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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너럴 쿤스트라는 이름으로 참여 예술 작업을 하고 있다. 대부분이 퍼포먼스이고 올해 처음으로 전시 작업을 했다. 모든 작업들이 늘 흥미롭다. 극장이나 미술관이 아닌 일상의 장소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관심이 많다. 타고난 예술가는 아니라서 완전히 새로운 것을 어떤 영감을 받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읽으며 공부한다. 그러다보면 마주하게 되는 질문들이 있다. 거기에서 작업들은 시작된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고 늘 얘기해왔지만, 내용은 거의 엇비슷하다. 나는 너무 작아서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고 그것을 받아 적거나 눈에 보이도록 색을 입히거나 확성기를 대고 싶다.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 당연하게 여겨져서 보이지 않던 장면들을 만나고 다루고 싶다.


"귀뚜라미나 여치 같은 큰 울음 사이에는

너무 작아 들리지 않는 소리도 있다

그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한다

내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들이 드나드는

까맣고 좁은 통로

그 통로의 끝에 두근거리며 매달린 여린 마음"

/김기택


이 시를 여러번 반복해서 읽었다. 



작업을 하는 곳은 집 근처에 있는 스튜디오 밋미어라는 작업실이다. 제너럴 쿤스트의 작업과는 다른 형태의 사업을 한다. 1891년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가 풍경화나 대리석 조각에 쏟았던 예술가 개인의 애정과 관심, 기술을 총동원해 예술적 가치를 공예에 응용하고자 했던 것처럼, 나는 실용적인 물건에 예술가의 말을 담아 내려고 한다. 제너럴 쿤스트의 작업이 일상 공간에서 진행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담아내던 이야기를 일상 생활에서 사용되는 물건에 담아 냄으로써 이야기의 공간을 특정하지 않고 일상 속에서 다정한 대화와 이야기가 문득 솟아나기를 기대한다. 올해 처음 시작해 시행착오가 많았지만 재미가 있었고 번거롭고 힘들지만 계속 하고 싶다.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 이런 생각을 20대에는 전혀 하지 않았다. 조금 벌어서도 행복하게 사는 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다르지 않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들에는 돈이 많이 들었다. 이주민의 이야기를 다루는 퍼포먼스를 할 때, 새로 지은 아파트 사이에 남은 고시원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쓸 때, 내가 만드는 작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다. 작업은 의미가 있지. 작업 자체로도, 그것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되는 것으로도, 훗날에 이야기될 가능성으로도.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직접적인 도움-예를 들어, 돈이나 시간 투자를 통한 봉사 활동-이 더 의미 있는 경우도 많았다. 나는 작업을 통해서도, 그리고 그렇게 번 돈을 통해서도 세상에 기여하고 싶다. 작업이든 돈을 버는 일이든 계속해서 해야 한다. 작업이든 돈이든 계속하면 그것을 세상의 모든 딸들을 위해, 상처 받았지만 아직 위로도 치료도 받지 못한 이들을 위해 쓸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하는 작업은 단지 나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은 아닐까, 스스로를 자꾸 의심했다. 작업을 할 때는 나의 만족이나 무슨 예술적 성취만이 아닌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늘 생각한다. 그게 나를 버티게 한다. 


올해로 서른 넷이고 딸과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2018.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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