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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종말론 
An Eschatology of The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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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ter to the theater①›, 이혜령, 2021

극장 관계자 선생님들께

안녕하세요. 다들 안전하신지 먼저 안부를 여쭙습니다. 극장을 운영하는 일에 그 어느 때보다 낯선 감각이 있어야 하는 팬데믹 시대를 어렵게 보내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도 송구한 편지를 보냅니다. 

그게... 코로나만이 문제는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코로나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다음이 없다는 명령이 파다한 시국에 이게 무슨 췌언인가 싶으실 테지만, 지금의 재난 상황이 아니었어도 극장은 망하고 말 거라고 말하는 종말론자를, 제가 알고 있거든요.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정부 기금을 받아 동료 예술가들과 극장 무대에 섰던 때의 경험부터 쓰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주로 극장 바깥에서 퍼포먼스 작업을 하는 작가입니다. 비(非)극장 연극에 관한 관심에서 출발한 논문으로 졸업을 했고 포트폴리오에는 온통 공원, 낡은 여관, 골목길, 기차역 같은 곳에서 선보인 작업만 가득하지요. 그러니 그때 무대에 서지 않았다면 아마 극장에 대해 더는 새로운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극장 아닌 곳을 찾아다닐 때 저는 ‘제가’ 극장을 `떠났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코로나를 모르던 2019년이었고, 무조건 극장과 무대를 활용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결정되었습니다. 저는 내심 싫었습니다.

무대가 익숙하지 않다는 것은 차치하고, 또는 대관료도 없이 기술팀의 협조까지 받을 수 있는 유리한 기회란 인식에도 불구하고 걱정부터 들었습니다.

극장에서 공연하면 아마도 8시인데? 그러면 어린이집 하원 후 남편 퇴근 전까지 아이는 어쩌나? 고민부터 들었거든요. 이 무슨 사소한 고민이냐 생각이 드신다면 정말 제 이야기를 잘 들어보세요. 사회 시스템이 정한 시간 말고 내가 정한 시간에 일하면서 겨우 아이 하나를 챙길 수 있었는데, 극장이라니요. 극장 밖의 공연은 장소만이 아니라 시간도 꽤 자유로운 데 반해 극장은 언제나 일정한 규범 속에서 움직이잖아요. 제가 극장을 떠난 것이 아니라 여러 조건에 떠밀려 `쫓겨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즈음에 시작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공연 연습이 시작된 후 저는 쉬는 시간에 나가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픽업했고, 무대와 연습실에 데리고 갔습니다. 다소 억지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으나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얼마 전에 일 때문에 만난 어떤 분께서 제가 일터에 아이를 데리고 다닌 일이 일종의 투쟁 같이 들린다고 하시더라고요. 투쟁이라… 거창한 건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투쟁이었을지도 몰라요. 아이가 없는 매끈한 곳이면 가능한 아이를 데려가자, 이런 마음이 늘 있었거든요. 

아이를 낳기 전의 저는 아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고, 무엇보다 주변에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만큼 아이 돌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그것의 중요성도 어설프게 넘겨 짚었을 뿐이죠. 그러니 그것이 투쟁이었다면 그 목적은 `일반인`의 일상과 아이들 사이의 접촉면을 넓히는 것이었다고 해야겠네요. 비장애-이성애-남성을 일반인으로 삼은 정상 세계에서 분리되어 쉽게 여성의 몫으로 남은 아이들을, 세상 속에 섞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벌써 우리는 노키즈존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죠. 사업주에게 영업의 자유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무제한이 아니며, 일부 사례를 근거로 들며 모든 아이를 ‘문젯거리’로 삼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고 인권위도 권고했지만, 외출할 때마다 노키즈존을 만납니다. 아이를 맡기라는데… 대체 어디에? 누구에게? 처음에는 식당이나 호텔에 따져보기도 하다가 나중에는 적어도 공공기관은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민원을 넣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얘기도 해야겠네요. 서울시의 청년공간인 무중력지대에 ‘청년 엄마’로서 아이를 데리고 일하러 갔다가, 여기는 ‘청년’ 공간이라서 ‘어린이’는 출입이 되지 않는다고 거절당했던 일이요. 그날은 민원 넣을 힘도 없었습니다. 어떤 기분인지 아실까요?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서 그렇다며 오히려 당황해하는 담당자에게서는 어떤 악의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노키즈존을 마주하는 게, 그러니까 눈앞에서 존재를 거절당하는 게 순식간에 분노와 무기력과 수치를 불러냈을 뿐입니다.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아요. 저녁 연습을 위해 극장 지하 2층 연습실까지 가는 내내 좀 암울했습니다. 

반면 극장은 안팎으로 조명이 환하게 켜져 있었습니다. 로비는 북적였습니다.

 

방금 쫓겨난 세 살 아이는 수선스러운 분위기에 즐거워 보였는데, 로비를 가로지르는 동안 그렇게 웃는 어린이는 보이지 않더군요. 울거나 드러눕는 아이, 소리를 지르는 아이, 가만히 있거나 웅크린 아이, 삼촌 품에 안기거나 엄마 손을 잡은 아이도요. 거기는 어린이가 없었습니다. 온통 잘 차려입고 사진을 찍으며 웃고 떠드는 어른들만 가득했습니다. 12세 이상 관람가. 극장은 노키즈존이었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저는 누구를 비난해왔던 것일까요?

 

그것도 다 전염병 재난의 시대가 오기 전의 이야기네요. 저는 아이와 함께 거실에 앉아, 그사이에 태어난 둘째가 뒹구는 동안에 아이패드로 국립현대무용단의 공연을 봤습니다. 실시간으로 감상을 나누는 댓글 창 대화는 “극장에 가던 일상이 그리워요”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저는 썼어요. “저는 이것도 좋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극장이 그립지 않습니다. 예술가가 만든 세계를 지키기 위해 작은 움직임조차 ‘관크’로 비난받는 곳이, 아름다움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시끄러운 존재들을 금지하는 곳이 그립지 않습니다. 

 

아이 하나 키우면서 너무 바라는 게 많은 거 아니냐는 말을 들을까 봐, 이러니까 맘충 소리 나온다는 비난을 받을까 봐 이런 마음을 꺼내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12세가 훌쩍 넘은 발달장애 청년을 극장은 환영할까요? 어린이들은 아직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전제는 어린이들의 동의를 구한 걸까요? 저 말고도 극장이 그리울 수 없는 사람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립기 위해서는 먼저 극장에 몇 번은 가야 할 텐데, 어떤 사람들은 전염병 시대 이전에도 극장에 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극장종말론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는데, 그건 조금 더 넓은 자리가 필요할 것 같네요. 오늘은 이만 줄이고, 곧 다시 편지하겠습니다. 그때까지 무사하시길.

 

미래의 극장이 그리운 

혜령 드림

‹letter to the theater①› 극장이 그립지 않냐고 물으셨죠?
‹letter to the theater②› 당신은 모르는 관객의 퇴장

‹letter to the theater②›, 이혜령, 2021

극장 관계자 선생님들께

 

첫 편지를 드린 후 이 글을 쓰기까지 오래 걸렸습니다. 오늘은 극장종말론자들의 마음에 관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또 놓치게 될 것이 뻔해, 이미 써 내려간 몇 가지 이야기를 지우고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들은 극장의 종말을 예견했으나 극장의 종말을 기원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극장을 너무나 사랑했던 시절을 보낸 사람들입니다. 다만 문득 그 사랑의 끝에서 멸망의 풍경을 목격했을 뿐입니다. 그 서늘한 풍경을 외면하고 당장 객석에 앉아 무대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에 도취하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으나, 결국은 닥쳐올 미래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사람들입니다. 멸망이란 것을 막기 위해 나서는 사람들. 그것만은 막기 위해 극장의 종말을 말해야 하는 마음은 무엇일까요? 그게 너무 아름답고 눈부셔서 잘 들여다보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보려고 합니다. 가장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건 Y입니다. 그는 오랫동안 극장 바깥을 서성이다가 겨우 두 번 관람권을 마련했고, 그중에 한 번만 객석에 앉았으며, 결국은 극장을 갈망하는 극장종말론자가 되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춤추는 것을 좋아했던 Y가 살던 마을에는 극장이 없었습니다. 그는 중국의 작은 마을에 태어났는데, 친구들과 노는 공터가 춤을 추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부모님을 따라 중국과 인접한 러시아의 도시로 떠났을 때, 그는 극장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됩니다. 오랜 전통을 가진 러시아의 발레와 연극은 아주 잘 알려졌지만, Y는 당시에 그런 것도 잘 몰랐다고 합니다. 그저 아주 근사하게 생긴 건물 안에 빛을 받으며 춤을 추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됩니다. 

 

그는 이제 극장에 갔을까요? 뜨거운 만두를 파는 부모님을 도와야 하는 겨울에는 극장 건물 근처에도 갈 틈이 없었고 여름이 되면 창문에 나붙은 포스터가 너덜대는 내내 극장은 문을 닫았습니다. 언젠가 극장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그 사이 그는 한국에 와서 얼마간 불법 체류자 신세로 지냈고 자격증을 땄습니다. 몇 년 전에 귀화한 후, 그는 대형 병원의 6인실의 환자 침대 옆 간이침대에 앉아 있었습니다. 이제는 극장에 가본 적이 있다고 말하면서요. 자식들을 다 키우고 나서야 어느 작은 극장에서 하는 음악회를 봤는데, 어깨가 들썩이고 마음이 두근거렸다고 합니다. 

 

어떻게 극장종말론자가 되신 거예요? 제가 묻자 Y는 두 손을 모아 잡고 기도하듯 말했어요. 사실은 자기 잘못이라면서요. 자신이 제시간에 극장에 도착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초여름 집 근처 공원에서 무슨 축제를 한다고 해서 쉬는 날 오후에 손주와 함께 나섰는데, 작은 간이 무대 위에서 춤추는 이들을 봤다고 합니다. 무용수가 몸을 휘 돌고 쓰러질 듯 하다가 일어나는데, 이렇게 이렇게 공기가 밀려오는 걸 느꼈다고요. 그게 자꾸만 생각이 나서 아들을 시켜 무슨 유명한 무용 공연을 예약했습니다. 아들도 Y도 뭔지 잘 모르는 걸 찾아내서 예약하고 값을 치르는 모든 게 복잡하고 어려웠지만 한번쯤 극장에 앉아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남들은 예약 번호만 들고 극장에 가는데, 그는 그런 건 모르고 당연하다는 듯이 집으로 실물 관람권을 배송받았습니다. 그녀의 작은 손가방에는 봉투에 담긴 표가 들어있고, 그는 그 가방을 들고 극장으로 출발합니다. 저는 백번 만 번 그 모습을 선연히 그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집을 나서서 지하철을 타고 혜화역에서 내려 온통 극장뿐인 길을 지나가는 모습이요.

 

입구가 어디인지 헷갈리는 건물을 두 바퀴 돌고서야 겨우 엘리베이터를 타고 객석 입구에 도착했는데, 조금 늦은 것 같아 등 뒤로 땀이 줄줄 흘렀습니다. 허겁지겁 표를 내미는데 어여쁜 아가씨가 가로 막고 섰지요. 지연 관객 입장이 불가능한 공연이라고 했습니다. 지연 관객 입장이 불가능한 공연입니다. 공연의 특성상 무대의 예술가와 다른 관객들에게 방해가 될 수 있어서 지연 관객 입장을 금하고 있는 공연입니다. 아마도 막아선 객석 안내원을 통해 그런 설명을 꼼꼼하게 받았을 테지만, Y는 그런 건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자신이 크게 잘못한 일인 것 같다고, 하지만 정말 극장에 들어가면 안 되는 것이었을까요, 그는 묻고 또 물었습니다. 

 

저는 시간에 꽤 예민한 사람이었습니다. 약속 시간보다 10분에서 20분 정도 먼저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하고, 1분이라도 늦는 사람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모든 건 제가 다 통제할 수 있다고 여겼던 시절의 얘기입니다. 정시에 공연이 시작한다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그 시간을 맞출 수 없는 관객은, 작품을 준비한 이에게 무례한 것이라고도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의 저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지요. 저는 뭣이 중한지 묻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제가 모든 걸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매끄러운 세계로부터 미끄러졌습니다. 지각하는 이를 보면서 모든 건 의지의 문제라고 여겼던 시절의 저를 비웃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 매끄럽게 기울어진 세계에서 잘 설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Y와 저 같은 사람이요. 약속된 시간보다 늦었고, 중요한 공지를 확인하지 않은 Y는 영원히 그 공연을 볼 수 없을 것이고, 그것은 그가 말한 대로 Y의 잘못이겠죠. 하지만 정말 잘못일 뿐일까요. 예약하고 주요 정보를 확인하는 모든 절차를 충분히 잘 수행하고 시간에 맞춰 극장에 도착할 수 있는 사람만이 관객이 될 수 있는 세계가, 이제는 아득하게 느껴집니다. 

 

지연 관객의 입장을 통제하며 지킨 것은 숭고한 예술일까요, 아니면 예술을 누리는 자와 그럴 수 없는 자 사이의 장벽일까요? 카카오톡 메시지도 뚝딱 잘 쓰고 인터넷을 검색해 필요한 물건도 주문할 줄 아는데 공연 예매는 왜인지 어려웠다고 혼잣말하던 Y에게 제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나중에 제가 극장에 모시고 갈게요. 그러자 그가 답했습니다. 젊은 사람들 바쁜데 아이고 늙은이 신경 쓰지 마요, 극장은 젊은이들 가는 곳이지, 나는 그냥 안가도 괜찮지 뭐.

 

어째서 Y가 극장종말론자냐고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극장종말론자들은 극장을 싫어하거나 극장의 종말을 기원하는 이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극장의 종말을 예견했을 뿐이지요. Y의 경험이 드러낸 어둡고 서늘한 풍경이 아직 보이지 않으시나요? 갈 수 없는 사람은 가지 않고 갈 수 있는 사람만 드나드는 극장의 무대에는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가 오를 수 있을까요? 

 

운이 좋다면 노인이 될,

혜령 드림

‹letter to the theater③›, 이혜령, 2021

극장 관계자 선생님들께
 
레 미제라블. 그 뜻이 불쌍하고 비참한 사람들이라는 걸, `레 미제라블`이라고 발음할 때는 잠시 잊게 됩니다. 불어를 모르는 저에게, 레 미제라블은 뭐랄까, 아주 단단하고 힘차고 나아가는 인간을 의미하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2015년 한남동에 있는 극장에서 뮤지컬로 이 작품을 봤을 때는 비참하기보다는 오히려 화려하고 근사한 무엇이기도 했고요.

그 공연을 세 번 봤습니다. 그중 마지막으로 봤던 때가 기억나요. 퇴근 준비하는데 티켓 두 장이 갑자기 생겼던 것 같아요. 초대권 문화는 차츰 사라지는 중이었지만 공연 직전까지 빈자리를 그대로 비워두지 않고 관계자들에게 제공하는 건 공공연히 행해지던 시절입니다. 누구랑 보지? 저는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회전의자를 이리저리 돌리며 휴대전화에 저장된 번호 목록을 넘기다가, B 언니에게 전화했습니다. 


     언니 나랑 공연 볼래요?
 

그때 저는 대학원 동기인 B 언니의 아이가 몇 살인지도 몰랐어요. 지금 초등학생이니까 2살쯤 되지 않았을까 이제 와서 계산을 해봅니다. 언니는 학과 행사에 유모차를 탄 아들을 데리고 왔고, 칭얼대는 아기를 안고 나갔다 들어오기도 했고 때로는 먼저 간다고 떠나기도 했습니다. 아기가 귀엽다. 그게 제가 했던 생각 전부였어요. 그 아기가 온종일 무얼 하는지, 언니는 또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 몰랐지요. 언니도 그 작품을 좋아하고 너무 보고 싶지만, 오늘은 아이 때문에 안된다고 했습니다. 


     어디 얼른 맡기고 오면 어때요?
 

그 말을 내 입으로 했다니. 그 대화가 얼마 전에 문득 생각이 났어요. ‘아이’와 ‘맡기다’는, 아이를 키워본 적 없는 20대 여자의 입에도 착 붙는 조합이었나 봅니다. 대체 어디에 맡기나요. 아이를 낳기 전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었고, 그때의 젊은 여자는 지금의 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언니와 저는 이렇게 급히 극장으로 오는 건 누구라도 쉽지 않다고 다음에 미리 일정을 잡고 공연을 보자고 서로 아쉬움을 전하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다음으로 연락한 동생이 예정되어있던 야근을 미루고 제시간에 극장에 도착했습니다. 앞서 전화를 받지 않았던 친구에게도 지금 당장 갈 수 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러니까… 급히 극장에 오는 게 모두에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던 거지요.
 

지금의 저에게 그런 전화가 온다면 저는 육아 물정 모르는 젊은 여자를 가르치는 데 시간을 쓰게 될까요? 5살과 2살이 된 아이를 맡기는 일의 전과 후에 즐비한 번거로움에 대해서, 아이와 함께 나서는 길에서 마주하는 여러 가지 모양의 장벽에 대해서 말하게 될까요? 말을 하려다가도 남들 다 그렇게 아이를 키운다고 그만 징징거리라는 소리를 듣는 게 겁나는 마음에 대해서, 3인분이 되었다가 때로는 나 자신의 일부까지 사라져 0.1인분쯤 되어버리는 순간에 대해서... 말하는 대신 나를 떠올려줘서 고맙다고 하겠지요.
 

그런 생각을 하다가 객석 안내원의 손길을 따라 들어선 극장 안의 객석 모습이 그려졌어요. 한때는 가장 안전하게 느껴지던 나 혼자만의 자리, 그 붉은 의자에 푹 잠길 듯 앉아 암전될 때 느껴지는 고요함. 무대감독의 큐 사인과 함께 온 스태프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백스테이지를 상상하며 내가 가장 잘 아는 곳이라고 느꼈던 곳이요. 지금은 그 빼곡한 자리가 조금은 가혹하게 느껴져요. 딱 1인분의 자리로만 채워진 붉은 시트의 객석. 세상의 모든 사람이 비슷한 키와 몸집과 자세를 가졌다고, 혹은 그런 사람들까지만 상상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은 의자의 나열. 그 자리에 1.5인분이나 3인분의 삶을 사는 사람이 앉을 수 있을까요?


그 시절 얘기를 하나 더 해볼게요. 저는 대학 졸업 직후 공연 제작사에서 10년 남짓 일했는데, 그 시절의 기획서와 제안서에 타깃 분석 같은 걸 보면, 어김없이 2030여성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제가 일한 10년 내내 훌륭한 관객층이었어요. 제가 공연계를 떠난 지 또 거의 10년인데, 아직도 타깃은 2030여성입니다. 공연계 최대의 과제는 언제나 ‘관객 개발’이고요. 그런데 왜 계속 2030여성일까요? 젊은 시절 극장을 찾았던 여성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그들이 공연을 싫어하게 된 것일까요, 아니면 극장이 그들을 밀어낸 것일까요? 


막연히 아이 맡길 곳이 충분해야 한다고 여긴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로비에 별도의 돌봄 시설이 생긴 극장을 보자 마음이 더 복잡해졌습니다. 아이들은 대개 낯선 곳에서 엄마와 떨어지려고 하지 않고 처음 보는 보육교사에게 맡긴다는 것 또한 어떤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일인데, 그건 결국 아이를 돌봐줄 누군가가 동행해야 한다는 의미니까요. 


요즘은 아이와 함께 극장에 들어갈 수 없는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됩니다. 대학로에 위치한 아르코예술극장의 ‘보금자리’라는 좌석은 만 7세 미만의 영유아 동반 관람객을 위한 전용 공간이 있습니다. 보금자리라는 이름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좋았습니다. 이런 자리가, 혹은 이보다 더 좋고 다양한 자리가 모든 극장에 갖춰지는 상상은 지나친가요? 영유아만이 아니라 이런 자리가 필요한 관객이 또 있고 많이 있습니다. 


게다가 아이가 갈 수 없는 곳이라면 동물도, 발달장애인도, 휠체어도 들어갈 수 없을 확률이 높잖아요. 그런 배제가 발생하는 곳은 늘 조금씩 어긋난 구석이 있다는 것도 이제는 알게 되었고요. 그러니까 질문하게 됩니다. ‘불쌍하고 비참한 사람들’이라는 이름의 작품이 ‘화려하고 근사하게’ 느껴지는 극장은, 0.8인분이나 2인분의 삶을 밀어내는 방식으로 빛나왔던 것은 아닐까요.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과거의 내가 사랑했던 극장을, 그 극장에서 안전했던 과거의 나를 조금은 원망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그때 극장 객석을 채웠던, 과거의 `2030여성`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그때 그 여자들을 찾는
혜령 드림

‹letter to the teater③› 그때 그 여자들은 어디로 갔나
‹letter to the teater④› 관객을 기르는 법

‹letter to the theater④›, 이혜령, 2021

관객을 기르는 법

 

안녕하시지요? 벌써 네 번째 편지입니다. 극장종말론에 대해 처음 들으셨을 때의 섬찟한 느낌이 조금 나아지셨을지 모르겠습니다. 

 

맨 처음 제가 극장종말론 비슷한 이야기를 꺼낸 곳은, 우습게도 어느 극장이었습니다. 극장 관계자 선생님을 앞에 두고, 극장이 망하는 미래에 대해 말했던 것이지요. 왜 망하나요? 그가 묻자, 저는 저 객석 때문입니다, 하고 답했습니다. 객석이요? 그가 되묻자, 저는 걱정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눈빛이 좀 흔들렸거든요. 선생님, 극장이 망하는 미래는 제가 쓴 희곡 일부일 뿐이고, 진짜 극장은 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기 보이는 객석이 넘치거나 충분한 사람들이 몰려오면 망하지 않을 거예요. 제가 붉은 시트에 팔걸이 모양의 그림자가 나란히 드리워진 객석 쪽으로 몸을 돌리며 말했습니다. 그들이 오지 않으면 망할 것이라는 뜻을 담았으나, 그는 알아채지 못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다음 날 그 선생님께서 제게 링크 하나를 보내주셨기 때문입니다. 망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 극장과 문화예술 관계자 선생님들이 진행하는 연구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관객 개발”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목차에는 <극장 관객 개발의 현황>, <극장별 관객 개발 전략>, <관객 개발의 향후 전망> 같은 말이 이어졌습니다. 세상은 너무 빠르게 바뀌지요.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극장 무대에서 벌어지는 아름다움을 자꾸 몰라보잖아요. 웹툰이나 넷플릭스에 비해 기회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극장에 등을 돌리는 시대인 게 분명해 보이고요. 마침 늘 오는 관객만 오는 것 같고, 지표 또한 그렇다고 하니 관객을 다양화하고 ‘개발’하려는 시도가 여럿이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개발한다고 해서 관객이 뚝딱 만들어질리 없겠지요.

저는 그 연구자료를 꼼꼼하게 읽었으나 여태 관객 개발이 무엇인지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나저나 관객 개발은 예술가의 몫인가요, 기획자의 몫인가요, 극장의 몫인가요, 아니, 누구의 몫이기는 한가요? 아니 근데, 무엇보다, ‘관객’과  ‘개발’의 조합은 마땅한가요? 이어지는 질문만 쌓여가던 차에 아홉 살 민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마틸다>라는 뮤지컬에는 어린이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민재는 멋진 음악 가운데 그네를 타고 높이 날아오르며 부르는 곡을 특히 좋아했습니다. 그 노래를 먼저 알게 된 민재는 가사 하나 빠뜨리지 않고 외워 부를 수 있었고, 부모님을 졸라 극장에 갑니다. 극장에 앉아 빛나는 무대를 바라보는 내내 두근거렸지요.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소리 내 노래를 따라 불렀다고 합니다. 제가 지금 같은 노래를 들으며 입을 뻥긋거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누구라도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는 곡 전개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은가요? 

 

민재는 그 날 일기에 그 순간 자신을 돌아보던 이모들의 매서운 눈초리에 관해 썼습니다. 저는 민재의 일화를 제가 아는 최선의 관객인 W의 글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글을 읽는 순간 저의 다섯 살 딸아이가 했던 질문이 떠올랐어요. 그게 한 미술관이었는데, 아이는 저와 함께 산책하듯 걸으며 전시를 보다가 불현듯 노래를 불렀습니다. 두 팔을 양쪽으로 펼치며 노래를 시작했는데, 나중에 말하길 전시장에 천장까지 이어진 꽈배기 모양의 설치 작품을 보자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조용한 전시실, 저 멀리 앉아 있던 전시실 관리자가 벌떡 일어났고 저는 아이를 잡은 손에 힘을 줘 흔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입을 틀어막으며, 쉿, 여기서는 노래 부르면 안 돼, 라고 말했고요. 그날 집에 오는 길에 아이가 제게 물었습니다.

 

      엄마, 노래하면 안 되지만, 정말 노래하면 안 돼요? 

 

극장 객석에 앉은 민재도 같은 걸 물을 것 같아요. 노래하면 안되지만, 정말 안되나요? 좋은 답을 하고 싶은데, 쉽지 않네요. 

 

다만 관객 개발에 관해 쌓여가던 질문에 답할 실마리는 찾은 것 같습니다. 관객은 개발하는 게 아니라 기르는 게 더 정확하고 쉽다는 겁니다. 노래를 듣고 노래하고 싶은 아이들을 객석으로 불러 모으는 일, 그 아이들에게 무대를 직접 만나는 고유한 경험을 만끽할 수 있게 하는 일이 관객 개발이라는 모호한 말보다 정확하게 느껴집니다. 관객과의 관계 개선과 형성을 마케팅의 일환으로 접근하는 관객 개발의 장황하고 거창한 말들보다 더 효율적으로 보입니다.

 

민재에게 <마틸다>의 음악을 들려준 W는 그의 초등학교 선생님입니다. W는 제가 아는 아주 훌륭한 관객 중 한 사람입니다. 그는 객석에 앉아, 얼마나 잘하는지 어디 한 번 보겠다며 팔짱을 끼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공연에 더 잘 빠져들기 위해 자기 암시를 거는 사람입니다. 자신은 그저 무대의 마법에 순응하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순응이라는 단어로는 충분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렇게도 적극적인 순응을 저는 모릅니다. 그는 그저 무대가 가는 길을 따라가는 정도에 익숙해진 사람이 아니라 무대에서 만들어내는 아름다움과 의미를 샅샅이 찾아내는 분주한 관객입니다.

 

그가 교실에서 음악을 들려주는 풍경이 떠오르자, 관객 개발에 관한 자료를 몇 개 더 뒤적이는 일을 멈췄습니다. 제가 읽은 관객개발 연구서를 쓴 사람들은 아마도 W와 같은 관객이었던 적이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관객을 비용으로, 혹은 사업의 수혜자로 보는 시선 아래에서 진짜 관객이 생겨날 리 없습니다. 저는 좋은 것을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 자신이 본 것을 이야기하고 또 나누는 관객만이 관객 개발을 할 수 있으리라 믿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그 연구 항목에 노래해서는 안 되는 객석에 관해 조사를 해보는 편이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합니다. 객석에 올 사람들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여기 오지 못하거나 오는 게 어려운 사람들을 환대할 자리를 만들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지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자, 한 연극 연출가님께서는 가만히 물어보셨습니다. 그래서… 공연 중에 시끄럽게 하겠다는 말인가요? 이건 질문의 모양을 한 타박이구나, 생각했지만, 여기서 답해보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공연을 보는 행위라는 게 침묵의 객석에 둘러싸인 진공 상태의 무대로 보존하는 것인지, 아니라면 객석에서는 어떤 여유와 환호를 요청할 수 있을 것인지에 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뜻입니다. 

 

마틸다 사운드트랙을 들으며 글을 쓰는 내내 춤을 추는 밤에,

혜령 드림

사라질 수 없는 몸

​‹letter to the theater⑤›, 이혜령, 2021

극장 관계자 선생님들께

저는 요즘 과거의 2030 여성 관객을 찾아다닙니다. 그들을 만납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가진 부피나 채도는 제각각이지만 서로 닮은 구석을 찾는 건 무척 쉽고 간단했습니다. 마치 암호 하나로 서로를 알아보는 정보원처럼, 좋아했던 극장이나 연출가의 이름, 때로는 술집의 이름만 듣고도 서로의 시대나 취향을 파악해냈어요. 어쩌면 이렇게 될 줄 모르는 채로 객석에 나란히 앉았던 날이 분명 있었으리라 믿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다들 스스로 묻고 또 묻습니다. 

 

우리는 극장이 왜 그렇게 좋았던 걸까?

 

저 또한 같은 걸 물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한곳에 모아 둔 종이 티켓을 꺼내봤고, 극장에서 연신 찍어댄 볼품없는 사진들을 찾아냈습니다. 그러다가 불현듯 제가 객석에 앉아 조용히 공연의 시작을 기다렸던 순간들이 기억났습니다. 불이 꺼지기를, 오직 무대만이 빛나기를, 하우스 조명이 켜지고 밖으로 나가라고 안내받는 끝이 오지 않기를 바랐죠. 

 

갑자기 왜 그런 게 기억났느냐면, 사진 속 20대 젊은 여자였던 제가 어쩐지 조금 수줍게 웃고 있었거든요. 하나같이 비슷하게 비굴했고, 정확히는 무엇인가를 수치스러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로비가 싫었던 것 같아요. 한껏 꾸며도 충분히 아름답지 않고 그것을 탓해온 여자로서 밝고 붐비는 곳은 그리 반가운 자리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숨을 곳으로서 객석을 즐겨 찾았던 것은 아닐까 묻게 되었습니다. 객석의 어둠 속으로요. 

 

J와의 대화는 그 추측을 확신으로 바꿨습니다. 아마도 몇 번이나 같은 공연을 보러 같은 극장에 앉았던 게 틀림없는 우리는 극장 이야기를 하다말고 그 시절 먹었던 다이어트 한약의 효과나 식욕억제제를 처방받는 우회적인 방법, 처음 보톡스를 맞았던 날에 대해 떠들었습니다. 갑자기? 아니요, 꽤 자연스러운 연결이었습니다. 샤우뷔네의 공연을 보고 난 후 대학로에서 들렀던 술집 이야기를 하는데,(“소나무길 골목 쪽에 있고 할머니가 스팸과 계란 후라이를 해주고 주방 뒷문으로 사라지던 곳인데 거기 이름이 기억이 안나요, 거기 가 봤어요?”) 그가 자신은 극장에 늘 혼자 갔었다고, 게다가 밤에 술은 먹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였습니다. 어떻게 해도 초라한 몸뚱이가 끔찍하게 여겨졌던 시기에, 끝없이 극장을 갔었던 것 같다고요. 저는 그제야 사진 속 저의 표정을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지었습니다. 우리는 객석에 몸을 숨기기 위해서 극장에 갔다고. 

 

객석에 앉아 정말 내 몸이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가 위해서. 오로지 생각하는 머리와 보고 듣는 눈과 귀로서 존재하기 위해서. 그러면 잊을 수 있게 되는 것들이 있었고, ㅡ 예를 들어, 내 몸이 가진 한계나 볼품 없음 같은 것 ㅡ 그것들을 잊기 위해 극장의 어둠 속으로 쫓아가기를 계속했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우리는 사라지는 몸을 원했던 것입니다. 객석에 앉으면 그게 가능했습니다. 잠시나마 이 비천한 몸뚱이를 잊고 유령이 되어 무대 위에 지어진 임시의 세계를 떠돌았습니다. 거기서 소리 없이 보고 들은 것들, 거기서 얼굴 없이 울고 웃은 기억으로 극장 밖에서도 임시로 잘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임시로 봉합한 일상도 그리 나쁘지 않았고, 행여 조금 나빠지면 극장에 가면 될 일이었습니다. 극장이 힘을 줄 테니까. 어떤 날에는 친구들과 떠들썩하게 도착해 유령이 되었다가 그 상태를 유지하려고 술을 마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어떤 날에는 유령처럼 혼자 극장에 도착해 유령이 되어 머문 무대를 오랫동안 생각했을지도 모르겠고요. 아무튼, 좋았습니다. 어쨌든 극장에 가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비극이 시작됩니다. 저는 이제 객석의 어둠 속에서도 제 몸을 지우지 못합니다. 이것은 이제 사라지지 않습니다. 암전과 동시에 몸을 잊던 유령은, 남겨둔 것을 찾아 구천을 떠돌듯 저의 몸을 떠나지 못합니다. 저는 객석에 눈과 귀만을 남기는 게 불가능한 부류의 인간이 되었습니다. 몸은 사라질 수 있을 만큼 건강하지 않아, 건조한 극장 공기 속에서 몇 번이나 눈을 깜빡이고 인공 눈물을 집어넣고 또는 허리를 펴고 어깨를 들썩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저는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하나의 몸이 아닙니다. 저의 몸은 이제 두 아이와 보이지 않게 연결되어 있고, 이것은 제가 객석에서 순수하게 일시적인 사라짐을 경험할 수 없게 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아이들을 낳은 후 극장에서 휴대폰을 꺼본 적이 없네요. 다크모드에 무음으로 해두지만, 결코 끌 수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수시로 무릎 아래에서 부재중 전화 여부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건 그저 저의 불안장애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행여나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순간에 극장에서 공연이나 보고 있던 엄마라는 낙인이 두렵기 때문이란 이유가 조금 더 정확하게 느껴집니다. 

 

조기현 작가는 객석의 수동성을 중요한 성격으로 꼽으며마텐 스팽베르크의 글을 인용했습니다. 거기서 극장은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한 채 꼼짝없이 앉아 있는”, “몇 시간 동안 자리에 앉아, 앉는 것 말고는 하지 않는 곳”입니다. 그런 연유로 객석은 이 시대를 거스를 수 있는 훌륭한 자리가 됩니다. 백번 만번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앉을 수 있는 관객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개인입니다. 저는 더이상 그런 개인이 아니고요. 

 

나를 사라지게 하고 멈추게 하던 극장이 그립지만, 사라질 수 없는 몸을 가진 복잡한 인간이 되었네요. 그제야 내 뜻대로 내 몸을 어떻게 하겠다고 결단할 수 없는, 나와 닮고도 다른 존재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그렇게 극장종말론자가 되었습니다. 

 

한참을 이야기를 하고 보니, 이건 선생님들께 드릴만 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건 극장의 시설이 바뀐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닐 테니까요. 그럼 무엇이 바뀌어야 좀 나아질까요? 그런데 이런 얘기는 어디에 해야 할까요?


 

혜령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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