 주머니에 쑤셔 넣는 사이에 가방에서 밀려 나온 공연 표가 눈밭에 내려앉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런 일이 실제로 발생했는지, 아니면 갑자기 떠오른 환상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수중에 표가 없다면 적어도 걸어온 길에 있어야 한다. 그런 생각에 이르렀다. 동시에 표를 마지막에 챙기려고 책상 위에 촛대 옆에 올려두었던 것도 떠올랐다. 당연히 그것을 가방 앞주머니에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넣지 않았던가? 그대로 촛대 옆에 가지런히 놓인 공연 표가 그려졌다. 사실이든 아니든. 모든 가능성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하지만 주머니에 넣었던 것 같다. 가방이 아니라 코트 주머니에 넣었나? 열쇠와 함께 코트 주머니 속에서 종이가 만져졌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코트 주머니에는 없다. 중간에 점프하며 뛰던 사이 빠졌을까? 원피스에는 주머니가 없었다. 늘 주머니가 없는 원피스를 불평하곤 했다. 공연 표 분실 사건에서, 원피스만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원피스가 부러워졌다. 찬은 무고한 원피스를 입고 걸어 왔던 길을 되짚어가야 했다. 행여나 눈밭에 떨어졌다면 젖기 전에 그 표를 집어들 수 있기를 기원했다. 다시 앞산이자 뒷산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발자국은 찬이 만든 것 하나뿐인 그 길. 눈물과 콧물이 줄줄 난다. 눈물이 나는 것을 납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다. 찬이 울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꺽 꺽. 울면서 되돌아갔다. 통곡. 울음. 울면서도 다시 울었다. 이해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눈길은 지나치게 깨끗했다. 이렇게 걷다가는 공연 시작 시각에 집에 도착할 것이다. 허겁지겁 뛰기 시작했다. 뜨거운 눈물이 얼굴을 덥혔다. 분명히 떨어졌을 텐데, 공연 표가 있을 텐데, 표는 없었다. 그런 건 없었다.

찬은 이미 서쪽 문에서 집으로 되돌아오는 내내 울었다. 아무도 없는 길에서 울 때는 꺼이꺼이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울었다. 인간 어린이는 아무래도 짐승에 가까웠다. 그날의 찬은 특히 그랬다. 무엇이 그를 울게 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표를 잃어버려 공연에 가지 못한다는 사실로 인한 슬픔, 걸어온 길을 다시 걸어야 하는 억울함, 표를 잃어버린 자신에 대한 분노, 혹은 이 모든 상황에 혼자 놓인 자신에 대한 연민. 찬은 훗날 자신이 어떤 이유로 울었는지, 모든 이유이면서도 특별히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궁금했다.

표는 정말로 없었다. 눈길 어디에도 없었다. 책상 위 촛대 옆에도, 현관에도, 싱크대 안에도, 가방 속 주머니나 소파 밑, 계단 틈에도 없었다. 표가 없다는 것이 확실하다. 울음은 그쳤다. 그는 개운해진다. 표는 없다. 그 사실이 조금 더 명확해지면서,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알 것 같았다.

다시 극장에 가자.
여기 표는 없지만 극장은 거기에 있으니까.

목젖 주변에 울음이 덜렁대고 있었다. 콧물이 질질 흘렀다. 내 몸에 어떤 부분들이, 애쓰는 게 느껴졌다. 슬프고 간지러워. 찬은 그런 생각을 하며 바닥을 뒤지느라 더러워진 무릎을 털고 일어났다.

극장표

여기서 공유하는 글 「근현대동시대 관객」 은 “나의 관객은 누구일까, 관객과 접근성 탐구”라는 주제로 진행된 강연의 기록물입니다. 이 강연은 <2024 공연예술 기획자클럽>의 일환으로 예술경영지원센터의 후원을 받아 진행되었습니다. 강연록은 실제 강연 내용을 기반으로 수정 및 보완되었습니다. 

- 강연일 2024. 9. 13. 
- 강연록 최종 수정 2024. 12. 10.

 


주제를 처음 받았을 때, 할 말이 많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관객 접근성의 기술적인 문제를 다룰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올 한해동안 공연예술 분야의 접근성 문제가 빠르게 개선되는 분위기라는 얘기를 전해듣기도 했고, 접근성 매니저들의 활동도 활발하다고 알고 있고요. 관련된 주제나 문제의식을 품은 글들도 여러 곳에서 접해왔기 때문입니다. (제가 현재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나와 있어서, 다 전해 듣거나 인스타를 보며 짐작한 결과라는 점을 이해해주세요) 

다만 이것은 ‘기획자’ 클럽. 기획자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라면 한 가지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네, 접근성을 강화한다는 개념이 만능이 아니라는 생각이 그것입니다. 가끔 접근성이 무엇을 무엇에 접근시킨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한탄했거든요. 뭔가를 강화한다는 게 어떤 면을 가리기도 한다고 느낀 적도 있고요. 이 ‘접근성 강화’라는 게 불가피하게 편협한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는 때가 생겨난다는 점을 아무튼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아주 단순한 예로 모두극장이 개관했을 때 받았던 느낌과 비슷합니다. 모두에게 열린 극장이란 제가 간절히 기다려왔던 극장입니다. 그간 소외되어 온 장애인이라는 주체를 중심으로 시작해서 정말 모두에게 열린 공연장이라는 게 실제로 존재하게 된다는 점 때문입니다. 하지만 개막 공연을 예매할 때 저는 7세 이상 13세 이상, 이라는 관람등급 표기에 조금 실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극장의 접근성이 무엇을 기준으로 삼고 있지? 제게는 하나의 질문이 있었거든요. 이를테면 2019년에 제가 만든 공연 속에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7세 이상 관람가는 아이를 위한 배려인가요, 방해받지 않기 위한 배제인가요? 흥이 나면 손뼉을 치고 펄쩍펄쩍 뛰는 발달장애청년 김세환은 7세 이상이므로 극장에 갈 수 있나요?”

아무튼 저는 공연을 보러 갔습니다. 이상하게 공연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재채기가 끊임없이 나왔어요. 멈추지가 않더라고요. (친구 하나는 그것이 극장 알레르기라고 표현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 극장만 가면 미치도록 기침이 나와서 극장에서 빠져나와야 하는 경우가 몇 차례 더 있었거든요.) 극장에서의 기침이란 다른 관객의 관람에 방해가 되는 행동 중 하나입니다. (저의 몸이 저 자신의 관객 되기를 방해한 것입니다) 한 번 터진 기침과 재채기를 멈출 방도가 없었으므로, 저는 조금 버티다가 옆 자리의 관객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로비로 나왔습니다. 극장 직원분께 재입장이 불가능하다는 안내를 받았습니다. 대신 모니터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지요. 해서 2층 로비로 올라가 그걸 보기 시작합니다. 

새로 지어진 극장에 새로 설치된 극장 카메라는 자동 초점 설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밝은 조명과 움직이는 배우 사이에서 카메라는 ‘자동으로’ 초점을 자꾸만 잃었습니다. 초점을 맞추지 못하는 카메라는 무대와 퍼포머를 영원히 포착하지 못했습니다. 희뿌연 화면 속 먼지처럼 부유하는, 불가해한 움직임. 무엇인가 벌어지고 있음은 분명하지만, 무엇인지 결코 알 수 없는 상태. 저는 이 오락가락하는 초점과 뿌연 화면이 뭔가를 말해주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 느낌. 그것에 따라 저는 질문의 초점을 옮겨봅니다. “누가 무엇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라는 질문의 초점은 어디에 놓여야 하죠? 어디가 되었든, 우리가 정확히 한 곳에 초점을 맞추고는 있나요? 


“누가 무엇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이 질문이 관객의 공연 접근성 이슈를 포괄하고 있다면, ‘어떻게’에 놓여 빛내는 초점을 ‘누가’로 옮겨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니까 관객은 누구냐고요. 


이때 저는 “관객의 성별은 무엇인가”라고 묻게 됩니다. 리타 펠스키 덕분입니다. 그는 역사적 시기인 ‘근대’라는 개념에 성별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한 개념에 대한 우리의 의식이 ‘서술되는 논리’로 구성되는데 이를테면 ‘이야기의 형식’으로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성별 상징성의 개입이 없을 수 없습니다. 관객이란 개념의 성별을 물어보자.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관객의 성별은 여성일까요? 통계자료를 찾아보지 않아도 높은 확률로 여성이라고 짐작하게 됩니다. 월간공연전산망 2024년 6월호에 따르면, 여성 관객은 71.5%로 남성의 28.5%에 비해 두 배 이상 많습니다. 하지만 저의 질문은 개별 관객의 성별이 아니라, 관객이라는 개념의 성별을 묻습니다. ‘관객’의 성별을 개별 관객에 따라 바라보는 방식은 어떤 착각을 일으킬 뿐이지요.

 

극장, 또는 관객이라는 개념은 근대 이후에 형성된 규범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때 근대적 연극 규범이란 것은 아주 사소한 것부터 기술의 발달, 섬세한 예술적 이해까지 폭넓은 관계망 안에서 형성됩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 여가를 보낸다는 카테고리화와 그 가운데 극장의 위치부터 그에 따라 정해진 공연시간인 저녁. 어두운 밤에 조명을 켤 수 있는 시스템의 대중화. 객석 수에 따라 제한된 관객 수용과 이에 맞물린 티켓과 유료화. 사실주의적인 무대 연출을 위해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게 사실이라는 믿음을 만들어내기 위한 ‘일루전’, 그 관계를 이해하는 배경 지식, 그 환각과 제 4의 벽을 지키기 위한 관객 간 규범의 강화까지.

관객이라는 어휘가 근대적 규범들과 함께 형성 되었다면, 이에 기반한 인간 기준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근대성에 기반한 인간 기준은 이성애-비장애-상류층–남성이었고, 이 틀에 자신을 맞출 수 있는 존재들이 관객이 되었습니다. 여성 관객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천성이나 상태를 그대로 드러내서는 정상 관객이 될 수 없었습니다. 불가피하게도 그들은 이성애-비장애-상류층-남성화 된 관객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쓰는 ‘관객’이라는 단어는 사실 “(이성애-비장애-지식인-남성) 관객”으로, 어떤 줄임말에 불과했습니다. 

많은 극장의 웹사이트에서 한 칸을 차지하고 있는 “관람 예절”을 읽어보곤 합니다. 거기서 금지하는 것들이 지금의 우리에게는 아주 당연하고 평범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이 ‘당연함’과 ‘평범함’은 앞서 숨겨진 괄호 안의 키워드들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그 예절을 지키는 일은 교양있고 근대적 정상 관객 되기를 기준점으로 강화하는 동력이 되어왔습니다. 배제, 탈락, 거부, 금지가 타당하다는 것을 설득하려 애쓰는 역사의 산물일 뿐입니다.

신문물의 수용, 새로운 세계관과 규범을 수용하는 과정을 떠올리면, 근대 관객이라는 게 긍정적 개념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은 전통적 관극 방식이나 근대적 관객의 양상에서 벗어난 부류의 인간을 거부하거나 금지하는 방식으로 만들었습니다. 저는 ‘관객 되기’의 과정을 배제와 탈락, 거부, 금지를 통해서 세워진 규범을 내면화 하는 것이라고, 그리하여 다시금 배제와 탈락, 거부와 금지를 재생산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뭐 어떻게 하라고?” 이런 얘길 하다보면 결국 이런 반문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래서 ‘기획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이 반문이 나오기 전에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물론 모든 경우가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접근성을 강화하기 위해 관객을 기존의 극장의 틀에 맞추도록 돕는 보조 장치를 마련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계단이 있는 곳에 경사로를 놓고, 기존의 예매 시스템의 접근성을 보완하기 위해 전화나 문자 예매 방식을 추가하고, 자막이나 음성 해설을 놓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이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더 잘하고 싶은 일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접근성에 다르게 접근해보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애초부터 다른 접근 방식.

공연을 다 만들고 나서 다양한 관객을 만나기 위해 고민하며 접근성을 강화하는 고민을 시작한다면, 극장이나 연극은 그대로 있고 중간에서 아등바등하는 다리놓기와 애씀만 남습니다. 저는 막연한 관객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관객과 이 공연을 함께 보고 싶은지 질문하는게 꼭 기획단계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기획단계에서 이뤄지지 않으면, 결국은 전통적인 틀을 지우지 못한 채 공연이 완성되고, 따라서 극장의 물리적인 상태, 공연의 전통적인 형식 자체에 관객을 애써서 맞춰가는 것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공연의 시작 단계부터 다른 접근이 필요한 것이지요. 경사로나 별도의 해설이 없고도 가능한 것, 혹은 다르게 가능한 것. 공연을 다 만들고 나서 어떤 관객을 만나려고 했는지 질문한다면, 그건 조금 늦습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제가 좋아하는 공연들은 대부분 관객이 어떤 존재인지, 또는 각자의 관객이 누구인지 날카롭게 상상해온 결과물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최근에는 관람한 전화통신연극 <구멍 난 밤 바느질>이 그랬습니다. <구밤바>라고 줄여 부르는 이 작품은, 배우이자 작가인 배선희님이 기획하고 만든 공연입니다. 

 

저는 이를 어떤 관객을 만날지 먼저 생각함으로써 전혀 다르게 완성된 아름다운 사례라고 소개했습니다. ‘극장종말론’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많은 관객이 아니라 다양한 관객을 상상한다”고 외치곤 했는데요. 말하면서도 매번 실패했습니다. 다양하고도 ‘많은’ 관객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니까요. 자꾸 헷갈리고 주저하고 최선을 미뤄버리곤 했습니다. <구멍 난 밤 바느질>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해석해볼 수 있지만, 제게는 관객이 될 수 없는 사람을 관객으로 만드는 공연이었습니다. 예매할 때는 관람할 장소의 주소를 써야하는데, 같은 회차 공연을 예매한 사람이 여럿이라면 가장 멀리 있는 사람에게 관람의 기회가 돌아가요. 저는 지금 중앙아시아 지역의 작은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 서울에서 수행되는 공연의 관객이 될 가능성은 제로인 사람이었는데, 그 공연의 관객이 되어버립니다. ‘가장 멀리 있는 관객’이라는 아이러니. 저는 이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자주 상상했습니다. 만날 수 없는 관객의 이름을 부르기로 결심하는 사람의 모습을. 그리고 한동안 제가 공연에서 겪은 것들을 다시 기억해내는데 시간을 썼습니다. 공연이 빚어내는 영롱한 순간과 내 방이 객석이자 무대로 달라지던 감각, 본 적 없는 천각형의 별을 마주하게 하는.

  * * *


발표가 끝나고 질문을 받았습니다.

여러 가지 질문이 있었고,

그래서 따로 제가 받은 질문들에 답하는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대체로 나름의 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태 답을 하지 못한 질문도 있습니다.

'죄책감'에 관한 것입니다.

 

 

발표가 끝나고 며칠 후에 메일을 하나 받았습니다. 제가 발표에서 다룬 이야기를 듣고 그간 의도치 않게 배제와 금지에 가담해왔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는 한 기획자의 글이었습니다. 미루다가 쓴 답장에 뭐라고 했었던가요. 이제라도 우리가 바꿔보자고 했었을까요, 아니면 그저 그럴수밖에 없었던 거니 그런 감정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썼을까요? 뭐라고 썼든 제대로 된 답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답장의 내용을 확인해보고 싶은데, 보낸 메일함을 다시 열어 볼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저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으니까요. 이런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에도 과거의 나에게 참회하는 마음 같은 게 있기도 했고요. 어떻게 애들 떼어놓고 극장에 가서 앉아있으면 즐거운 마음 한편으로 죄책감이 생기니까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이 죄책감을 피할지, 없앨 수 있을지 고민해왔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직 답은 없습니다. 제가 비로소 내린 중간 결론이 있다면, 죄책감에겐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감정을 피하거나 감추거나 없애버리려고 애쓰지는 말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복수가 누군가의 힘이었던 것처럼, 제게는 이 죄책감이 게으른 저를 추동해줄 수 있으리라고 믿어버립니다. 그 감정을 파헤치고 어떻게 다룰지 고민하는 일이 제게는 회피이기도 합니다. 그 감정을 느끼는 나 자신을 생각하다보면, 그게 개인적인 감정처럼 여겨집니다. 그 사이 죄책감이라는 호명이 불러일으키는 호의 없는 뉘앙스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한계가 만나 어느 순간 기력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무력함을 핑계삼아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 방식의 회피가 늘 저를 유혹합니다. 동시에 이건 좀 억울합니다. 사실 우리(최소한 저와 그 기획자 선생님)가 느끼는 건 죄책감 하나만이 아닙니다. 조금 더 복잡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다른 것들이 있음도 불구하고 선두에 서 있고 이름을 가진 감정으로 포괄되어 버린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나 혼자라고 하기엔 극장과 관계된 모두에게 해당되는 복잡한 감정인 것이니까요. 이 혼란을 논리적으로 해소할 방법이 없는 사람은 무능을 드러내기가 창피해 게으른 사람이 되기를 택하며 더없이 무능해집니다. 내내 이것의 반복인 셈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오늘의 강연은 저의 무능과 게으름에 당근과 채찍이 되는 되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가운데서 서로에게 당근과 채찍이 되어 줄 동료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죄책감이 든다면 그것에 대해서 말하고, 그럴 필요 없다면 또 그럴 필요 없다고, 더 중요한 게 보인다면 그게 여기 있다고 말해보겠습니다. 그러니 같이 해보기로 해요. 아, 다만 채찍질이 실제로 말을 달리게 하는데 효과가 없다는 연구가 이미 2011년에 나왔다고 합니다. 채찍은 그냥 들고만 있기로 합시다. 감사합니다.
 

 

강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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